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 7, 8월에 읽은 책들을 소개합니다.
● 이번 여름은 유난히도 지독하고 끈질겼습니다. 분명 ‘덥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계절이었습니다. 날씨 때문이기도 했지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도 푹푹 찌는 더위에 한몫했습니다. 화나고 짜증 나는 일이 워낙 많다 보니 내가 지금 기분 나쁜 이유가 뜨겁고 습한 여름 때문인지, 황당하고 안타까운 뉴스 때문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장자께서 진정한 도(道)에 이르면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구분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혹 지독한 더위에 내가 도를 깨달은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까지 했습니다(단지 의심일 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기억될 여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무더운 날씨도 시간의 흐름 앞에서는 그저 한 계절일 뿐입니다. 무한한 시간은 모든 것을 지나갑니다. 사람도 물건도 계절도 그리고 추억도... 게다가 시간을 거스르는 일은 (과학적으로) 아직 불가능합니다. 시간을 설명하는 방법은 많겠지만 결국 인간은 시간을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과 시간의 관계가 이렇게 일방적이라는 표현은 기분 나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지나가는 세월 덕분에 망각하고 착각하며 희망찬 미래를 꿈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은 아마 이런 뜻에서 생긴 말일 겁니다. 이번에도 시간의 힘에 기대어 여름의 끝을 잊고 다가올 가을을 기다립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책을 출판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책과 글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건 책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만큼 행복하고 뿌듯한 일이 또 있을까요. 그러나 행복한 결과가 있기까지 반드시 있어야 할 지난한 과정, 그런 숭고한 과정이 있기에 결과는 더욱 아름답습니다. 생각보다 일정이 늘어졌지만, 이제는 종점에 어느 정도 다가간 느낌입니다. 복잡한 것을 독후감 숙제보다 싫어하는 저이기에 출판과 더불어 독서는 물론 글 쓰는 것조차 잘되지 않더군요. 초라한(?) 월말 결산에 대한 변명으로 부족하다는 사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가올 가을이 있기에 다시 한번 다짐해 봅니다.
벌써 아침저녁으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가을을 그리워했던 모든 분에게 보람찬 시간이 기다리고 있기를 기원합니다.
『숨겨진 뼈, 드러난 뼈』·로이 밀스(해나무, 2023)
#뼈 #최고의건축자재 #기록자
인간에게 ‘뼈’는 미지의 세계이자 동시에 삶을 영위하기 위한 원천이다. 평생 자기 뼈를 자기 눈으로 직접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며, 만약 우리에게 뼈가 없다면 중력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 철저하게 굴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 꼭 필요한 존재지만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은 효능감과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한다는 의미에서 매력적이다. 저자인 로이 밀스는 『숨겨진 뼈, 드러난 뼈』를 통해서 그러한 매력을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소개한다. 학구적 열정뿐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뼈에 진지하게 집착해 온 저자의 이력(UCLA 정형외과 임상교수 등)은 책에 담겨 있는 그의 주장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
뼈는 콜라겐 그물 위에 수북이 쌓인 칼슘 결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라스 위에 놓인 회반죽처럼 말이다.
책은 뼈에 대한 관점을 책의 제목처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1) 숨겨진 뼈에서는 뼈 자체에 대한 궁금증에 집중한다. 뼈의 구조, 종류, (물리적 화학적) 특성과 더불어 뼈 치료의 발전 과정도 함께 다룬다. 2) 드러난 뼈에서는 뼈를 통해 알 수 있는 인류 문명의 발전사를 다룬다. 즉, 뼈의 독특한 특성에 기인하는 '기록자'로서의 역할을 설명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두 가지 다른 관점에서 뼈를 바라본다는 사실이 그동안 뼈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는 필자에게는 독특하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을씨년스럽고 암울할 것이란 섭입견을 살짝 내려놓으면 뼈 이야기도 충분히 재미있다.
임자가 죽은 후 부여받은 제2의 삶에서, 드러난 뼈는 지구의 역사와 인류의 활동에 대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많은 것을 드러내 보인다.
제대로 보기 어렵지만 알면 알수록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영역이 바로 뼈라고 생각한다. 호모사피엔스의 뇌는 죽음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외면하도록 진화해 왔다. 그렇지 않으면 삶의 많은 곳에서 부조리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행복, 진리, 탐구, 열정, 사랑 등이 죽음이라 블랙홀 앞에선 맥없이 무너지기 마련이다. 아울러 대부분의 사람은 뼈와 죽음이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그래서 뼈는 우리의 관심을 벗어나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외면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듯, 뼈에 대해 무지하다고 이로운 것은 없다. 다시 말해 죽음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오히려 삶의 의지가 샘솟는 것처럼 뼈 이야기를 알아야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독자를 자연스럽게 뼈에 대한 정확한 이해로 안내한다.
『차가운 자본주의』·윤 루카스(떠오름, 2023)
#자본주의 #경제 #의견
현실 자본주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늘 괴리가 존재한다. 쉬운 예로 머릿속으로 완벽한 삼각형을 떠올릴 수는 있겠지만 종이 위에 삼각형을 완벽하게 그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물리학 법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물질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고 느끼기 쉽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수많은 관념 또한 넘쳐난다. 그래서 그런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일이 더욱 어렵다. 특히 '자본주의'는 우리가 배우고, 인식하고, 이해하고 있는 것과 실제로 활용하고, 적용하고, 관찰하는 것 사이의 차이가 심각할 정도로 크다고 생각한다. 그 차이의 원인으로 여러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차가운 자본주의』의 저자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면서 책을 시작한다.
현실을 불편해하기만 한다면 진실은 더욱 멀어질 뿐이며 건설적인 발전도 없다. 문제의 해결책은 정확한 진단과 인지에서 출발하듯이, 자본주의를 경제학적 이론이나 정치학적 이념으로 어렵게 다가가기 전에 현실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똑바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자본주의의 현실적인 역할과 기능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이를 기반으로 쉽게 설명해 나간다. 이어서 시장경제의 본질과 흐름을 정확하게 읽는 눈을 키우라는 조언과 함께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경계해야 할 사항도 잊지 않았다.
저자가 지적한 대로 우리는 그동안 자본주의를 과도하게 숭배해 온 것은 아닌지, 아니면 나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로 치부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또한, 삶의 진정한 의미를 행복보다는 고통에서 찾아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경제는 더 이상 '알면 좋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평소 생각이다. 하지만 『경제한 원론』이 훌륭한 책인 줄은 잘 알지만, 필자 같은 평범한 사람이 그 책에서 현실 자본주의를 깨닫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전문적인 용어와 복잡한 이론을 내세운 책보다는 현실에 기반한 이해하기 쉬운 책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숨겨진 뼈, 드러난 뼈』·로이 밀스(해나무, 2023)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
'드러난 뼈'는 몸 밖에서 수많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일단 외부에 드러나면, 뼈는 인체의 든든한 버팀목이 아니라 지구의 역사와 인류 문화의 탁월한 기록자가 된다.
『숨겨진 뼈, 드러난 뼈』, [205 p]
드러난 뼈의 정체성은 기록자이다. 게다가 인간의 탐험, 특히 우주여행의 가장 골치 아픈 방해꾼은 ‘뼈 손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구 중력에 맞춰서 진화해 온 호모사피엔스의 뼈는 지구 밖에서는 취약한 단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