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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Dec 03. 2018

62세 노부부와 동거하는 법

가까우면서 먼 가족이라는 이름




우리 집 냉장고엔 삼일 째 숙면 중인 새우가 열댓마리 있다. 엄마아빠가 3박4일로 여행을 떠나며 비상식량으로 구워둔 새우다. 애석하게도 내일이면 그들이 돌아오지만 새우는 그대로다. 금요일에는 느즈막히 사무실에 나갔다가 모임으로 저녁해결. 토요일도 일을 했고 주말에 일한 나 자신 너무 고생했다며 또다시 외식. 일요일인 오늘. 눈을 떠보니 한시였고 자연스레 배민에 접속해 떡볶이를 주문했다. 배민 이즈 마이 라이프.


떡볶이를 다 먹고나서야 냉장고 안에 새우가 있다는 게 떠오른다. 마음이 초조해진다. 내일 아침이면 그들이 돌아오는데. 나는 오늘 저녁에도 약속이 있었고 돌아와선 또 새우의 존재를 잊고 냉장고에 있던 다른 빵을 꺼내먹었다. 그리고 자려고 하니 또 새우의 간절한 눈망울이 떠오른다. 엄마아빠의 마음도 모르고 새우를 먹는 게 숙제처럼 느껴진다. 아아 저거 먹긴 먹어야 하는데..


아빠 나 혼밥은 즐기지만 혼자 고기먹는 정도는 아냐..
자나깨나 밥걱정의 노부부. 이쯤되면 신령님 두명이랑 사는 듯.




부부동반으로 해외여행을 간 엄마아빠는 무척이나 신난 것 같다. 나 없으면 와이파이도 못 켜는 줄 알았더니 호텔에서 카톡을 곧잘 보낸다. 곧잘이 아니라 너무 잘한다. 아까 보니 사진을 70장 보낸 것 같던데.. 아니 이게 뭐야. 속았다. 이 때까지 할 줄 아는데 나한테 시킨 거였다. 다소 어른답지 못하게 배신감에 부들댔지만 속으로는 내심 기뻤다. 와이파이야 어찌 됐든 타지에서 잘 있다는 소식이 반갑다.


우리집 노부부는 디지털 사회의 제일 가는 기술자로 나를 꼽는다. 티비를 보다 케이블이 안 나오면 아빠를 곧장 나를 호출한다. 기껏해야 내가 하는 것은 리모콘의 외부입력 버튼을 누르거나 셋톱박스를 다시 키는 것뿐인데 그 사이 엄마는 옆에 와서 역시 기술자는 다르다고 연신 칭찬을 해댄다. 내가 62세밖에 되지 않은(?) 엄마아빠를 노부부라 부르게 된 데에도 이런 이유가 크다. 예전엔 엄마아빠는 모르는 게 없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와이파이가 안된다. 티비가 안 나온다. 회사에서 들으라는 사이버 강의를 대신 좀 수강해달라. 컴퓨터를 고쳐달라. 마우스가 안 움직인다. 여행경비를 환전해달라. 지하철 몇호선 탈려면 어디서 환승해야 하니. 버스 몇 분 후에 오는지 알려주는 어플 깔아줘. 지금 골라둔 물건 인터넷으로 결제해줘. 물 떨어졌다 이마트 쓱배송 시켜라. 거기 고시히카리 쌀도 파니 등등... 내 기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일들이 그들에게는 큰일인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장난스레 말한다.

“참나. 이 노부부 나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니까?”

솔직히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굉장히 사소한 일이자 외면하는 것은 싸패같은 짓이라서 웬만하면 바로 해결해주는 편이다. 그리고 한껏 생색을 내며 노부부의 인정을 받는 것이 나의 하루 일과이다. 그러나 노부부가 자리를 비운 며칠 사이, 나는 단번에 우리집에서 존재할 이유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귀찮게 하던 작은 요구사항들이 사라졌고, 나 혼자서는 너무나 기계를 잘 다루기에 왠지 심심해졌다. 모임과 약속 등으로 집을 비운 시간이 더 많았지만,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자 온기는 커녕 한기가 나를 반기는 것이 이상하다. 보일러를 3시간을 떼고 나서야 집안에 훈훈한 기운이 돌았다. 끄고 잠을 청했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한기가 그대로다. 아아 외롭다. 이른 아침에 적당히 보일러를 떼주던 노부부가 보고싶어졌어.


스물 아홉이면 여행 간 부모님이 보고싶다는 애송이같은 생각따윈 안 할 줄 알았는데. 그리고 몇 달 전 노부부의 장기여행에서는 해방감마저 느끼던 나였는데. (물론 그 때는 여름이긴 했다.) 곧 서른을 앞두고 고작 며칠 여행간 부모를 그리워하고 있다니. 아무튼 있다 없으니까 자꾸 노부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참 가족이라는 것은 신기하고도 오묘한 존재다. 기본적인 틀은 사랑이지만 함께 살며 서로 밀접하게 닿아있기에 싸울 일도 참 많다.




아빠가 신부전증으로 장기 입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가족 모두는 지쳐있었다. 당사자인 아빠는 물론이고 옆에서 간호하던 엄마의 피로도도 높았으며, 대학 새내기였던 나에게도 그것은 분명 큰 일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병은 병이고 일상은 일상이었다. 하루는 쇼파에 내 인공눈물을 둔 것으로 아빠와 크게 싸웠다. 왜 그게 화낼 일인지 모르겠다며 씩씩대는 나에게 엄마는 환자니까 네가 참으라는 말로 타일렀다.


그 뒤로도 아빠하고는 참 여러번 싸웠다. 신장이식을 받고 난 뒤 성치도 않은 몸으로 목공을 한답시고 황금같은 주말 아침 7시부터 굉음을 내며 나무를 잘랐다. 당연히 단독주택이 아닌 아파트에서는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으며, 시간도 몹시 일렀기에 나만 화나는 일이 아니라 아파트 주민 모두에게 민폐가 되는 일이었다. 절대 아침부터 나무를 자르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다음 날 오전 7시, 똑같은 소리에 잠을 깼다. 이번에는 참을 수 없어 온갖 발작을 하며 난리법석을 부렸다.


나의 패악과 패륜 시전 그 이후에도 아빠의 민폐갑 목공은 별달리 나아지는 일이 없었고 그래서 나는 도마만들기라는 그의 취미생활을 극혐하게 되었다. 도마에 오일을 먹이면 경멸스런 눈빛을 보냈고 아 밥먹는데 냄새난다고 문이라도 열고하던지 하는 차가운 말을 쏘아붙였다. 결국 나의 끊임없는 도마 제작 반대 시위에 아빠는 공방을 구했다. 소문난 집돌이답게 자주 가진 않았지만 그런 공간이 생긴 것으로 우리의 기싸움은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잊혀진 것 같았던 그 이유로 작년 말 크게 싸웠다. 여느 때나 다름없이 단체카톡방을 깔아달라는 아빠의 요구에 조치를 취하던 중이었다. 대화상대의 말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빠는 연신 볼멘소리를 했고 나는 평소처럼 툴툴대며 빈정댔다. 그 순간. 벼락같은 화를 내며 아빠가 나에게 별안간 욕을 했다. 아빠는 무심했지만 말을 함부로 하는 법이 없었고, 무뚝뚝한 큰 딸인 언니보다는 말많은 작은 딸인 나를 더 사랑한다 믿었기에 충격이 컸다.


아빠는 니가 요새 나를 얼마나 무시하는 줄 아냐며 하루이틀 일이 아니라고 자신은 몇 년을 참았단 말로 고요한 밤을 뒤집어놓았다. 틀린 말이 아니기에 찔렸지만 자존심 상 싹싹 빌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목공으로 어그러진 부녀관계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곪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날 밤 펑펑 울었다.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은 충격과 후회의 눈물이었다. 세상 누구보다 무심해보이는 아빠도 상처를 받는다니. 그리고 그 상대가 나라니. 착한 딸이라고 자부했던 내 자신이 몹시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목공은 신장병에 걸리기 직전에 시작된 아빠의 로망이자 마지막 취미같은 거였다. 아빠는 취미를 본격적으로 해 볼 새도 없이 병원 신세를 지게 됐으며, 신장 투석을 하던 기간에는 목공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신장 투석은 체력소모가 크다.) 신장이식으로 면역억제제를 먹지만 이제는 목공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 기쁜 마음을 감출 길 없었을 것이며, 그래서 민폐이든 말든 나무를 계속 잘랐을 것이다.


아빠의 마음도 다치는구나, 목석같은 아빠도 내 말에 상처받고 눈치보는구나. 미안함과 후회로 밤을 지샌 다음날 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송년파티였다. 파티에 갈 기분이 전혀 아니었지만 몇 달 전부터 계획한 일이라 한 친구의 집에서 넷이 모여 하루를 보냈다. 파티답게 선물 교환식이 있었는데 나는 그 때 당시 핫한 블루투스 마이크를 선물받았다. 실은 아빠랑 대판 싸웠는데 어떻게 화해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나에게 친구들은 이걸로 노래라도 부르라며 우스갯소릴 해댔다.




집에 돌아가 때를 엿보다 뜬금없이 블루투스 마이크를 부시럭대며 꺼내고, 용기내어 아빠를 불렀다.


아빠, 이거 봐바.

- 그기 뭔데.

마이크. 해볼래?


부녀의 대화에 놀란 엄마가 나와 리액션을 돕는다.


어마야 그게 뭐꼬. 마이크가.

응. 이렇게 노래 틀어서 부를수도 있어.

- 요새는 별끼 다나오네.


어제는 뭐먹었어?

- 그냥 밥먹었지 뭘.


우리의 싸움은 마이크 덕분에 은근슬쩍 끝이 났다.




아빠도 상처받는다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는 조금 더 조심하려고 한다. 말하는 것에 있어 특히 조심하려고 한다. 퇴직 후 도마 만들기 외에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진정한 자연인의 삶을 살며 365일 중 360일을 칩거하는 아빠는 잘 씻지 않는다. 심지어 이도 잘 안 닦는다. 어려운 문제다. 냄새난다고 짜증내면 상처받을 것 같아 참기를 여러 번. 그러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옥의 냄새라고 판단하면 걱정 요법을 사용해본다.


아빠. 인터넷에서 봤는데 치아가 안 좋으면 혈액을 타고 그 충치균이 다 퍼진대. 나이들수록 조심해야 된다던데, 오늘 이 닦았어?


- 아니.


(사실 이 부분은 의학적으로 확인된 바 없는 사실이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 같긴 한데..)


아니라는 말에 속이 터지지만 이때만큼은 62살이 아닌 6살이라 생각하고 타이른다.


그러면 지금 닦자~ 나 이제 아빠 또 아플까봐 걱정돼. 그리고 앞으로는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닦자. 귀찮긴해도 막상 닦으면 개운하기도 하고 나는 좋던데?


그 말에 아빠는 바로 화장실로 들어간다. 아아 진작에 챙겨줄 것을. 역시 노부부는 나의 손길이 필요하다. 내일 아침이면 홍콩에서 노부부가 도착할 것이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노부부 찬스로 구매한 면세물품들이 날 기다리겠지. 올해는 단칼에 거절했지만 내년에는 아빠의 꿈이라는 작은 딸과 함께 가는 동유럽 여행도 생각은 한 번 해봐야겠다. 노부부가 좋아하는 하늘보리가 다 떨어졌으니 이마트 쓱배송도 시켜놓고 자야겠다.




이상하게도 요새는 마음이 자꾸만 약해진다. 노부부가 덜컥 큰 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클리셰는 진부하지만 그 말이 진부한 이유는 분명 있다. 바로 자주 언급되기 때문이리라.


요즘 내가 좋아하는 클리셰는

“있을 때 잘하자.”


노부부의 안전한 한국 귀환을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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