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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민 Apr 18. 2023

#1. 이거 가능한 일정이에요?

인턴지원자가 스타트업 대표에게 의문을 던지다.

대표님 이거 8주 만에 가능한 타임테이블인가요?
음.. 아 이거 제가 작성한 게 아니고 우리 팀장이... 저도 지금 처음 봐요..


2017년 12월 중순.

대학교에서의 4년의 시간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8학기 마지막 기말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 잘 놓지 못하는 성격 탓에 의무적으로 치르는 시험을 대하는 나의 자세는 항상 필사적이고 치열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노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느끼고, 이것이 또 다른 일을 대함에 있어 긍정적인 연쇄작용을 가져온 것에 대해 참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와  다른 인생의 변곡점이 다가옴을 직감해서였을까?'

대학교 졸업을 앞둔 이 순간 나는 필사적이지도 치열하지도 않았다.

곧 세상에 던져질 것이라는 두려움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세상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이전에 없던 '의연함'을 가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감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나는 할 만큼 했으니 될 대로 돼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겠다'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대학교에서의 마지막 기말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나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큰 야망을 가진 스타트업 면접을 보게 되었다.

(당시 세상의 가치를 높이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던 나의 가치관과 부합했다.)


사실 면접이라고 긴장할 시간도 부여받지 못했다.

스타트업 팀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자취방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밥을 하고 있었다.

팀장이 전화를 한 목적은 30분 뒤에 면접을 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급하게 연락을 한 이유는 미국 해외출장을 다녀오느라 서류를 검토하지 못했고, 때문에 지원자들 모두 자동 탈락 처리되었단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자취방과 회사 위치가 가까웠기에 알겠다고 했다. (지금생각해 보니 첫 단추가 이상했다)


전화를 끊고 시간을 계산해 보니 밥을 조금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세 숟갈쯤 떠먹으니 시간이 촉박했다. 그렇게 나는 집을 나섰다.

뛰어가면서 내 심정은 꼭 붙고 싶다는 절실함보다는 모집공고에서 스타트업이 제시한 8주 타임테이블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다.

일반 기업이 아니라 스타트업에서는 정말 가능한 일정인가? 
역시 스타트업은 뭔가 다른 조직인가?

이 때는 스타트업이 마음속에서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었고 대기업 공채 지원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꼭 붙고 싶다는 절실함 보다는 면접에 가서 궁금증이나 해소하고 오자는 심산이었다.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뛰어가는 장면이 지금도 선명하다.
스마트폰 화면엔 스타트업이 제시한 8주 계획이 열려있다.
궁금증을 들고 면접에 달려가는 모습


'그래! 벌써 나를 한 번 떨어트린 스타트업 대표 얼굴이라도 보자.'

사무실에 도착해서 10여분을 기다리니 스타트업 대표가 등장했다.

팀원들 뿐만 아니라 대표 또한 젊은 인상이었다.

'이거 재밌어질 수도 있겠는데?'

그 뒤로는 일반적인 면접이 진행되었던 것 같다.

일반적인 면접이라 하면 지원자에 대한 회사의 궁금증

그리고 회사에 대한 지원자의 궁금증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함께할 여지를 알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평소 관심 있었던 경영전략마케팅 직무에서 경험과 생각들을 말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이었으며, 의료기기 제조회사에서 경제학을 부전공한 사회과학도가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곁가지로 '플랫폼 비즈니스'에 관한 주제도 얘기를 했는데 관심 있는 눈치였다.

그렇게 다소 포장지를 씌우지 않은 솔직한 말들을 늘어놓다 보니 지원자에 대한 회사의 궁금증은 풀려갔다.


문제는 회사에 대한 지원자의 궁금증이었다.

이미 구글링을 통해 스타트업이 과시하고 싶은 실적에 대한 내용은 파악을 했기 때문에 업력, 팀원 수, 부서 등 외부적으로 알 수 없는 내부현황을 파악하고 궁극적으로 묻고 싶었던 질문을 했다.

포장을 전혀 하지 않은 너무나 날 것 그대로의 물음이었다.

대표님 이거 8주 만에 가능한 타임테이블인가요?
음.. 아 이거 제가 작성한 게 아니고 우리 팀장이... 저도 지금 처음 봐요..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대표는 당황했고 나는 당돌하고 싹수없는 학부졸업예정자 또는 면접 지원자가 되었다.


여담으로 일 년이 지나고 나서야 대표님에게 술자리에서 들은 얘기지만 면접 때 대표님은 나를 뽑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업무 분담이 막중했던 (면접 30분 전에 나에게 연락한) 팀장이 일손이 너무 절실했기에 나에게 긍정적인 한 표를 던졌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일원이 되었다. 


p.s 이렇게 솔직하게 대화에 임했음에도 면접에 붙었기에 '꼭 포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솔직함을 보여줘도 되는구나'라고 한동안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대표가 나를 뽑지 않으려 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것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사건의 본질은 파헤쳐봐야 알 수 있다. 나는 솔직해서 면접에 붙은 것이 아니라 일손이 필요해서 면접에 붙은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면접 지원자. 특히 사회초년생들은 거짓이 아닌 선에서 본인을 잘 포장하길 바란다. 그것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남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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