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그날을 기억하니. 너랑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 노래방에 가자고 했지. 꼭 불러주고 싶은 노래가 있다고. 그 노래를 듣고 싶은 마음 반, 걱정되는 마음 반. 나는 마스크를 쓴 채로 노래하는 게 답답하지 않겠냐고 에둘러 물었어. 너는 마스크를 써도 잘 부를 수 있다며 특유의 자신감을 비쳐 보였지. 나는 사실 무서웠어. 그 어떤 것보다 ‘비말감염’이라는 말이 모두를 위협했던 시기였잖아. 침방울은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그 바이러스는 뚜렷한 치료제가 없으며 면역력이 낮은 만성질환자에게 특히 치명적일 수 있다는 뉴스가 꼭 돌림노래처럼 반복됐어.
사실 노래방에 가자는 말을 듣고 난 네가 좀 부러웠어. 너희 집엔 아픈 사람이 없구나. 그런 생각을 했거든. 그래서 할 수 없었어. 아빠가 아프다거나 만성질환이 있다거나 그런 불필요한 말들을. 넌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 더군다나 너와는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잖아. 그런 사정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 넌 노래를 참 잘 불렀어. 음을 이탈하게 될까 봐 노래방만 오면 목소리가 떨리는 나랑은 다르게. 너의 용기와 성의가 고마워서 무서운 마음은 잠깐 모른 척 했어.
아침부터 아빠를 면회하러 가던 날, 그날 오후에는 우리 신혼집에 넣을 가구를 보러 파주에 가기로 했었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아빠는 중환자실로 실려 갔고, 그날 저녁에 눈을 감았지만. 나는 어떻게 가구를 보러 갈 생각을 한 걸까. 중환자실에서는 간호사가 나와서 아빠의 보호자를 찾으며 지금 다시 안정을 찾았으니 보호자 분이 여기 계셔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그러니 집에 가서 기다려도 괜찮다고 말했어.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전화를 주겠다고 했지. 엄마와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어.
집에 왔는데 30분도 되지 않아 병원에서 전화가 왔어. 그래서 택시를 타고 다시 중환자실로 갔다? 똑같은 일 이 반복됐어. 병원에서는 지금은 또 괜찮아졌다고, 문제 있으면 전화를 주겠다며 우릴 안심시켰지. 그렇게 엄 마와 나는 택시를 하루에 세 번이나 탔어. 세 번째로 택시를 탔을 땐 비가 무섭게 내렸어. 퇴근길에 비까지 겹쳐 차가 움직이질 않더라. 누굴 탓할 수 있을까. 왜 나는 집에 가서 기다려도 된다는 말을 믿은 걸까. 믿을 수 없었지만 모른 척 믿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어.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와 목을 통로 삼아 가슴 깊숙한 곳으로 떨어졌어. 땀과 눈물이 섞인 채 병원에 도착했을 땐 아빠는 물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채로 통나무처럼 딱딱하게 누워있었어.
소식을 듣고 네가 병원 입구에 도착했을 땐 거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내리고 있었잖아. 한참을 너의 목을 끌어안고 울다 고개를 들었을 때, 저 멀리서 지느러미 같은 게 빛나고 있는 걸 보았어. 멀리서 보일 정도면 그냥 물고기는 아닐 거고 상어 정도는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지느러미 주변이 울렁대면서 상어의 몸통이 빗물에 잠겨있기라도 한 듯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어. 보이는 건 지느러미밖에 없었지만 주변이 흔들리는 것만 봐도 상어의 엄청난 몸집을 가늠할 수 있었어. 상어의 눈과 입, 몸통과 꼬리는 빗물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어. 그러니까 그때 상어에게는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많았어. 비는 그칠 줄을 몰랐고 너의 어깨 너머로 축축하고 어두운 밤이 위태롭게 출렁대고 있었어.
나는 망설이다 너에게 빗속에서 상어 지느러미를 본 것 같다고 말했지. 너는 음식점에서 내가 두리번거리기만 해도 다 먹은 소스를 다시 채워오고, 휴지를 뽑아주고 심지어는 화장실이 어디냐고 대신 물어봐 주기까지 하 는 사람이었으니까.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상어를 봤다는 말은 하지 않았을 거야. 내 예상과는 달리 넌 상어라니 말도 안 된다고 했어. 하지만 거대한 지느러미의 표면과 여차하면 병원을 움직일 수도 있을 것 같은 묵직함은 상어가 아닐 수가 없었어. 상어는 무서웠지만 시끄러운 빗소리에 우는 얼굴을 조금은 숨길 수 있을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면 믿으려나. 네 앞에서 완전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어. 처음 너랑 노래방에 갔던 그날처럼. 나의 근심이 너에게로 옮겨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어. 그런데 네가 상어를 보지 못했다는 건 조금 의외였어.
장례식장에선 결혼도 하지 않은 너를 아빠의 사위로 올려야 하는 지가 화두가 됐어. 결혼이 두달도 안 남았 는데 사위로 올려도 괜찮을 것 같다고 어른들이 말했지. 그냥 어른들이 말하는 대로 했어. 나는 그런 것보단 청첩장이 내내 마음에 걸렸어. 나는 너에게 청첩장을 다시 찍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어. 너는 아무래도 상관없 다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말했지. 상관없다는 너의 말이 손톱 주위의 거스러미처럼 신경 쓰였어. 결국 청첩장은 다시 만들었어. 아빠의 이름 앞에 ‘故’자를 넣은 것 말고는 전혀 다를 게 없었지만. 너에게 반절을 떼어주고 나는 그 청첩장을 단 한 장도 접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가 결혼식이 끝나고 그대로 버렸어.
거스러미를 뜯어 본 적 있니. 나는 거스러미가 생길 때마다 그냥 두지 못하고 뜯는 사람이란 걸 너도 잘 알고 있지. 넌 그걸 무척이나 싫어했고 거스러미를 뜯으려고 몰래 손가락을 튕길 때면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서 내 손가락을 감싸던 너였으니까. 근데 거스러미를 그대로 두면 가끔 옷에 걸려서 생각지도 못하게 아플 때가 있거든. 나는 그게 싫었어. 아플 거라면 아플 걸 알고 아프고 싶었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아프고 싶지 않았어. 상처받기 싫어서 미리 상처를 내고 마는 사람들에 대해 아니. 어쩌면 나는 청첩장을 다시 찍을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데도. 너는 내가 아닌데도.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기를 바랐는지도 몰라.
아빠가 죽고 너는 내 눈치를 자주 봤어. 아빠 또래의 중년 남성이 죽는 장면이 나올 때는 말도 없이 TV를 꺼 버리기도 했지. 아빠를 보러 갈 때면 꼭 휴지와 손수건, 심각해 보이는 안면 근육을 준비했어. 이상하게 그런 뻔한 순간엔 눈물이 나지 않았어. 눈물은 늘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찾아왔어. 처음으로 신혼집에서 너와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하던 날이었어. 우리 집에는 내 취향대로 연한 하늘색 벽지를 바르고, 대리석 모양의 장 판을 깔고, 세 명이 누워 뒹굴어도 남을 침대도 사고 최신형 가전도 종류별로 들여놓았지. 누워서 천장을 보 는데 그때 그 상어가 꼬리까지 쭉 뻗은 채로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더라. 지느러미는 몸집에 가려 보이지 않 았어. 상어의 몸집은 천장을 다 채울 정도로 컸는데 생각보다는 무섭지 않았어. 상어의 눈은 꽤 동그랬어. 이 제 상어에겐 보이는 부분이 보이지 않는 부분보다 더 많았어. 상어에게선 축축한 물기가 느껴졌어. 너를 깨울 까 고민하다 관뒀어. 언제나 상어를 본 건 나뿐이니까.
그때 난 아빠가 상어가 된다면 어떨까 생각했었어. 그럼 신혼집도 구경하고 어쩌면 결혼식에 올 수도 있을 텐데 하고 말이야. 네 눈엔 보이지 않으니까 좀 그러려나. 상어는 저 위에서 아직도 눈을 굴리면서 알 수 없 는 표정을 짓고 있어. 상어는 흠뻑 젖어 있지만 천장을 적시진 않아. 상어는 아빠가 아니고 그때 봤던 그 상어일 뿐이야.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할 때 네가 코를 골기 시작했어. 문득 너한테 샘이 났어.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는 건 그런 거더라. 별것 아닌 일에도 마음이 쉽게 뒤틀리는 거. 신혼집에서 울지 않고 잠들 수 있는 너를 보니 외톨이가 된 것 같았어. 아빠가 하는 주말농장에 놀러 오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건네던 회사 언니를, 배 나온 아빠에게 핀잔을 줄 수 있는 너의 어린 여동생을, 결혼식 날 아빠의 축사를 받았다는 친구들을 견디기 힘들었어. 가끔 부러움은 미움의 얼굴을 하고 찾아왔어. 자다 깨서 너를 안고 펑펑 울 때면 내가 이유를 말할 때까지 왜 그러냐고 묻는 네가 답답했어.
의사가 단백뇨 수치가 높다고 사구체신염이 재발한 것 같다며 조직검사를 권했을 때, 너는 내게 그저 괜찮을 거라 했지. 나는 네가 세상을 너무 모른다고 생각했어. 나는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화를 냈어. 그건 아빠를 겪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어. 우리 아빠는 신부전증을 진단받은 후로 꾸준히 나빠지기만 했거든. 어떤 일에도 최악을 생각하게 된 건 그때부터였는지도 몰라. 어떤 병은 낙관할수록 금방 힘들어졌으니까. 잘 될 거란 생각을 하다가 아무 준비 없이 고꾸라지는 것보다 가장 나쁜 상황을 생각했다가 그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면 상처받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넌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먹을 도시락을 쌌어. 회사에서 먹는 배달 음식을 줄이자고 했지. 그리곤 내가 운동 삼아 걷는다고만 하면 날 따라 같이 걸었어. 다다음 외래 진료 때 검사 결과가 조금 좋아졌다는 얘기를 들었어. 얼떨떨하게 소식을 전하는 내게 너는 흥분해서 그럴 줄 알았다며 나보다 더 기뻐했었지.
작년 여름에 내린 폭우 때문에 우리 집으로 진입하는 도로 옆 산비탈이 무너졌던 거 기억나? 강화도에서 하 루 자고 돌아오던 날. 사람들이 다가올 수 없도록 산비탈 앞에는 접근금지 펜스가 세워져 있었어. 산비탈은 그물을 쓴 채로 토사를 움켜쥐고 있었어. 그것 때문인지 길이 많이 막힌다고 한동안 너는 나에게 투덜거렸지. 얼마 전 그 앞을 지나는데 펜스도 그물도 없고, 산비탈은 더 단단해진 것 같더라. 산비탈이 지키려던 토사도 온데간데없고. 비가 할퀴고 간 자리는 언제까지나 엉망일 줄만 알았는데, 추운 계절이 지나고 봄이 오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여름의 산비탈 같은 모습이 된 거야. 그래도 예전보다는 조금 뭉뚝해졌으려나? 비슷하게 보여도 그때의 그 산비탈은 그때에만 존재하니까.
아빠한테 가는 날은 꼭 비가 내리곤 했는데, 올해는 날씨가 참 좋았어. 몇 년 전의 거센 빗줄기와 무너져내린 산비탈이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창문을 열리고 달리면 딱 좋은, 차갑지 않고 시원한 날이었어. 돌아오는 수요 일에 옷 정리를 하자고 말했을 때,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말하고 보니 그날은 아빠의 기일이었으니까. 너무 잘 알아서 할 수 없는 말들을 떠올렸어. 조금 있다가 너는 그러지 말고 장인어른께 가보자고 했지. 나는 그런 너의 용기가 참 좋더라. 노래방에서 거침없이 열창하던 너를 처음 봤을 때처럼. 아빠가 죽던 날, 죽기 전에 아빠를 보지 못한 건 나뿐이었어. 아기를 키우느라 자주 오지 못하던 언니도 웬일인지 전날 아빠를 면 회하러 왔고, 엄마는 매일같이 아빠 곁을 지켰으니까.
그날에 대한 죄책감을 지울 수 있을까. 아빠가 상어가 돼서 나타나는 게 아니라면 어렵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아빠의 기일을 맞춰 아빠를 보러 갔던 건 너와 나 둘뿐이야. 모두 모여 주말에 다 같이 예배를 보긴 했지만. 집으로 돌아와 잠깐 눈을 붙이려고 누웠다가 혹시 나 해서 상어를 기다려봤어. 상어는 보이지 않았어. 축축한 기운도 없었어.
아빠가 숨을 거뒀던 병원에 다시 가본 적이 있어. 비 오는 날에 두 번, 비 오지 않는 날에 한 번. 상어가 보 이지 않아도 가끔은 상어가 왔다 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거든. 상어가 다녀간 날엔 기분 나쁠 정도로 축축한 물기가 느껴졌어. 병원에서도 상어는 보이지 않았어. 상어의 물기조차 없었어. 상어는 다른 곳으로 갔어. 곧 그칠 빗속이 아니라 편히 헤엄칠 수 있는 바닷속으로 간 걸지도 몰라. 거스러미를 아무리 뜯어도 결국 새살은 돋아나고, 상어는 바닷속에서만 헤엄칠 수 있어. 산비탈은 산비탈의 방식으로 봄을 준비하고 너는 너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해.
이제 너에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무슨 말을 들어도 너를 미워하게 될 것 같지는 않아. 상어가 보이지 않아.
(2023.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