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매달린 사람들
딸 친구 중에 운동을 잘하는 친구 A가 있다. 모두가 공부라는 비슷한 목표를 갖고 있는 것 같은 한국과 달리, 국제학교에서는 부모들이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할 다양한 믿음과 재력으로 아이들의 인생에 한 번뿐인 학창 시절을 고민하며 함께 나아간다. 이 친구 A의 엄마 R은 아이가 16살이 될 때까지는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는 시야를 키워주고 싶다는 말을 했다. 영어로 소통을 하다 보니 내가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16살까지는 공부보다는 세상공부를 시키겠다는 의미였다. 이 어린 친구 A는 공부는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스키를 최상코스에서 능수능란하게 타고, 클라이밍 짐에서는 어른들도 오르기 어려운 제일 어려운 코스를 30분이나 걸려서 완주했다. 지루해서 포기를 하거나 꼼수를 써서 대충 올라갈 수도 있었는데, 흰색 코스를 선택하고 끝까지 완주를 했다.
공부시키지 않을 용기, 그리고 수년간, 매주 베이징올림픽이 열렸던 멋진 스키장에 가거나 클라이밍 짐에 가서 몇 시간씩 있을 수 있는 여유가 한국인인 나에게는 없다. 보통 한국의 엄마들은 국제학교에서도 원어민인 아이들에 비해 우리 아이들이 영어를 못할까 봐 전전긍긍 대며 공부를 시키고, 수학 과학 중국어 어느 하나 낮은 반에 배정될까 봐 아이들을 다그친다. 국제학교가 한국학교보다 여유롭게 놀기만 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곳에 들어와 직접 자녀를 교육시켜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고충이 또 있다. 운동도 악기도 취미로 수년째 배우고 있는 부잣집 아이들 사이에서 그저 공부 말고는 더 시킬 수 없는 미안함도 누군가에게는 사치스러운 고민일 것이다.
너무 고맙게도 R은 내 둘째 딸을 데리고 클라이밍 짐에 데려가줬는데, 외동딸인 A에게 내 딸이 함께 하고 싶은 친구였나 보다. R은 아이를 직접 가르치기 위해 클라이밍을 본격적으로 배웠다고 했다. 아이들이 클라이밍을 하는 동안 밧줄 잡는 것을 내가 도와주고 싶다고 했지만,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아무짝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매번 아이를 보내기만 한 것이 미안해서 어제는 나도 클라이밍 짐에 쫓아가서 함께 해보기로 했다. 내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았는지 R은 나에게 체험수업을 권유했고, 나는 얼떨결에 클라이밍 체험수업을 받아버렸다.
난생처음으로 벽에 매달려보았다. 그동안 딸이 벽에 달린 돌멩이에 매달려 참 높이도 올라간다, 정도로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그 돌멩이에 올라보니 발가락도 아프고 손바닥도 너무 쓰라리고, 떨어질까 봐 무서워 죽겠고, 포기하고 싶고 그만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줄을 타고 내려오는 게 쉬워 보였는데, 밧줄을 잡고 내려오는게 너무 무서워서 울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다시 돌멩이를 밟고 아래로 내려왔다. 나처럼 내려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체험수업을 받는 동안 계속 올라갔어야 해서 올라갔다가, 밧줄에 기대 내려오지 못하고 또 하나씩 내려왔더니 처음 보는 어떤 상냥한 여자분이 나를 위해 함께 뛰어내려준다며 내가 있는 곳까지 올라왔다. 충분히 이해한다며 나를 달래서, 이렇게 손만 놓으면 된다고 나를 위해 뛰어내려줬고, 왠지 그 여자분이 뛰어내리자 나도 뛰어내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클라이밍 짐에서 번지점프 하는 사람처럼 괴성을 꽤액 지르며 눈물, 콧물을 흘리며 내려오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지만, 처음 보는 나를 위해 내가 있는 곳까지 친히 올라와서 뛰어내려준 베이징런(北京人)의 친절한 마음을 차마 실망시킬 수는 없어 마지못해 뛰어내렸다.
45분의 체험수업이 겨우 끝나고 죽을뻔한 위험에 처했다 겨우 살아 나온 것처럼, 아드레날린이 솟구쳐 기절할 것 같았는데 자비 없는 A와 딸내미는 나를 가르치겠다며 다시 나를 끌고 돌멩이가 가득 박혀있는 벽 앞에 섰다. 올라가는 것은 할 수 있었는데, 내려올 때 벽에서 손을 떼는 것은 살아야 한다는 본능과는 반대되는 일이라 도저히 손이 떼어지지 않았다. 벽에서 손을 떼어야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 수 있는데, 살고자 하는 욕망이 언제 이렇게 강해졌나 싶다. 밧줄이 나를 잡고 있지만 믿을 수가 없는 것을 보니 의심도 참 많아졌나 보다. 눈으로 보이는 것 외에는 믿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는지 벽에서 손을 떼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그런데 어린 친구들이 나와 함께 뛰어내려준다며 나를 끌고 나란히 벽에 매달렸다. 처음에는 2미터쯤, 그다음에는 3미터, 이렇게 나를 위해 함께 올라가서 나를 기다려주고 함께 뛰어내려줬다. 나는 너무 하기 싫었는데 어린 친구들을 실망시킬 수 없어서 네 번 다섯 번 다시 올라가서 뛰어내려보았다. 함께 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나 혼자였다면 끝내 클라이밍 벽에서 내려오기를 포기하고 끝까지 벽에 매달려 내려왔을 것이다. 처음 보는 모르는 사람도 함께해 줬다. 내 딸과 딸 친구 A가 있어서 몇 번이나 더 뛰어내려봤다. 하도 소리를 질러대서 R이 나를 보며 웃었지만, R은 나를 위해 밧줄을 잡아주고 포기하지 말라고, 하도 아래서 소리를 질러대서 좀 더 어려운 클라이밍 코스를, 어쩌면 평생 하지 않았을 시도를 해봤다. 클라이밍이 뭔지, 겨우 이걸로 죽을 것 같았는지 정신을 못 차려서 말도 제대로 나오질 않았고, 집에 와서 쓰러지듯 9시에 잠에 들었다.
집에 오는 길에 클라이밍을 다시는 안 해야지 결심을 했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다시 한번 해보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싶은 이런 생각은 내가 너무 멍청해서 벌써 어제의 긴장감을 잊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인지 좀 헷갈리지만,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R이 A에게 가르치고 싶은 그 무언가가 베이징의 클라이밍 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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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顶奥森攀岩生态园
岩时攀登中心(西三旗店)
R이 데려가준 클라이밍 짐.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입장료와 체험수업이 거의 같은 가격이라서 체험수업을 받아볼 만 하다. 2위엔짜리 필수 보험을 가입해야 해서 여권정보도 있어야 한다. R의 취향을 견주어 볼 때, 베이징에서 시설 좋고, 적당히 합리적인 가격과 편리한 주차시설을 겸비한 곳이라 유추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