2023년 5월에 읽은 책들을 소개합니다.
이번 5월은 유난히도 비가 자주 왔던 한 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기다렸던 여름의 시작이라기보다는 우중충한 장마가 벌써 온 것은 아닌지 하는 염려가 앞섰습니다. 본격적인 장마는 아니라는 뉴스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포근했던 봄이 우리 곁을 떠나간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이야기의 시작을 날씨로 하는 것이 진부하고 예스럽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날씨만큼 보편적이고 유용한 글감도 없습니다. 항상 통하는 패션, 언제 들어도 좋은 클래식,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고전처럼 날씨는 쉽게 지나칠 수 있지만 우리 생활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미미해 보이지만 늘 우리에게 반향을 일으키는 날씨처럼 독서도 한 페이지, 두 페이지를 넘길 때는 깨닫지 못하지만 한 권, 두 권 읽은 책이 쌓이면 우리 내면은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독서와 날씨는 깊은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쨍쨍한 햇살이 내리쬐는 한 여름이면 빨간 냉기를 가득 품은 수박 한 입도 그립지만,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을 품은 푸시킨의 『대위의 딸』이 생각납니다. 하염없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이면 파전에 동동주도 좋지만, 내면에 흐르는 비를 걷어내 줄 헤세의 『데미안』도 좋습니다. 소복소복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방구석에 누워 귤을 까먹으며 읽는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제격입니다.
또한, 아무도 시키지 않지만 제 갈 길을 뚜벅뚜벅 가는 시간처럼 날씨가 아무리 바뀌어도 우리가 읽은 책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책을 읽을 때마다 변하는 ‘내’가 있을 뿐입니다. 훈수나 조언이 아닙니다. 후덥지근한 날씨를 핑계로 책 읽는 시간을 자꾸만 뒤로 미루는 저 자신에게 하는 말입니다. 아무래도 선선한 봄이나 가을보다는 책에 손이 잘 가지 않는 게 여름입니다. 그래서 제가 선택한 방법은 ‘조금씩 자주’ 읽는 것입니다. 무겁고 어려운 책보다는 가볍고 쉬운 책을 손에 들고 다니면서 야금야금 읽고 있습니다. 만약 저처럼 책은 읽고 싶지만, 여름의 열정 때문에 고생하고 계신다면 조금씩 자주 읽는 독서법도 나쁘지 않습니다.
『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정상태(유유, 2018)
#투고 #예비저자 #편집자
예비 저자를 위한 투고 안내서. 인간은 언제나 답답하고 고단한 ‘과정’을 예측하는 일보다는 달콤하고 화려한 ‘결과’를 상상하기 좋아한다. 우박 같은 땀을 흘리며 무겁기만 한 바벨을 힘겹게 들어 올리고 있는 모습보다는 탄탄하고 탄력 있는 몸매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고 있는 자기 모습을 더 쉽게 떠올린다. 우리의 이러한 성향은 불가능한 일에도 당당히 도전할 수 있는 ‘용기’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매번 우악스러운 계획을 세워 자책하게 만드는 실패의 원흉이기도 하다. 글쓰기, 특히 저자가 되려고 마음먹은 예비 작가들도 비슷한 고민에 빠지곤 한다. 왜 내 글은 책이 되지 못할까? 이 책은 저자라는 꿈을 품은 예비 작가들에게 어떻게 투고하는 것이 좋을지 편집자의 입장에서 친절하게 하지만 정확하게 안내한다.
필자가 이 책에서 주목한 것은 두 가지다. 1) 흥미롭고 차별화된 콘셉트. 2) 구체적인 예상 독자. 어찌 되었든 자신의 인생이 담긴 글이 ‘책’이라는 이름을 제대로 가지려면 출판사, 특히 편집자의 관심을 끌 수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기획서’라는 형식에 잘 담겼을 때 글을 좋아하는 사람에서 저자가 될 가능성이 조금 더 커진다고 『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의 저자는 말한다. 저자의 베테랑 편집자라는 직업적 정체성은 이러한 주장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 게다가 출판사에서 근무했던 저자의 생생한 경험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믿음직한 문장 덕분에 독자는 책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다.
부제인 ‘투고의 왕도’에서 알 수 있듯이 만약 독서와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 언젠가는 책을 내고야 말겠다는 꿈을 꾸고 있는 독자는 물론, 완성된 원고를 가지고 있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야 책을 만들 수 있을지 막막한 독자에게도 큰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책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편집자라는 직업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자세히 설명하기 때문에 앞으로 글을 써나가는 데 있어서 무척 도움이 될 것 같다. 마지막에 이 책을 조각하며 참조했던 책을 정리해 놓았는데 출판, 투고, 퇴고 등의 더욱 자세한 사항이 궁금한 독자에겐 요긴한 정보임이 틀림없다. 필자도 다음에 읽을 리스트에 곧바로 추가했다.
『글쓰기 생각쓰기』·윌리엄 진서(돌베개, 2007)
#생각 #글쓰기 #작가
글쓰기는 노력과 언어의 예술. 이전에 읽었던 『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의 저자(정상태)가 글 쓰는 사람을 위해 추천한 책이다. 운 좋게도 '좋은 책이니 추천했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에 집어 든 책에는 글쓰기에 진심인 노련한 작가의 진정한 조언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매일 습관적으로 마시던 인스턴트커피 믹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오래된 베테랑 바리스타가 직접 내려준 그윽한 커피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 윌리엄 진서가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꾸준한 노력과 언어의 소중함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주장이 진부하고 원론적이기 때문에 다소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기본에 충실한 것만큼 효과적인 해결책도 없다.
인터뷰, 여행기, 회고록, 과학과 기술, 비즈니스, 비평, 유머 등 다양한 형식의 글을 쓸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은 오래 기억하고 싶다. 글쓰기에 관한 개인 교습을 받는 것처럼 실용적이다. 윌리엄 진서(저자)가 직접 고른 예문을 바탕으로 지적하고 교정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유명한 교수의 명강의를 듣는 것처럼 기분이 상쾌하다. 게다가 개인교습이라니 더욱 마음에 든다. 또한, 각각의 분야에 적확한 글쓰기란 무엇인지 저자 특유의 간소하고 명확한 정의는 구체적으로 어떤 글을 쓸지 고민하는 독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소설도 아닌 책이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100만 명이 넘는 사람에게 읽힌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궁극적으로 글 쓰는 이가 팔아야 하는 것은 글의 주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글쓰기의 원칙과 자세에 대한 조언도 기억에 남는다. 이러한 주제는 다룬 장에서는 실용서라기보다는 작가로서의 경험을 담담하게 풀어놓기 때문에 인간이 넘치는 그의 문장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글쓰기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글도 종이도 책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과 위로를 함께 느꼈다. '과감하게 쓰고 부단히 고쳐 쓰자'라는 윌리엄 진서의 조언은 글쓰기를 잘해야만 하는 과제처럼 두려워하는 독자에게 망망대해에 오롯이 서 있는 등대처럼 느껴진다. 글쓰기가 도대체 무엇인지 감이 오지 않아서 고민에 빠져있다면 가볍게 『글쓰기 생각쓰기』를 펼쳐보자.
『퍼스트 브랜딩』·국도형(떠오름, 2022)
#개인브랜드 #마케팅 #자기계발
흔히들 배움의 끝은 없다고 말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동네 도서관에 꽂혀있는 책을 읽기에 우리가 가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무한대에 가까운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 자신이 원하는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체화하는 것은 의무라기보다 생존을 위한 본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경제적 여건도 만만치가 않다. 한정된 자원은 점점 고갈되어 경쟁은 더욱 치열해져만 간다. 4차 산업혁명의 여파로 AI까지 도입되면서 인간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분야는 협소해지고 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끝없이 발전해 왔던 문명이 이젠 발전의 주체를 위협하는 아이러니의 시대를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가치는 이제 어디서 찾아야 할까? 조금 더 효과적인 생존법은 없을까? 이 책의 저자 국도형 작가는 그 해결책으로 '개인브랜드'를 제안한다. 저자는 자신을 국내 1호 개인 브랜드 매니저라고 소개하면서 향후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닌 '개인'을 브랜드화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주장한다. 즉, 개인이 특정 분야의 브랜드 자체가 되는 것이 경제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소문난 맛집은 아무리 멀리 있어도 손님이 알아서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맛집의 본질이 훌륭한 맛인 것처럼 개인브랜드의 핵심은 자기 자기 능력과 실력이다.
개인브랜드란 과연 무엇일까? 개념은 간단하다. 브랜드의 주체가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닌 사람이 되면 된다. 사람이 가진 재능이나 장점을 상품화시켜 '그 사람 자체'를 어떠한 분야의 대표성을 띠도록 만들어 고객에게 신뢰를 주는 것. 이것이 바로 퍼스널 브랜드의 본질이다.
대학교수, 작가, NGO 활동가, 기업인 등 저자의 활동은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저자가 주장하는 개인브랜드의 가치는 가설을 넘어 경험적이고 현실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개인 브랜드 매니저라는 생소한 분야의 개척자가 되기까지 저자가 겪었던 진솔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미래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책을 많이 읽는다. 새로운 것은 배운다. 다양한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라는 막연한 생각보다는 '나를 브랜드화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처럼 확실한 기준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절실히 공감했다.
따라서 노후를 고민하고 있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안갯속을 헤매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또한, 평범한 직장을 벗어나 나만의 정체성을 제대로 구축하고 싶은 독자, 거친 망망대해에 외로운 돛단배처럼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위기 탈출의 실마리를 건넨다. 특히, 마지막 파트인 '개인브랜드 도구 활용법'은 도서 출판은 앞둔 필자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자신의 책을 만드는 일은 자신의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키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의 하나라고 강조한다). 개인브랜드가 무엇이며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또 무엇인지 궁금한 독자에게 『퍼스트 브랜드』를 추천한다.
『글쓰기 생각쓰기』·윌리엄 진서(돌베개, 2007)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
함께 여행할 친구를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는 대개 여행을 밝게 만들어 줄 만한 사람을 택하게 마련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함께 여행을 가자고 권하는 사람이다.
『글쓰기 생각쓰기』, [275 p]
함께 여행하자고 권하는 사람, 글쓰기의 본질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볼 수 있는 글귀다. 지식의 자랑이나 딱딱한 훈계는 결코 여행이 아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같이 걸어보자고 권유하고, 그런 길이 위로와 공감으로 가득하게 만들면 그것이 바로 좋은 여행이다. 글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