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기록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연필 자국이 낫다
얼마 전 김신지 작가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를 읽으면서 시간과 기록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연말정산이 우리가 한 해 동안 벌고 쓴 돈에만 필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보낸 삶(시간)에도 필요하다는 말은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 다행히 월 별로 읽은 책들을 개인적인 공간에 간략하게나마 정리하고 있었다. 어떤 책을 읽기 전과 후 변화 없는 내 모습보다 비참한 것은 없다는 생각에 시작한 것이데, 김신지 작가의 책을 읽고 더욱 그 생각을 확신하게 되었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하루에 들었던 수업이 한 과목을 연달아한 것이 아니라 시간별로 여러 과목으로 나누어 들었던 이유, 인류가 지구의 시간을 연, 월, 일을 구분해서 지낸 이유 그리고 지구의 입장에선 황당하겠지만 우리가 1년을 12달로 나누어 쓰고 있는 이유는 모두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인간의 기억력은 유한하기 때문이 아닐까? 일정한 규칙으로 구분해 기억과 생각을 정리해두지 않는다면 가장 최근의 기억에만 의지하며 살게 될 것이다.
사설이 길었다. 앞으로 이곳은 한 달간 있었던 나의 경험을 정리하고, 그런 기록에서 이어지는 의견과 생각들을 나누는 공간으로 정의한다. 우선 독서와 관련된 것만 정리해본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
20세기 인류 문명 발달의 변곡점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책.
독립과 전쟁이라는 급격한 사회변혁, 군부독재의 엄혹한 시대를 민주화의 열망으로 버틴 유시민 작가. 이런 혼돈의 시대를 겪으며 자란 저자가 바라보는 20세기는 어떤 모습일까?
경제제도와 정치체제에 관한 한 냉전시대가 막을 내린 지금 시점에서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복수정당제와 자유선거를 핵심으로 하는 의회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토대로 사회주의 이상을 결합한 경제체제다.
#지리의 힘 #팀 마샬
정확하게 세상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요소 중 '지리'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중국의 해양강국으로 팽창하는 이유, 인도와 파키스탄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 미국이 세계 패권을 거머쥘 수 있었던 이유, 러시아 팽창의 최대 난제, 영국이 EU를 탈퇴하게 된 배경 등을 저자는 지리적 관점에서 세세하고 설득력 있게 책을 전개해 나간다.
아프리카와 유럽 간의 발전의 차이는 <배를 띄울 수 있는 강>들의 유무에서 시작되었다.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재독
'유전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생명의 본질'이라는 혁신적인 개념
어떤 평론가는 진화론에서 『종의 기원』이 성경책이라면 『이기적 유전자』를 고전소설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동안 가지고 있는 모든 기본지식을 흔들 만한 명제를 제안하는 책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진실이 진실이 아니기를 바란다고 해서 그 진실을 되돌릴 수는 없다.
#나름 독서 #이채윤
자투리 시간에 최적화된 '10분' 강독
대부분 바쁘다는 핑계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 또한 독서다. 그리고 더욱 어려운 것이 '꾸준한' 독서다. 하지만 여기 그러한 핑계로도 피할 수 없는 책이 있다. 저자는 이 책을 버스를 기다릴 때, 잠자리에 들기 전, 화장실에서 잠깐의 시간 투자만으로 충분히 훌륭한 독서가 가능한 책이라고 소개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많은 경우에, 자신의 미래를 만든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기아의 참상과 원인
기아와 기근으로 허덕이는 아이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자그마치 하루에 10만 명 이상이, 5초에 한 명 이상이 사망하며 그 직접적 원인이 영양실조라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그들은 모든 꽃들을 꺾어버릴 수는 있지만 결코 봄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재독
자유의 원리와 한계
자유에 관한 명료한 정의는 물론이고 자유의 기본적인 영역, 자유의 원리, 자유의 한계, 자유의 역사, 개인과 정부(대중) 사이의 문제 등 자유와 연관된 주제를 다각적이고 밀도 있게 다룬다.
소수야말로 세상의 소금과 같은 존재이다. 이들이 없으면 우리 삶은 정체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들은 전에 없던 새로운 좋은 것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좋은 것을 잘 유지 · 발전시키기도 한다.
#공산당선언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재독
자본주의가 태생적으로 가진 모순
대한민국만큼 빨간색이 스펙트럼 분석을 통해 인식 가능한 빛의 한 구성 요소라는 객관적 사실을 넘어 이토록 이데올로기적인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나라도 드물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의 이론을 사적 소유 폐지라는 하나의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다.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리처드 필립 파인만
양자물리학의 배경지식을 파악하기 위한 '물리학 개론서'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이란, 물질과 빛이 연출하는 모든 현상을 서술하는 도구이며, 특히 원자 규모의 미시세계에 주로 적용된다.
물리학은 모든 과학 분야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분야이며, 과학의 발전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학문이다. 사실, 오늘날의 물리학은 현대 과학의 산파 역할을 했던 자연철학과 거의 동등한 역할을 하고 있다.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김신지
기록하면 삶에서 얻게 되는 것들
사랑하는 것들을 기억하기 위해 중요한 것들을 기록해야 한다는 저자는 기록의 소중함과 그 구체적인 방법을 포근하고 따뜻한 문체로 이야기한다. 이렇게 말랑말랑한 자기 계발서는 처음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며, 누군가는 적어서 남겨두고 누군가는 흘려보내는 바로 그 시간요. 시간이 쌓인 기록은 사실 그게 무엇이든 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삶이란 건 원래 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이야기니까요.
우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자기 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다 일이 잘못돼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런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길로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궁극적으로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이다.
이달의 문장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서 선정했다. 원제는 On Liberty (1859)로 '자유에 관하여'가 더 어울린다. 다시 말해 딱딱한 개론서가 아닌 '철학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론에 앞서 인류를 향한 밀의 따뜻한 시선이 책 곳곳에 숨어있다. 그러한 문장 중 특히 위의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19세기 철학자의 애정이 담긴 문장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이 책은 단순히 진화론과 유전학적 지식만을 전달하는 책이 절대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인류는 생명체를 탐구할 때 습관적으로 개체나 집단의 관점이라는 한계를 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은 '유전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생명의 본질'이라는 혁신적인 개념을 제안함으로써 진화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