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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Oct 15. 2023

책을 사랑한 작가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헤르만 헤세

1.

무엇인가 부족해서 항상 갑갑했던 시절. 정작 정확히 무엇이 부족한지 필자의 어설픈 지식과 능력으론 알지 못했다. 공간과 시간을 가리지 않고 책장이 있는 곳이면 항상 보이던 헤르만 헤세라는 낯선 이름. 질풍노도의 시절,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에밀 싱클레어의 발견은 나에게 '위로'가 되었었다. 그래서 미련한 나의 지난날을 추억할 때면 오래전 읽었던 ⟪데미안⟫을 다시 꺼내 들곤 한다. 이 책의 주인공 데미안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하지만 청소년 교양을 함양하기 위한 추천 도서라는 명목으로 숙제처럼 읽었던 ⟪데미안⟫은 나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한 그저 그런 책이었다. 하지만 수능을 앞둔 고3 시절에 만난 ⟪데미안⟫은 조금 달랐다.


처음엔 단순한 반항과 호기심이었다. 그래서 어리석게도 책의 내용보다는 처음 접하는 단어들의 뜻을 해석하는데 몰입하곤 했었다(아브락사스, 조로아스터, 껍질의 파괴). 돌이켜보면 정작 중요한 책의 내용은 제쳐두고 곁가지에만 몰두한 경우라고 하겠다. 공부가 하기 싫어 반항의 의미로 읽었던 그 책은 이상하게도 나에게 안온한 위로를 건넸다. 싱클레어의 고민이 남 일 같지 않았고, '껍질의 파괴'는 신선한 충격이었으며, 헤세의 문체는 꿈결 같았다. 항상 고민하고 방황하는 주인공을 보며 막연하게나마 나와 비슷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이처럼 ⟪데미안⟫에서 독일 문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헤르만 헤세는 싱클레어라는 평범한 청년의 성장 과정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특히 막스 데미안을 스승/친구/인도자로 위기의 순간마다 만나면서 성장하게 되는데, 그는 단순한 인물이 아닌 싱클레어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어둡던 청소년기를 같이 고민해 주는 듯 싱클레어의 생각들은 자연스럽게 공감으로 이어졌다. 고전의 장점은 읽을 때마다 다르게 다가온다는 것인데 ⟪데미안⟫이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독일의 지성 헤르만 헤세, 그의 차분하지만 내면을 파고드는 잔잔한 문체는 소설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작가가 그렇듯이 작품 속 문체는 작가의 정신세계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는 작가이기 이전에 독서가이자 철학자였던 헤세의 현실적인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쉽게 말해 독서, 책, 작가라는 주제로 헤세의 철학과 가치관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데미안'은 결국 헤르만 헤세 자신이 아니었을까? 과학적으로 증명할 순 없겠지만, 모든 작가의 글에는 그의 인생과 가치관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 ⟪데미안⟫이 시끄럽지만 살가운 시냇물 같다면,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는 무뚝뚝하지만 항상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강물과 비슷했다. 투박하고 멋은 없지만, 한마디를 해도 깊은 울림이 있는 강의 여유는 헤세의 문장을 닮았다. 소설은 여타의 장르보다 상상력이 많이 담기게 되는데, 한 편의 에세이처럼 담담하게 쓰인 이 책은 담백한 맛이 있다. 말하지 않은 게 하나 있다.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는 '독서법'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돼 있다는 사실.


깐깐한 그의 문장에서 위로를 느꼈다면 과한 것일까. 독서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궁금한 독자를 위해 저술된 책에서 '감동'을 느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하여 책은 읽고 있지만, 지금까지 해온 독서를 벗어나 새로운 독서법을 찾고 있는 독자에게도 적합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 알고 있겠지만 대부분의 성장이나 발전은 점진적이지 않고 단계적이다. 이를 좌표로 나타내면 선형이 아닌 계단형 증가라고 표현한다. 여기에서도 헤세의 유명한 문장을 인용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책을 대하는 마음, 독서하는 방법, 글을 쓰는 자세에도 껍질의 파괴는 필요하다.


불순한 의도(독서와 관련된 참조할 만한 책을 찾고 있었다)로 집어 든 책이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상당히 냉철한, 그리고 생각보다 비관적인 '독일 문학'에 대한 그의 평가는 ⟪데미안⟫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책과 독서에 대한 그의 지독한 사랑이 느껴지는 문장에서 더욱 인간적인 친밀감을 느꼈다. 너무나도 흔한 말이라서 듣기 싫겠지만 헤르만 헤세의 글을 읽은 이상 할 수밖에 없겠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 사유의 낭만을 온전히 즐기기에 책과 독서보다 괜찮은 건 없다. 여기 책과 독서를 사랑한 나머지 작가가 된 독일의 대문호가 있다.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는 가을을 사유와 고독으로 붉게 물들여 줄 완벽한 책이다.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2.

이 세상 모든 책들이
그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아
하지만 가만히 알려주지
그대 자신 속으로 돌아가는 길

그대에게 필요한 건 모두 거기에 있지
해와 달과 별
그대가 찾던 빛은
그대 자신 속에 깃들어있으니

그대가 오랫동안 책 속에 파묻혀
구하던 지혜
펼치는 곳마다 환히 빛나니
이제는 그대의 것이리

— 헤르만 헤세


▶︎ 이 책을 처음으로 펼쳤을 때 만났던 헤세의 시, 계속 읽을 수밖에 없었다.



책은 진지하고 고요히 음미하고 아껴야 할 존재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책은 그 내면의 아름다움과 힘을 활짝 열어 보여준다.


▶︎ 책과 헤세의 관계(?)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문장이다. 그에게 책이란 자신의 존재 그 자체였다.



사랑이란 참으로 기이하니, 예술에서도 그러하다. 사랑은 모든 교양, 지성, 비판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낸다. 가장 멀리 있는 것을 서로 묶어주며, 최고로 오래된 것과 가장 최신의 것을 나란히 둔다. 사랑은 일체를 독자적인 구심점으로 수렴함으로써 시간을 극복한다. 오로지 그것만이 확실하며 그것만 이 옳다. 왜냐하면 사랑은 옳다고 주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 사랑이 교양, 지성, 비판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해내는 이유... 사랑은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책을 통해 스스로를 도야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해 나가고자 하는 데는 오직 하나의 원칙과 길이 있다. 그것은 읽는 글에 대한 경의, 이해하고자 하는 인내, 수용하고 경청하려는 겸손함이다.


▶︎ 진정한 독서에 대한 헤세의 정의. 경의, 인내, 경청, 겸손.



독서에서 정 작 중요한 것은 세간의 평가와 합치되는지 여부가 아니라, 오 직 기쁨을 맛보고 자기 내면의 재산에 또 하나의 소중한 보물을 새로이 추가한다는 바로 그 점이 아니겠는가!


▶︎ 독서에서 중요한 것은 세상의 판단이 아니라 '나'에게 즐거운 책이었느냐 아니었느냐이다.



작가의 소임이란 단순한 것을 중대하게 말하는 일이 아닌, 중대한 것을 단순하게 말하는 일이다.


▶︎ 작가의 과제란 무엇인가? 절대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은 아니지만, 차분히 고민해 볼 문제다. 나의 글을 다시 돌아볼 꽤 괜찮은 기회를 마련해 주어 고맙게 느껴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3.

헤세의 독서법


이런 분께 추천드려요!

새로운 독서법을 찾는 분

고독한 가을 고전을 읽고 싶은 분

헤르만 헤세를 만나고 싶은 분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저자 : 헤르만 헤세
번역 : 김지선
출판 : 뜨인돌출판사(2022)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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