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과 곡선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가우디는 이런 말을 남겼다. "직선은 인간의 것이고, 곡선은 신의 것이다." 이 문장을 곱씹으며 지금 당신의 주변을 한번 둘러보라. 당신이 앉아 있는 방, 글을 읽고 있는 스마트폰, 창밖으로 보이는 거대한 빌딩 숲,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그리고 책장에 꽂힌 책들까지. 인간이 작정하고 만든 것들은 하나같이 반듯한 직선이다. 직선은 인간의 욕망이다. 혼란스러운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고, 시작과 끝을 명확히 통제하고자 하는 본능이 투영된 결과물이다.
반면, 시선을 돌려 자연을 바라보면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하늘을 유유히 흐르는 구름, 굽이쳐 흐르는 강물, 그리고 사람의 몸. 신 혹은 자연이 빚어낸 것들 중에는 자를 대고 그은 듯한 직선이 단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은 휘어지고, 굽어지고, 둥글게 이어진다. 곡선은 자연의 순리다. 억지로 길을 내지 않고, 장애물을 만나면 부드럽게 돌아가는 유연함이 그 안에 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세계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살아간다. 아침에 눈을 뜨면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네모난 문을 열고, 반듯하게 닦인 도로를 달려 회사로 향한다. 직선의 세계로 출근한다. (월요일 아침, 그 출근길이 유독 반듯하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만은 아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목표를 향해 최단 거리로 달리라는 압박을 받는다. 하지만 지치고 힘들 때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둥근 능선의 산을 찾고,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를 찾는다. 곡선의 세계로 퇴근하고 싶다.
엔지니어링의 관점에서 보자면 직선과 곡선은 서로 다른 목적값을 가진 함수다. 직선은 최단 경로의 함수다. 효율을 향해 가장 빠르게 달린다. 곡선은 최적 경로의 함수다. 여유를 품고 숨 쉬게 한다. 재미있는 건, 이 두 세계가 배척하는 듯하면서도 끊임없이 서로를 훔쳐본다는 사실이다.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현이 느슨하게 풀리기를 기다리고, 정처 없이 흐르던 물이 단단한 둑을 만나길 고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직선의 이야기다. 직선은 자신감이다. 그리고 문명을 지탱하는 척추다. 비행기의 날개를 생각해 보자. 수백 톤의 쇳덩이가 중력을 거스르고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공기를 예리하게 가르는 직선의 날개가 필요하다. 흐물거리는 곡선의 날개로는 단 1미터도 날아오를 수 없다. 우리가 매일 걷는 다리가 무너지지 않는 이유, 수십 층짜리 빌딩이 거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이유도 그 안에 철골이라는 강력한 직선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직선은 힘이 세다. 망설임이 없고, 타협하지 않으며, 목표를 향해 꼿꼿하게 뻗어 나간다.
우리 인생에도 반드시 직선의 시기가 필요하다. 무언가를 성취해 내야 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직선으로 깎아낸다. 수험생의 시간표는 빈틈없는 직선이어야 하고, 신입 사원의 자세는 꼿꼿한 직선이어야 한다. (나도 그랬다. 그리고 그 시간표는 일주일을 못 버텼다.) "글쎄요", "아마도요"라는 모호한 태도로는 험난한 세상의 벽을 뚫을 수 없다. "이것이다", "할 수 있다"라는 명확한 확신, 즉 직선의 태도만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다.
그래서 젊음은 직선을 닮았다. 타협할 줄 모르고, 돌아가는 것을 싫어한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으면 나오는 최단 거리. 그것이 직선들이 추구하는 유일한 진리다. 그들은 덤불을 헤치고, 벽을 부수고서라도 가장 빨리 깃발을 꽂아야 직성이 풀린다. 그 속도와 패기가 오늘의 우리를 만들었다. 직선이 없었다면 인류는 아직도 동굴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직선에는 치명적인 슬픔이 있다. 너무 뻣뻣하다는 것이다. 강철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해 보이지만, 탄성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예고 없이 뚝 하고 부러진다. 휘어질 줄 모르는 사람은 부러지기 쉽다. 자신의 논리만 옳다고 믿는 직선적인 사람은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 쉽다. 직선은 본질적으로 찌르는 모양이기 때문이다. 뾰족한 말, 날카로운 지적, 칼같이 자르는 관계. 이것들은 모두 직선의 언어다.
가장 빠르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과정을 생략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직선으로 달리는 사람은 길가에 핀 꽃을 보지 못한다. 옆에서 함께 달리는 동료의 거친 숨소리를 듣지 못한다. 오직 점과 점, 즉 시작과 끝만 있을 뿐, 그 사이를 잇는 선의 즐거움은 사라진다. 그래서 직선의 끝은 늘 외롭다. 1등으로 도착한 그곳에 아무도 없을 때, 직선은 비로소 자신의 날카로움을 되돌아보며 부드러움을 그리워하게 된다.
이번엔 곡선이다. 곡선은 배려다. 그리고 생명을 품는 그릇이다. 어머니가 아이를 안을 때를 떠올려 보라. 팔을 꼿꼿하게 펴서 일직선으로 만드는 어머니는 없다. 아이를 품에 안으려면 반드시 팔을 굽혀 둥근 원을 만들어야 한다. 직선이 대상을 뚫고 지나가는 힘이라면, 곡선은 대상을 감싸 안아 내 안에 들이는 힘이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는 말은, 자연은 정면으로 싸우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강물은 바다로 가기 위해 수천 번 몸을 굽힌다. 거대한 바위를 만나면 부수려 드는 대신, 부드럽게 휘감아 돌아간다. 그것은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바위를 깎아내고 결국 바다에 닿는 것은 강물의 부드러움이다. 돌아가는 길은 멀고 더디다. 하지만 그 굽이치는 시간 동안 강물은 물고기를 키우고, 주변의 논밭을 적시고, 생명을 탄생시킨다. 직선이 속도를 얻는 대신 풍경을 잃었다면, 곡선은 시간을 쓰는 대신 생명을 얻은 셈이다.
우리 몸이 곡선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의 관절은 둥글게 움직이고, 근육은 부드럽게 이완된다. 만약 우리 몸이 직선으로만 되어 있다면, 작은 충격에도 뼈가 부러졌을 것이다. 굴러가는 공이 깨지지 않는 건 모서리가 없어서 충격을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태풍이 불 때 아름드리나무는 뿌리째 뽑혀도, 가냘픈 갈대는 살아남는다. 갈대는 바람에 맞서지 않고 몸을 굽혀 곡선이 되기 때문이다. 곡선은 약해 보이지만, 사실은 무엇보다 강한 회복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곡선에게도 숨겨진 결핍이 있다. 바로 방향성의 부재다. 뼈대 없는 살이 무너져 내리듯, 직선 없는 곡선은 흐물거리는 무질서가 되기 쉽다. 덩굴식물을 생각해 보라. 그 우아한 곡선이 하늘로 뻗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단단하고 곧은 벽이나 기둥이 필요하다. 지지해 줄 직선이 없다면 덩굴은 바닥을 기어 다니며 썩어갈 뿐이다. 강물 또한 마찬가지다. 물길을 잡아주는 단단한 제방, 즉 직선의 경계가 없다면 강물은 범람하여 재앙이 된다. 마냥 좋기만 한 사람, 거절할 줄 모르는 사람, 주관 없이 흘러가는 사람은 곡선일지 모르나, 그 삶은 위태롭다. (한때 나였다. 그 결과는 번아웃이었다.) 그래서 곡선은 내심 직선의 단호함을 질투한다. 나를 지탱해 줄 척추를, 나를 이끌어줄 이정표를 갈망한다.
직선은 곡선을 로망한다.
재미있는 기하학적 사실이 하나 있다. 지구는 둥글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반듯한 자를 대고 직선을 그려도,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 선은 지구의 굴곡을 따라 휘어지는 곡선이 된다. 반대로, 아무리 굽이치는 곡선이라도 아주 미세하게 확대해서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짧은 직선들이 연결되어 있다. 결국 이 세상에 완벽한 직선도, 완벽한 곡선도 없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품고 있는 존재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직선을 긋는다. 성적을 올리고, 돈을 벌고, 승진을 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린다. 그 직선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서 있을 수 있다. 직선의 치열함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뾰족함 끝에 곡선의 부드러움을 매달아 두었으면 한다. 반대로, 너무 유유자적 흘러가기만 했다면 이제는 삶의 척추를 세울 직선의 용기가 필요하다.
직선은 곡선을 로망한다. 나의 날카로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나의 뻣뻣함이 부러지기 전에 부드럽게 휘어지기를 꿈꾼다. 일할 때는 빈틈없는 직선이어야 하지만, 퇴근하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무장 해제된 곡선이 되고 싶어 한다. 동시에 곡선은 직선을 욕망한다. 나의 부드러움이 우유부단함이 되지 않기를, 나의 자유로움이 방종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흔들리는 갈대도 뿌리는 땅에 직선으로 박혀 있듯, 유연한 삶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단단한 심지 하나를 갖고 싶어 한다.
나는 오늘 이 글을 통해 당신의 삶에 작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당신은 지금 어떤 모양으로 살고 있는가? 혹시 너무 팽팽하게 당겨져 있어 건드리면 끊어질 듯한 직선인가, 아니면 중심 없이 퍼져버린 곡선인가? 가장 아름다운 모양은 직선의 뼈대에 곡선의 살을 입힌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아는 명확한 확신과 단단함을 품되, 그 태도는 누구라도 기대어 쉴 수 있을 만큼 부드러운 사람. 강하지만 부러지지 않고, 부드럽지만 무너지지 않는 사람.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 아직 멀었지만.
누군가에게 닿으려면 팔을 뻗어야 한다. 그것은 직선이다. 용기이고 결단이다. 하지만 그 사람을 정말로 내 것으로 만들려면, 뻗었던 팔을 굽혀야 한다. 그것은 곡선이다. 포용이고 사랑이다. 찌르는 건 직선이지만, 안아주는 건 곡선이다. 서로를 질투하고 서로를 로망하는 이 두 가지 선이 만나는 곳, 그곳에 비로소 온전한 당신이 있다.
사람에게 닿는 가장 빠른 길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