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과 비판
"와, 대박이다.", "너 진짜 천재 아니야?", "완전 최고야."
살면서 이런 말을 들었을 때를 떠올려 보자.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입꼬리가 올라가고 어깨가 으쓱한다. 하지만 돌아서는 순간, 입안에 넣자마자 녹아버리는 솜사탕처럼 달콤함은 사라지고 묘한 허기가 찾아온다. 대체 뭐가 대박이라는 거지? 곱씹어 볼수록 알맹이가 없다. 그 칭찬은 나를 향한 것이라기보다, 그저 침묵을 메우기 위해 던진 추임새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 문장은 호흡이 너무 길어서 읽기 힘들어.", "네가 의도한 논리가 여기서는 앞뒤가 안 맞아." 이런 지적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얼굴이 화끈거린다. 반박하고 싶어 입술이 달싹거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끄러움은 가라앉고, 그 자리에 단단한 고마움이 들어찬다. 그 사람은 나의 글을, 나의 의도를, 나라는 사람을 뚫어지게 들여다봤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긍정의 힘이고, 비판은 사람을 위축시키는 부정의 힘이라고 배운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 되려면 무조건적인 칭찬을 쏟아내고, 쓴소리는 속으로 삼켜야 한다고 믿는다. 나 역시 한때는 그런 사람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습관적으로 "너무 좋네요", "멋지세요"를 연발하는 칭찬 기계였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내 입에서 나온 '좋아요'의 90%는 거짓말이었다.) 그게 사회생활을 잘하는 요령이라 착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의 영혼 없는 칭찬들이 사실은 상대방을 향한 가장 정중한 무관심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관계의 엔지니어링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타인에게 느끼는 갈증은 긍정의 부재가 아니라 해상도의 부재다. 흐릿한 칭찬은 칭찬이 아니라 소음이다. 그것은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을 선물하는 행위와 같다. 상대방은 내가 무엇을 잘했는지, 나의 어떤 부분이 빛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뭉뚱그린 말들은 우리 관계를 저화질로 만든다. 반면, 초점이 정확하게 맞은 비판은 비수가 아니라 수술용 메스다. 아프지만 환부를 정확히 도려내어 사람을 살린다.
결국 칭찬과 비판은 본질적으로 같다. 둘 다 타인을 향한 관심이라는 빛을 렌즈에 통과시켜 쏘아 보내는 행위다. 차이가 있다면 칭찬은 그 사람의 빛나는 부분을 확대해서 보여주고, 비판은 그 사람의 어두운 부분을 보정해서 보여줄 뿐이다. 문제는 우리가 렌즈를 닦지 않은 채, 뿌연 상태로 말을 던진다는 데 있다. 해상도가 낮은 칭찬은 아부가 되고, 해상도가 낮은 비판은 비난이 된다.
먼저 칭찬의 해상도를 높여보자. 칭찬의 본질은 기분 전환용 사탕발림이 아니다. 그것은 확인의 언어이자 보존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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