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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Dec 16. 2021

환자가 된 의사의 회고록

⟪숨결이 바람 될 때⟫•폴 칼라니티

1.

우리가 꿈꿔왔던 삶의 자세를 이리도 지적이고 과학적으로 표현한 문장이 또 있을까? 나는 책을 고를 때 얼마나 많은 독자가 얼마나 좋은 평가를 했는가를 선정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조건에 충분히 만족하는 책이 바로 ⟪숨결이 바람 될 때⟫이었다. 리뷰를 남긴 사람이 상당히 많았고 평가도 대체로 후했다. 그래서 바로 희망 도서 리스트에 올려놓았지만, 책 소개만 보고 불치병과 맞서는 의사의 감동적인 이야기 정도로 예상하고 읽기를 미뤄두었던 책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처럼 책장을 넘기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저자의 문장에 빠져들었다.


영문학을 전공했던 저자의 경력 때문인지 문장 하나하나가 간결하지만 아름답다. 그리고 조금은 쓸쓸하다. 마치 정제된 시처럼 운율이 느껴져서 리듬감 있게 읽을 수 있고, 실제로 소리 내어 읽어보면 더욱 문장의 수려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책의 후반부는 소리를 내 읽어보기까지 했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서른여섯 젊은 나이에 폐암에 걸려 어린 딸과 그와 똑같이 의사인 아내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신경외과 의사의 이야기이다. 글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이야 당연하지만, 저자의 미뤄두었던 작가로서의 꿈을 삶의 마지막 순간이 돼서야 이루었다는 사실이 더 뼈저리게 다가왔다.


자본주의를 도구가 아닌 신념으로 받들다 보니, 행복도 돈처럼 저축했다 꺼내 쓸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미래에 성취될 행복 때문에 오늘을 저당 잡혀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폴 칼라니티(Paul Kalanithi)는 1977년 인도 출신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의과 대학을 졸업한 후 스탠퍼드 대학으로 돌아와 신경외과 레지던트 수련과 신경과학 박사 후 펠로우쉽을 마쳤다. 그동안 스무 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미국 신경외과 학회에서 레지던트 연구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 지식만으로 충분할까? 그는 삶과 죽음을 진지하게 고민하던 청년이었다.




학창 시절 문학을 사랑했던 저자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생명과 죽음에 대한 궁금증을 생물학과 영문학에서 찾으려 했지만, 더욱 근원적인 질문의 답을 찾으려 뇌에 관심을 끌게 되고 결국 신경외과 의사라는 남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한다. 이렇게 의사로 성장하면서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도덕과 신념이란 무엇인지'와 같은 철학적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며 성찰하게 되고 의사의 역할에 충실하던 중 불치병에 걸리고 만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책은 저자가 실제로 암 치료를 위해 투병 중인 상황에서 집필되었다.


암이라는 불행에 맞서 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치열하고도 우아한 투병기이자, 항상 환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의사였던 저자가 환자로 역할이 바뀌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생생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회고록이다. 그의 용기 덕분에 그리고 이 책 덕분에 나에게는 먼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과장 없이 삶 그 자체를 써낸,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은 두렵지만 죽음도 삶의 일부분'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저자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용감했고 대담했는지, 담담하게 써 내려간 그의 글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만약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점점 가벼워지는 자기 숨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꼈을 테지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도 스스로 빛이 되어 결국에는 작가로서 소중한 작품을 남기게 되었다. 죽음으로 나아가고 있는 순간에도 그는 살아있었다. 안타깝지만 그는 우리에게 멋진 책을 남기고 하늘의 별이 되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남기고 죽어가면서 그는 우리에게 어떤 말이하고 싶었던 걸까? 죽음은 인간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책이다.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2.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


▶︎ 우리가 꿈꿔왔던 삶의 자세를 이리도 지적이고 과학적으로 표현한 문장이 또 있을까?



재앙(disaster)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부서지는 별을 의미하는데, 신경외과의의 진단을 들었을 때 환자의 눈빛이 바로 그렇다.


▶︎ 문학을 사랑한 신경외과 의사가 글을 쓰면 이런 표현이 나온다. 독특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할 줄 아는 작가란 우선 자기 삶에 충실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인류의 지식은 한 사람 안에 담을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맺는 관계와 세상과 맺는 관계에서 생성되며,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 스스로 언제 세상을 떠날지 알고 있다는 것보다 괴로운 건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와중에 인간의 품위를 지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한 끼만 굶어도 화가 나는 필자를 봐도 알 수 있다.



3.

마지막을 준비하는 의사의 회고록


이런 분께 추천드려요!

훌륭한 의사의 삶이 궁금한 분

인간의 품격이 왜 중요한지 알고 싶은 분

이과적 에세이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은 분


숨결이 바람 될 때

저자 : 폴 칼라니티
번역 : 이종인
출판 : 흐름출판(2016)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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