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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Jan 22. 2021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2020 비학술적 학술제 기고


꾸준히 글을 쓰는 일은 참 어렵다. 그건 인생에 글쓰기 말고도 다른 흥미로운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모바일 카트라이더 이벤트라도 하는 날엔 글을 쓸 수가 없다. 글쓰기보다 카트 세상에서 물파리 좀 날리고 미사일이나 때리는 게 훨씬 재밌기 때문이다. 11번가에서 “오늘만 특가” 또는 “단 하루, 추가 30% 혜택!” 이런 걸 보는 날에도 글쓰기는 글렀다. 쇼핑은 너무 짜릿한데 애석하게도 글쓰기는 그만큼 짜릿하진 않다. 그 밖에도 막걸리를 마셔야 해서, 새로 나온 소설을 읽어야 해서, 인스타를 해야 해서 등등 말도 안 되는 핑계로 나는 매일 글쓰기를 포기한다.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글을 쓰지 않는 게 자연스러워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묘한 죄책감과 좌절감을 느낀다. 물론 꼭 글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슬프게도 나의 준거집단이 ‘쓰는 사람들’에 있을 뿐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고, 글을 써서 관심을 받고 싶다. 그러나 맛있는 크루아상 앞에서, 재밌는 예능 앞에서 ‘글은 무슨 글이야. 나만 행복하면 됐지’ 하고 빵이나 먹고 TV나 보는 내 모습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내 모습이다.

그리하여 나는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한 방법을 찾아 헤맸다. 첫 번째 방법은 유료 글쓰기 모임에 가는 것. 돈을 내고 글을 쓰는 모임이기에 글을 쓰지 않으면 돈을 잃는 것과 같다.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내 피 같은 돈을 생각하며 글을 썼다. 수강료가 비쌀 수록 좋다. 6회 3시간, 25만원이라는 수강료 앞에서 나는 개근을 두 번이나 이뤄냈다. 그러나 25만원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글쓰기 말고도 너무 많았기에 맘에 드는 겨울코트를 본 후로는 더이상 지갑이 열리지 않았다.

두 번째는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무료로 글을 쓰는 것이다. 장소 대관 비용만 내면 혁신적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2주에 한 번, 3시간 정도 글을 쓰고 피드백을 하는 것은 동일하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고, 오프라인 모임이기 때문에 일정이 겹치는 경우에는 모임을 진행하기 어렵다. 3인 이상은 모여야 모임을 진행할 수 있는데, 취소되는 경우 텀이 한 달로 길어져서 아쉬웠다.

강제성 없이는 꾸준히 글을 쓸 자신이 없어서 고민하던 작년 연말, ‘마감의 기쁨과 슬픔(이하 마기슬)’이라는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우연히 발견했다. 평소 팬이었던 작가가 모집하는 바람에 고민할 새도 없이 바로 신청했다. 규칙은 일주일에 한 번, 쓰고 싶은 것을 쓰기. 마음에 안 들어도 무조건 발행할 것.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읽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동료들의 글에 일주일 내로 피드백할 것. 주 1회인 점은 부담되지만 마감을 못해도 2주에 한 번은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마기슬의 매력은 상냥하고 성의 있는 동료들의 피드백에 있었다. 짧게는 300자, 길게는 1000자가 넘는 코멘트를 받을 수 있었는데, 평소 관심 받기 위해 글을 쓰는 내게는 이게 아주 큰 동기 부여 요인으로 다가왔다. 한 명도, 두 명도 아닌 일곱 명의 독자가 생기다니! 동료들이 마감에 괴로워한다는 사실도 큰 힘이 됐다. 글쓰기의 가장 큰 적은 외로움이다. 게임이나 쇼핑도 글쓰기를 방해하기에 충분하지만, 글을 쓸 때 가장 힘든 것은 ‘나만 이렇게 글 쓰는 게 힘든가?’ 혹은 ‘이렇게 쓰면 누가 알아주기나 하나?’ 하는 회의감이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 사소한 규칙까지 정해 놓고, 정작 마감 앞에서는 모두가 진심으로 괴로워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에 나는 의외의 안도감을 느꼈다. 마감을 지키는 것, 글을 쓰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구나, 어렵지만 모두가 힘을 내서 쓰고 있구나, 글쓰기에 있어서는 이제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런 마음을 잘 알기에 매주 한 편의 글을 완성한 나와 동료들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낼 수 있었다.

크게 특별할 것 없는 글쓰기 모임이 올 한 해 동안 큰 기복 없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비대면 모임이기 때문이다. 대면 모임의 경우, 개인의 시간을 다수가 편한 쪽으로 조정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데, 마기슬은 그런 점에서 자유롭다. 정해진 시간에 맞출 필요 없이 각자의 페이스에 맞게 글을 쓰면 된다. 모임 시간이 맞지 않아 글을 쓰지 못하는 일도 없다. 일주일에 한 번은 글쓰기에 대해 떠들지만, 각자 떠드는 시간은 다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바이러스의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해서 쓸 수 있다. 또한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받는 대면 모임과 달리, 동료들의 글을 읽고 충분히 고민할 시간을 가진 뒤 심도 있는 코멘트를 달 수 있다. 얼굴이 보이지 않기에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나에게 ‘마감의 기쁨과 슬픔’은 글쓰기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생각만 해도 든든한 마감 동료들로 구성된 보이지 않는 울타리다. 일곱 명의 열렬한 독자를 만난 덕분에 글쓰기는 가끔 카트라이더보다, 쇼핑보다 재미있고 짜릿하다. 이 세상에 없는 문장을 만들어내는 게 유독 어렵게 느껴지는 날에도,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쓸 수 있다. 나 말고도 일곱은 마감에 괴로워하고 있을 테니까. 또, 이번 주는 어떤 글일까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글을 쓰기에는 충분하다.



2020 비학술적 학술제에 글쓰기 모임 '마감의 기쁨과 슬픔(마기슬)'의 일원으로서 괴로운 마감을 덜 괴롭게 만들어주는 마기슬의 매력에 대해 써보았습니다. 아래의 링크로 접속하시면 코로나 시대의 청년과 연결이라는 주제의 다른 콘텐츠들도 만나볼 수 있답니다!


https://www.forumnotforum.net/


* 마감의 기쁨과 슬픔 공식 인스타그램

@weeklymagam

https://instagram.com/weeklymagam?igshid=6cc31wq75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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