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SMO Feb 21. 2024

작별

영원한 이별

청소 좀 자주 해.

너도 이제 건강 챙겨야지.

반찬은 있냐? 무생채 무쳐놨으니 가져가.

내가 한 번 가야 하는데 걱정이다.

그래, 도착하면 연락하고.


첫 직장을 잡고 월세방에서 자취하던 시절, 주말이면 종종 어머니의 잔소리가 가득 담긴 전화를 받곤 했다. 모든 게 불안하고 싫었던 시절, 어머니의 연락은 그저 귀찮은 참견이었다. 당연히 대답은 건성건성. 짧고 맥 빠지는 ‘네’ 아니면 ‘어’가 전부였다. 유독 긴 잔소리가 이어지는 날이면 ‘알아서 잘하니까 걱정 마요’라는 공격적인 말로 통화를 빨리 끝내려 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한숨 소리. 참 비겁하고 못난 아들이다.


어머니가 기어코 집에 찾아오셨다. 청소도 빨래도 잘하고 밥도 잘해 먹고 산다고 매번 말해도 자기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겠는지 정말로 자취방에 오고야 말았다. 힘드니까 돈 걱정하지 말고 택시 타고 오라니까 결국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오셨다. 지금도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 괜히 화가 났다. 역시 이번에도 퉁명스러운 인사. '왜 왔어' 방문을 열자마자 어머니가 맨 먼저 한 건 청소와 빨래 그리고 잔소리였다. 그냥 고맙다고 말하면 될 텐데 나중에 못 찾으니 아무것도 건들지 말라고 말하는 나….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전화를 받은 건 해가 쨍쨍히 비추던 한 낮이었다. 손은 운전하고 있었지만 머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침대에 멍한 눈으로 누워있던 어머니. 상상했던 모습과 너무 달라서 처음엔 못 알아봤다. 갑자기 수척해진 얼굴에 나도 모르게 질끈 눈을 감았다. 똑똑히 기억한다. 병상에 계신 어머니를 보며 느낀 감정은 안타까움이나 슬픔이 아니라 나를 향한 후회였다. 몸은 상하셨지만 다행히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실 수 있었다. 이제 병원에 올 일은 없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하지만 근거 없는 희망은 불안한 미래를 감추려는 방어기제임을 잘 알고 있다. 반복되는 입원과 퇴원, 그리고 그 주기는 점점 짧아졌다. 이제는 고맙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할 수 있는데 야속한 세월은 결국 어머니와 나를 작별로 갈라놓았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는 안다. 내 삶이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는 사실을, 혼자서 이뤘다고 착각한 행복이 어머니 덕분이라는 현실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어머니도 좋아했었다는 추억을.


영원한 이별은 아프다. 들을 수 없는 말을 해야 하기에 슬픔보다 그리움이 더 무섭다.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무슨 말을 남겨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어머니가 나를 처음 만났을 때 무슨 말을 했을지 상상해 봤다.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아무리 떠올려봐도 기억날 리 만무하지만 꾹꾹 눌러 관 위에 내 마음을 남겼다.


안녕! 아들.


엄마, 안녕(安寧).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북을 발간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