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름 스트레스와 행복을 되새기는 기록
2025년 8월을 보내며
이번 여름의 일들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한 해가 끝나면서도 그 해의 회고를 적어봐야지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왜 이전까지는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았지? 그저 스마트폰의 앨범을 훑어보고 좋았던 일, 이룬 것, 이루고 싶은 것들 몇 가지를 끄적여 본 게 전부였다.
여러가지 지나간 일들과 적어두고 싶은 것과 그 당시의 느낌에 대한 이미지가 불투명하고 뭉실뭉실한 연기처럼 머릿속에 차오른다. 이것들을 글로 끄집어내는 것이 일이다. 뭔가를 표현해 내고 싶은 생각이 가끔 들면, 그와 동시에 하기 싫어지는 귀찮음, 몸을 움직이는 행위를 머릿속에서 방해하는 막힌 느낌이 들곤 했다. 그것은 아마 체력의 고갈과, 보이기에 괜찮도록 어느 정도는 정제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약간의 완벽주의와, 해야 하는 이유가 오직 나라서, 어떤 의무 거나 누군가를 만족시켜 준다거나 즉각적인 보상이 있지 않은 것이라 움직일 동기가 생기지 않아서일 것이다. 글쓰기든 그림 그리기든, 이런 막연한 스스로의 방해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즐기는 상태가 몇 년간 지속 돼왔다. 처음으로 이에 대해 묘사를 해보면서도 답답한 기분... 에어컨을 송풍으로 돌리니 바로 올라가는 습도가 팔뚝에 느껴진다.
올해 여름은 작년에 비해 덥지 않았다. 모기도 거의 없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지난해 같은 계절의 날씨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작년 8월 초에 어쩌다 락페를 갔던 날 겪은 생애 최악의 무더위와, 수해로 이런저런 사람이 안타깝게 죽었다는 뉴스를 들으며 나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그려보며 몸서리쳤던 일과, 처서가 지나 아침 바람이 한결 나아졌지만서도 오후에는 숨이 턱턱 막히던 여름날을 나는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고양이를 만나며 집에 발을 붙들린 작년부터 예전처럼 눈만 뜨면 궁리하던 해외여행은 갈 생각도 안 하고 살고 있지만, 남자친구가 긴 출장을 간 덕분에 처음으로 여름휴가 며칠을 거의 혼자서 고양이를 돌보며 보내고 있다.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혀오던 고과 평가를 받기 위해 따야 하는 자격증을 어제, 오늘 한 건씩 취득해서 모두 완료했다. 꽤나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짧게나마 똥줄 타며 공부하고 시험 치고 나서 보니 오랜만에 아드레날린 분비하는 재미있는 경험이었구나 싶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시험은 첫 번째 낙방, 두 번째 네트워크 문제로 접속조차 못한 후 이번에도 시험 보는 내내 망했다 싶었으나 겨우 붙었고, 지난달에 본 다른 시험도 눈알 빠지게 덤프 문제들 풀어놓고 웹캠 문제로 첫 번째 중단 이후 재응시해서 붙었었으니까^.^. 아주 있는 똥줄 없는 똥줄 다 태웠다. 너무나 별일 없는 일상에서 아무리 소확행을 찾는다 해도 지루함에 노잼시기라고 푸념할 수밖에 없었는데 아주 오래간만에 심장 요동치는 시간이었다.
시험은 기초 코딩 테스트인 Cos Pro 2급과 PCCE 자격시험이었는데, 초등학생도 볼 것 같은 가장 낮은 레벨 테스트였지만 컴퓨터 전공인 주제에 이것도 통과 못하는 나 자신보다 두려웠던 것은 그것도 못 딸 거면서 IT직군이라고 생각할 것 같은 사람들의 시선… …. 조금만 더 공부하면 될 거라고 위로해 주고 도와줄 좋은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상사의 눈치.. 상사… 아, 직장인에게 상사란 무엇일까. 일상생활에서 절대적으로 긴 시간 같이 지내며 부하 직원들이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회사에서의 부모와 같다고 생각했다.
연휴 전후로 붙여 놓은 휴가가 시작되기 전 날, 또 말 같지 않은 지시와 잔소리에 시달렸고 이제는 또 시작이구나 하고 놀랍지도 않지만 좋지 않은 기분은 퇴근 후 사랑스러운 휴가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이 상황의 대처 방안에 대해 ChatGPT와 의논했다. 역시나 갓피티가 현명한 방안들을 알려주었고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지만, 자꾸 그의 못생긴 얼굴이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생각, 뭐든지 이 생각들이 문제다. 생각을 하지 말고 몸을 움직이고 살아야 한다. 내 안의 진짜 내가 말하는 것을 들어주고 움직여야 한다. 욕구나 본능이 아니라 나와 이 세상의 흐름에서 옳은 길을 따라야지…. 어쩌구……
아 회사 얘기만 쓰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긴 여행은 아니어도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는 삿포로, 정말 오랜만의 한 여름 계곡에도 다녀왔고(물이 너무 차가워서 다리만 담금), 바다도(사람 없는 바닷가 찾아 수영도 하고 등이 씨꺼멓게 타버림), 정말 좋아하는 아티스트(벡)를 보러 락페도 반짝 갔다 왔다. 눈팅만 하던 웰니스 페스티벌도(원더러스트), 삼 년 넘게 다녔던 요가원의 마무리 파티도 하고, 또 나만 좋아하는 아티스트(Faye webster) 콘서트도, 엄마랑 부페도 먹었고, 회사동료들과 즐기는 소소한 게임(피크민) 피규어나 띠부띠부가 든 빵을 샀는데 띠부띠부가 없는 빡치는 재미도, 오래된 소설(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을 보며 처음 자세히 알게 된 625 전후의 서울, 드디어 재미 붙인 소프라노스를 통해 보는 2000년 전후 미국, 소소한 회사 점심시간 이벤트, 이제야 좀 알 것 같은 테린이 1주년… 나 부지런히 살았네.
그저께는 오래된 친구들과 내 이른 생일파티를 했고 곧 내 생일이다. 챙겨 받은 선물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후후.. 생일 초를 다섯 번은 넘게 불었던 생일도,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즐겁지만 별거 아니게 흘려버린 생일도 있었지만 이제는 어쨌든 한마디라도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주는 친구들과 언젠가부터 요상한 캘리그래피 카드를 주는 엄마 그리고 가족이 건강히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되새긴다. 모두가 그냥 아프지 않고 큰일 없고 무소식이 희소식으로 살다가 예의상 생일 축하 같은 거나 연락하고 살면 참 좋겠다. 나와 같은 달에 태어난 우리 고양이 그동안 한 번도 안 아팠던 것도 너무 기특하다. 고양이랑 같이 맛있는 거 먹는 생일이 계속되게 해 주세요. 왠지 얼마 전부터 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은 ’ 케이크 초를 불고 나서 비는 소원’을 이걸로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