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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Sep 19. 2020

산 정상에서 파는 물은 왜 비싼가

태풍보다 무서운 것은 있었다


태풍 바비가 오기 전까지는 우리에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역대급 물폭탄, 태풍 바비가 상륙한다는 예보에 따라 회사의 외거노비인 나는 새벽 6시까지 출근하라는 명을 받았다. 과연 역대급 물폭탄과 조기 출근이 어울리는 말인지 고민하며 늦잠 잘 걱정을 하다 날밤을 샜다. 믿을 건 장마철 필수템인 크록스 샌들 하나밖에 없는 채로 집을 나서는데 새벽이라 그런지 날이 참 어두웠다. [8호 태풍 바비 북상 중. 외출 자제]라는 문자를 자연스럽게 무시하며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이상하게 반응이 없다. 엥? 평소대로라면 숫자가 선명하게 떠야 하는데 아무리 눌러도 엘리베이터는 올라올 생각을 안 한다. 역대급 물폭탄이라 일컬어지는 태풍과 조기 출근, 그리고 엘리베이터 고장의 삼합, 아무리 생각해도 몰카 같은 하루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태풍 바비는 다행히 수도권을 살짝 스쳐 지나갔고 스프레이 같은 비를 맞으며 사무실에 복귀했다. 그렇게 나는 태풍 바비를 금방 잊었다. 태풍보다 무서운 것은 없을 것 같았던 긴 하루도 어찌어찌 지나갔다. 태풍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은 집에 막 도착해서였다.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 사람이었다면 훌쩍 성인이 되었을 엘리베이터는 세월을 직격탄으로 맞는 중이었다. 오전 5시에 시작한 고단한 하루를 가장 고단하게 마무리하며 10층까지 계단을 탔다. 노화다. 고장이다. 부품 수급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등등 엘리베이터를 둘러싼 소문들은 늘어만 갔다. 택배 기사님께 받는 문자도 하나 더 늘어났다. 회사에서 ‘엘베 점검 택배 경비실’, ‘택배 1층에 맡깁니다’와 같은 문자를 받으면 오늘도 엘리베이터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괴로워졌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된 코로나 시대에 엘리베이터마저 잃은 나의 삶은 좀 더 번거로워졌다. 의식불명의 엘리베이터는 세대별 택배량 ‘대’공개 시대를 이끌어냈다. 택배를 시킨 사람들은 누구나 경비실에 들러 자신의 택배를 직접 찾아가는, 수치스러운 과정을 겪어야 했다. 손에 가득 택배를 안고도 또 다른 택배를 찾아 허우적대는 나를 보며 경비 아저씨는, 택배가 그렇게 많아요? 하고 질문을 했다. 박스 분리수거만 하고 다시 오겠다는 씩씩한 나에게 아저씨는 딱한 표정을 지으며 그 정도는 자기가 하겠다며 나를 돌려보냈다. 앞길이 막막했다. 왜냐면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택배가 올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아침에 택배를 넣을 장바구니(택배 바구니)를 챙기는 게 루틴이 됐다.

들어올 땐 맘대로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이제 보니 이 말은 의식불명의 엘리베이터를 가진 자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새벽배송이니 샛별배송이니 택배니 하는 것들은 남의 일이 되면서부터 먹을 것을 시켜 먹지 못하게 되었다. 특가 얇은피 냉동만두도, 제스프리 골드키위 핫딜도 이젠 나에겐 그림의 떡. 동네마트에서 꼭 필요한 만큼만 장을 봐야 하는 시대가 왔다. 스윙칩과 막걸리도 꼭 필요한 물건 중 하나인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차피 계단 앞에서는 카트도 의미가 없기에 여행 갈 때나 꺼내는 백팩을 꺼내 집 앞 마트에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를 맞아 마트는 개점 이래 최고의 성수기를 누리는 중이었다. 배달 신청을 할 거냐는 말에 아직도 의식불명인 엘리베이터가 떠올라서 눈물을 흘릴 뻔했지만 삼십 대의 연륜으로 잘 참아냈다.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은 후, 백팩에 막걸리와 냉동만두, 부침용 두부, 골드키위, 오이, 나물 등등을 담았다. 묵직해진 백팩을 메고, 장바구니를 어깨에 들쳐 메고 계단을 탈 때 가장 괴로운 것은 주변의 시선이었다. 엘리베이터는 고장 나도 내 위장은 여전히 고장 한 번 몰랐기에 백팩에 장바구니까지 유난스럽게 들쳐 메고 장을 봐오는 나를 이웃사촌 누군가라도 본다면.. 왜, 누구에게나 들키고 싶지 않은 순간 하나쯤은 있지 않나.

엘리베이터가 의식을 찾지 못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나자, 14층 아저씨는 경비실에서 고성을 질렀다. 그날은 14층 아저씨의 마음과 경비실의 입장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택배 찾는 걸 포기하고 말았다. 14층 아저씨는 씩씩대며 뒤따라 계단을 오르며 나에게 몇 층이냐고 물었다. 우리 아파트는 14층 건물이었고 나는 당연히 아저씨보다 아래층에 살 게 뻔했다. 그날 밤 자기 전엔 14층 아저씨의 행복을 빌었다. 의식불명의 엘리베이터 덕분에 집밥을 꾸준히 먹은 결과, 배달 음식이 더 간절해졌다. 엄마는 내 손을 꼭 잡고 광어+우럭 반반 회가 먹고 싶다 하였고, 64살의 동갑내기 부부와 함께 사는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평균 연령 53세의 집에서 유일한 30대인 나는 막내의 설움을 뒤로한 채 회를 품에 안고 계단을 올랐다.

흘린 땀만큼 회는 참 맛있었고 엘리베이터 덕분에 나는 안 씨 집안 공식 효녀가 되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고 하였나. 반반족발과 누룽지통닭을 한꺼번에 시켜 먹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날 깨달았다. 산 정상에서 파는 물은 왜 비싼가. 다 필요 없고 힘들기 때문이다. 높은 곳을 오르는 것 자체만으로 힘든데 무겁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남이 힘든 만큼 힘들지 않으려면 그만큼의 값어치를 지불해야 한다. 출근길. 고령의 엘리베이터를 교체하려면 4달이 걸린다는 공지사항을 보면서 태풍보다 무서운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매일 아침 인생을 비관했다.

비관도 잠시, 며칠 후 거짓말처럼 엘리베이터는 의식을 되찾았고 나는 역대급 물폭탄이라던 태풍 바비가 수도권만큼은 조용히 지나갔던 여름날을 떠올리며 역대급 계단 폭탄이 될 뻔한 엘리베이터를 소중히 여기기로 다짐했다. 그동안 다소 평범하다는 이유로 회, 족발, 누룽지 통닭에 밀려 차마 시키지 못했던 단골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튀김, 어묵을 시켜 먹으며 엘리베이터의 회복을 축하했다. 산 정상에서 파는 떡볶이는 얼마나 비쌀까. 떡이랑 고추장이랑 어묵, 파랑 멸치.. 물보다 5배는 비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화곡동 미담분식 만세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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