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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Oct 05. 2020

울지 않는 법

울지 않는 법은 아직도 모른다


병원에서 엄마는 환자인 적이 없었다. 간호사거나, 간호사가 아닐 땐 보호자였다. 고등학생이던 언니가 편도선 수술을 할 때도, 대학 새내기 때 아빠가 신부전증이 왔을 때도, 내가 휴학을 하고 갑작스레 수술대에 오를 때에도 엄마는 늘 보호자였다. 엄마는 가족들의 크고 작은 수술 앞에서도 울지 않았다. 어쩜 그렇게 의연하냐고 물으면 환자를 돌봐야지 슬퍼할 시간이 아니라고 했다. 엄마가 아프다는 건 좀 어색한 일이었다. 예전부터 고혈압이 있기는 했지만, 약으로 조절되는 수준이어서 가족들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 생각으로 엄마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흘렸다. 이상하게 요새는 혈압약을 먹어도 혈압이 내려가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도, 푹 자본 게 언제인지 기억 안 난다는 말도.      


평소 가던 내과 의사의 반응도 우리 가족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엄마는 약을 바꿔 달라고 했다가 괜히 면박을 받았다며 속상해했다. 엄마 말대로 늘 약도 먹었다는데 혈압을 재보니 꽤 높게 나왔다. 갑자기 왜 그런지 이유를 알려면 큰 병원에 가야 했고, 당장은 소견서도 없었기에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보자고 했다. 엄마는 가슴 통증 때문에 밤새 잠을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그제야 덜컥 겁이 났고 엄마를 데리고 집 근처 2차 병원에 갔다. 다행인 것은 마침 그날이 휴가였다는 거였는데, 다행이 아닌 것은 선약이 있어서 낸 휴가라는 것이었다. 병원은 코로나 때문인지 생각보다 한산했고 간단한 검사를 하고 당장 먹는 혈압약을 바꾼 후 심장 정밀 검사를 예약했다.      



사실 그날은 몇 달 전부터 기다리던 호캉스 날이었다. 그냥 저녁 약속도 아니고 1박 일정이었다. 당일이라 취소도 안 되는 것은 당연하고, 몇 달 전부터 친구와 서로 휴가까지 맞춘 날이었기에 걱정은 되지만 엄마를 데려다주고 호텔로 가기로 했다. 또 그날은 중요한 결정을 하는 날이기도 했다. 곧 출간될 책의 제목을 정하는 날이었다. 병원에서 집으로 오는데 출판사에서 여러 번 전화가 왔다. 엄마한테는 책을 낸다고 말하지 않아서 못 받았는데, 집에서 나오면서 보니 나를 애타게 찾는 카톡이 여러 개 와 있었다. 출판사에서 지은 제목도 좋지만, 욕심내서 새벽에 혼자 책 제목을 여러 개 지어 보내 둔 터라 궁금하긴 했다.


책 제목은 최종적으로 원안으로 결정됐다고 했다. 엄마 생각만으로 충분히 머리가 아파서 알겠다고 했다. 곧 있으면 내 책이 나오고, 지금은 그와중에 호텔을 간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사라진다면, 그러니까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엄마가 밤새 쓰러지기라도 하면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이래저래 마음이 잡히지 않는 하루였다. 나는 친구에게도 엄마에게도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날 집에 돌아왔는데 엄마의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어느덧 60대 중반이 된 엄마의 나이가 비로소 실감이 났다. 예전에 우리가 아플 때, 씩씩하게 보호자 역할을 도맡아 하던 엄마를 생각하면 이런 상황에서는 쉽게 울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오만 가지 나쁜 상상이 떠오르며 쉴 새 없이 눈물이 났다. 울면 진정될 것 같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부은 눈을 들키기 싫어서 다음 날 오후 세 시까지 방 안에서 나가지 못했다. 그 와중에 엄마는 밥도 안 먹고 괜찮냐고 그런 날 걱정했고 걱정하는 그 목소리에 또 울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잘 울었다. 슬픈 마음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자동으로 울도록 설계된 사람처럼 잘 울었다. 울고 싶지 않아도 언니가 약 올리면 울었고, 억울해도 울고, 화가 나도 울었다. 회사에서도 눈물을 참지 못해 창피를 당한 적이 있고, 친구 결혼식에서도 그렇게 운다. 어른이 되고 나니 운다는 것은 창피한 것, 숨겨야만 하는 것, 부끄러운 것이 되었다. 그래서 살면서 울고 싶은 날이 오면, 나는 몰래 야금야금 울었다. 그럼에도 눈물을 숨길 수 없는 정도의 일들이 생기면 왜 키스방이나 귀청소방 같은 방은 있는데 ‘눈물방’은 없는지가 항상 의문이었다.      


그래도 엄마가 아플 땐, 우는 딸보다는 울지 않는 똑 부러진 딸이 되고 싶었다. ‘울지 않는 법.’ 그런 건 네이버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다. 안 울려고 할수록 슬픈 생각은 더 커져서 날 더 크게 울렸다. 울어봤자 엄마한테 도움은 하나도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울고만 있는 내가 너무 한심해서 눈물이 났고, 그러다 보면 엄마가 갑자기 내 곁을 떠나는 상상에 이르러 더 크게 울었다. ‘지금은 울 때가 아니야. 정신 차리자.’ 같은 생각은 하나도 도움이 안 됐다. 나한테 그 시간은 그냥 펑펑 울어야 할 시간이었다. 우리가 지나온 수많은 아픈 시간 동안 엄마는 어떻게 울지 않은 걸까.      


엄마는 결국 하던 병원 일을 관두고 쉬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에 혈압 조절이 잘 안 되고 가슴 통증도 있어서 응급실에 한 번 가고, 3차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했다. 간호사도 보호자도 아닌, 환자인 엄마는 너무 낯설었다. 미안했다. 그러니까 엄마도 아플 수 있다는 가정조차 안 한 게 미안했다. 엄마를 엄마니까, 당연히 건강하고 울지 않는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동안 엄마는 정말 한 번도 울지 않았을까? 지금껏 내가 행복하고, 안온하게 지낸 것은 다 엄마가 꾸려 온 것들이었다는 걸 깨닫고 또 울었다. 울지 않는 법은 아직도 모른다. 그래서 울면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로 했다. 엄마의 다리와 팔을 주물러주고, 그건 또 매일 하자니 힘들어서 마사지기를 사주고, 침대에 누워서 옛날 얘기를 하고, 같이 밥을 해 먹고 설거지를 하고, 엄마랑 엄마가 해준 음식은 몰래 찍어둔다.      


부모님이 힘들 때, 아플 때, 약해질 때 웬만해서는 울지 않는 딸이 되고 싶었다. 울지 않고 강한 사람, 든든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아직은 울지 않는 게 너무 어렵다. 그렇게 계속 울 거라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이날을 더듬어볼 때, 엄마는 절대 아프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내 무심함이 비수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그냥 그렇게 마음을 다질 수밖에 없었다.      



몇 주 전, 엄마는 정밀 검사 결과 이상 없다는 소견을 받았다.      


나는 비로소 울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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