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오케스트라, 지휘자, 사람들
그가 내 입술을 손으로 문지른다. 마치 키스하는 것처럼.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만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닫는다.
그는 나이가 많다. 그에게는 부인이 있다. 아이도 있다. 그는 직장인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다. 어느 전문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고, 여러 대학교에 출강한다.
그와 함께 택시를 탄 게 잘못일까? 정혜언니는 아까 나보고 "지휘자 선생님이랑 가는 방향이 같으니 택시를 같이 타고 가!"라고 쾌활하게 말했었다. 그것은 분명 선의였다.
그 선의가 의미하는 것은 정혜언니에게 있어서 그가 '안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런 표정으로 그 당시 가장 어린 단원이었던 내게 웃으며 그 택시에 타라고 권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이상한 손길이 느껴지자 슬프게도 온몸이 굳어버렸다. 머리가 하얘지고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그가 묻는다. "너 바보지?"
그것은 시작이었다. 그 이후에도 그는 사람들이 많은 테이블 아래로 손을 뻗어 내 허벅지를 만진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굳어버렸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랐고 머리와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의 성추행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은 스물다섯의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성추행을 기억하는 것은 서른아홉의 내가 마치 어제처럼 기억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애초에 벌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다.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좋은 사람'인 그가 나에게만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이 무척 괴로웠다. 그 괴로움은 여전하다. 왜 나에게 그런 거지? 또래 언니들의 해맑은 모습과 굳어버린 내 모습이 교차되면서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만뒀다.
오랜 시간이 흘렀고 나는 그가 나를 기억이나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는 여전히 그 직장인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다. 그는 여전히 목요일이면 모여서 합주를 한다. 그리고 합주가 끝나면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다. 설마 또 다른 어린 여자의 허벅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진 않겠지, 누가 알까.
오케스트라를 나오며 그와 오케스트라에서 많은 존경을 받고 있던 분과 나, 이렇게 삼자대면(?)을 했다. 그런 일이 있었고 나는 나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알아주었으면 좋겠기에 말한다고. 그런데 그 자리에서 그가 말했다. 그냥 내가 오케스트라를 계속하면 안 되겠냐고. 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지?
지휘자와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렴풋이나마 아는 사람들은 모두 침묵을 선택했다. 그리고 여전히 지휘자와 좋은 친구로 지낸다. 15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그들 사이의 '우정'의 깊이는 훨씬 깊어졌을 것이다.
오늘도 그는 합주를 끝내고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웃다가 가족에게 돌아갔겠지. 나 같은 피해자가 당장 주어진 순간순간을 살아내기 위해 꼭꼭 숨어준 탓이라는 걸, 나도 안다.
대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리바리한 스물다섯의 나는 사라지고 흰머리를 걱정하는 서른아홉의 내가 남았다. 15년이 지났어도 괜찮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나는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기는커녕 교향곡을 듣는 것조차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가 설사 나를 기억하고 내게 했던 행동을 기억하고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해서 좋아하던 오케스트라를 그만둔 것도, 굳어버린 채 살아간 시간도 보상받을 순 없다. 오케스트라에서 합주하는 장면이 악몽에 나오는 것은 알까. 꿈에서 나는 다시 단원이 되어 아무렇지 않은 척 바이올린을 연주해야 한다. 불쾌하기 이를 데 없는 꿈이다.
(이 글에 나온 내용은 그가 한 행동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고 이 글을 쓸 수 있음에 내 자신이 많이 나아졌음을 느낀다. 하지만 여전히 괜찮지는 않다.
언젠가 이 글이 그에게 가서 닿았으면 좋겠다. 삶에서 잠시만이라도,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술에 취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면 당신은 술 한 방울 입에 대는 것부터 범죄라고. 나는 괜찮지 않다고. 그리고 당신도 괜찮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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