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또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한밤중도 아닌, 그렇다고 여명을 맞이할 새벽도 아닌 애매한 시간에 눈이 떠졌다. 창밖은 적막하고, 방 안은 조용히 식어가는 공기로 가득했다. 시계를 확인하니 새벽 4시였다. 이른 시간이라 다시 눈을 감아볼까 하다가도, 이미 깨어버린 정신은 쉽사리 나를 잠으로 이끌지 못했다. (시간과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게)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끄럽지만, 잠자는 시간을 온전히 꿈으로만 채우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동안, 새벽의 공기는 차갑고 적막했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들이 밀려들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을 텐데, 나는 왜 이렇게 멈춰 있는 것처럼 느껴질까? 예전엔 이런 적이 드물었다. 한 번 잠들면 아침까지 깊게 자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중간에 깨는 일이 잦아졌다. '나이 탓인가?'라고 생각하면서도, 애써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파헤치려 하지 않았다. 가끔은 이유를 알기보다 모른 척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 때도 있다. 세월 탓으로 돌리는 것이 그나마 내가 내리는 최선의 합리화였다.
수면 중간에 자주 깨는 내 모습을 곱씹다 보면, 생각은 언제나 똑같은 결론에 다다른다.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 어제와 오늘, 이번 달과 지난달, 그리고 올해와 작년의 경계는 점점 흐릿해진다. 분명 한 해 동안 뭔가를 하며 살았는데, 그 모든 것이 기억 속에 희미해져 간다. 나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나는 내 삶을 잘 살고 있는 걸까? 이런 의문이 새벽의 적막과 함께 나를 감싸기 시작한다.
눈을 감으려 했지만, 마음이 복잡해서인지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런 날이면 보통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때우곤 하지만, 오늘은 그것마저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적막 속에 나 자신을 내맡겨 보고 싶었다. 가끔은 이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또 다른 생각들이 머리를 채운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렇게 지나가버렸구나.'
연말·연초가 되면 언제나 성찰과 다짐의 시간이 찾아온다. 어쩌면 나만의 의식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내가 보낸 시간은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졌는지 생각하고, 다가올 한 해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계획해 본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런 성찰과 다짐의 과정을 통해 나는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기를 꿈꾼다. 하지만 때로는 성찰과 다짐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성찰은 과거를 돌아보는 행위다. 지나간 시간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 기억에 남는 장소, 다시 먹고 싶은 음식들. 그 모든 것들은 이미 내 손을 떠나 과거라는 이름의 상자 속에 담겨 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기억들은 나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 속에서 나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때로는 반성하며 앞으로의 방향을 정리한다.
반면 다짐은 오로지 앞을 향한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 속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 가보고 싶은 장소, 만들어 보고 싶은 음식 같은 것들이 다짐의 원동력이 된다. 다짐은 미래를 향한 나의 기대와 희망을 상징한다. 그래서 성찰과 다짐은 그 방향성에서 서로 다르다. 하나는 뒤를, 다른 하나는 앞을 바라보며,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 않는 듯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성찰과 다짐은 결국 서로 연결되어 있다. 성찰이 없다면 다짐은 방향을 잃고 방황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짐이 없다면 성찰은 단순한 후회와 회한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 둘은 서로를 보완하며, 나라는 존재를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힘이 된다. 새벽의 고요 속에서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새벽 4시 30분. 천장을 바라보던 나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한다. 먼동이 떠오르기 시작할 시간은 아직 멀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작년의 해돋이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조용히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어두운 거리, 고요한 나무들, 희미하게 빛나는 가로등을 바라보며 새벽의 공기 속으로 깊이 스며들었다.
성찰과 다짐이 다르기에 같이 사유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할수록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면서도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성찰이 없다면 다짐은 방향을 잃고 방황할 것이고, 다짐이 없다면 성찰은 후회와 회한에 머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이 두 단어의 차이와 연결성을 생각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 새벽의 고요 속에서 흐릿한 생각들이 뒤엉키며 머릿속을 떠다녔다. 성찰은 과거로 향한다. 지나간 시간 속에서 내가 무엇을 했고, 무엇을 놓쳤으며, 무엇을 얻었는지를 천천히 꺼내본다.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꺼내어 한 장 한 장 넘기듯, 지나간 시간을 곱씹는다. 반면, 다짐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다. 불확실한 미래를 상상하며 그려내는 일종의 청사진이다. 다짐 속에서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과거와 미래, 이 두 축이 없다면 지금의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런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뜻밖의 기상으로 시작된 고단함도 어느새 ‘지나간 시간’이 되었고, 익숙한 지루함이 다시 찾아왔다. 바쁘게 흘러간 하루의 끝, 일상의 피로 속에서 특별함을 찾기란 여전히 쉽지 않았다. 바로 그때,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뭐 해? 새해도 됐는데 해돋이 보러 가자.” 짧고도 뜬금없는 제안이었지만, 묘하게 반가웠다.
그 말은 뜬금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설렘을 불러일으켰다. 외로움을 방학 숙제보다 더 싫어했던 내가 친구와 함께 새해를 맞이할 기회를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그럽시다."라고 대답하는 순간, 나는 무겁던 피로감을 잠시 잊었다. 어쩌면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단순한 행위가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재들의 통화는 언제나 단순하고 실용적이다. 오랜 친구들 사이에서는 더 그렇다. “새해에 뭐라도 하자.”라는 친구의 제안에 복잡한 설명은 필요 없었다. 서로의 성격과 의도를 너무 잘 알기에 말보다 침묵 속에서 더 많은 것이 전해졌다. "가자."라는 짧은 대답 하나면 충분했다. 단순한 말속에는 오랜 우정에서 비롯된 신뢰와 함께 또 한 번의 추억을 만들어보자는 묵묵한 동의가 담겨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또 하나의 추억을 쌓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이후 대화방에서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젊은 시절이라면 먼 곳이라도 기꺼이 떠났겠지만, 이제는 자본주의의 톱니바퀴 속에 갇혀버린 직장인들이기에 선택의 폭은 좁았다. "멀리 가긴 힘들지 않냐?"라는 한 마디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우리의 선택은 인천 거잠포 선착장이었다. 가까운 거리와 적당한 시간이라는 현실적인 조건 속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결정은 빠르게 이루어졌지만, 그 과정에서 느껴진 설렘은 의외로 크고 따뜻했다. 단순한 계획이었지만, 이 계획이 나에게는 새로운 시작점처럼 느껴졌다. 장소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무엇보다도 큰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깨달았다.
출발 전날 밤, 나는 여행을 준비하며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새해의 해돋이를 본다."라는 단순한 계획이지만, 그 계획이 일상에 작은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평범했던 나날들 속에서 조금은 특별한 하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생각을 품은 채 이불속에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하지만 그 차가움 속에서 나는 오히려 기분 좋게 깨어났다. 아직 어둠이 짙게 깔린 거리,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골목길을 걸으며 마음속에는 묘한 기대감이 차올랐다. 친구들과의 만남, 그리고 새해 첫 태양을 마주할 그 순간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비록 평범했지만, 그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걸음을 옮기며 다시 한번 다짐했다. 이번 새해는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붙잡을 수 있기를, 그리고 나 자신에게 조금 더 충실한 한 해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