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 심란한 자연 속 숙소에서

누와라엘리야-하푸탈레

by 면자

Feb 20 2026


지져스.. 지금은 와이파이도 쓰레기통도 수건도 없는 숙소에서 저녁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진정한 디지털 디톡스… 유심을 산 게 아니라 로밍을 해서 그런지 아예 통신이 잡히지 않는다. 이런 줄 모르고 급작스레 예약해서 그런지 당황스럽긴 하다.


오늘 아침에 즉흥적으로 바꾼 여행 계획에 신이 났는데 그것의 대가가 이거라니.. 나름 배낭여행자 바이브가 가득한 곳이지만.. 쩝ㅎㅎ 부킹닷컴 평점 8.9였는데.. 2만원도 안 되는 독방에서 너무 많은 걸 바랐나 보다. 큼직하고 누덕누덕한 책상이 있지만 별로 앉고 싶지 않다. 나름 배낭여행자 코스프레 하며 떠나왔지만 아직 도시쥐 허물을 못 벗은 것 같다.


캔디-누와라엘리야까지 버스를, 누와라엘리야에서 툭으로 티팩토리를 방문하고 기차역이 있는 암브웰라까지 40여분 툭툭, 그곳에서 한 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하푸탈레에 내렸다. 인터넷 예매한 구간이 여기까지여도 입석으로 이어서 기차를 타고 갈 수 있었지만 여정에 지쳐 하푸탈레에서 1박을 하고 가기로 했다.
누와라엘리야 120년 된 우체국에서 엽서보내기
우버 같은 픽미 앱이 있긴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안 쓰게 된다. 역 플랫폼 같은 곳에 발을 딛기가 무섭게 툭툭 기사들이 말을 걸어오기 때문에 그냥 가격 딜하고 바로 타버리는 것이 속편하다.그들은 항상 다른 사람들은 600 부르는데, 난 500에 해주는 거야라고 말을 한다. 거짓말일 수 있지만 기분이 나쁜 말은 아니다. 굳이 진실을 알아보지는 않았다.



기차역에서 큰돈은 아니지만 바가지를 쓴 듯한 툭툭을 타고 내려 가파지른 계단을 내려와 숙소에 도착하니 주인 아저씨가 여유롭게 맞아주며 웰컴 홍차를 준비해 준다. 방을 바로 안내해 줄 생각은 없어 보여 가방을 두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웬 서양히피같은 젊은이들이 왔다갔다한다. 그들은 볼룬티어하며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뷰는 끝내준다. 완전히 산꼭대기 산장같은 느낌이다. 이곳은 해발 1500m.(툭툭맨이 알려줬지만 의심스러워서 앱 켜보니 진짜임) 산 아래 마을이 까마득히 보이지만 짙은 안개에 가려 잘 보이진 않는다. 해가 지는 시간이다.




숙소에서 받은 충격으로 인해 어렵사리 예매해 타고 온 그 유명한 스리랑카 기차! 에서 내내 본 장관을 잊을 뻔했다. 강원도와 스위스를 합쳐놓은 것 같은 산등성이… 그 산자락 꼭대기를 굽이굽이 깎아지른 낭떠러지를 끼고 기차가 달려왔다.

긴 여정이었다. 오늘 아침에 캔디에서 출발했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심리적 안정을 위해 다운받아 둔 고국의 노래 - 뉴진스- 를 틀었다.


닫아둔 화장실 문으로 수상한 소리가 나 식겁했다. 완전히 산속에 있고 뉴욕에서 한번 쥐에 당한 적이 있던 터라 무슨 새가 들어왔나 쫄았는데 지붕 위에서 나는 소리인 것으로 결론짓고 안심하기로 했다.


듀오링고를 못하니까 day streak가 깨지지 않도록 시간을 수동으로 새벽으로 맞추고 비행기모드로 바꾸었다. 창밖은 이제 완전히 깜깜하다. 날씨가 맑았다면 별이 쏟아졌을 것 같은데, 우기도 아닌 주제에 연일 내리는 비와 구름에 머나멀게 보이는 불빛들 외에는 온통 깜깜하다. 몇신지 몰라서 지금으로부터 몇 시간 후로 아침 알람을 맞추었다.


ㅎㅎ 참 웃기다. 내일 (오늘 도착 예정이었던) 엘라에 도착하면 홀가분하려나. 유명한 관광 스팟들이 도처에 있지만 이 산꼭대기에 있는 곳에서 펼쳐진 차 밭 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자연 체험인 것 같다. 내일 오전기차를 탈 지 오후기차를 탈 지가 고민이다.



쫄쫄 나오는 온수로 대충 샤워를 마치니 그래도 뽀송하다. 배가 고파온다. 숙소를 찾아볼 때 확인 한 몇가지는 리뷰 점수와 맛있는 밥을 제공한다는 것.. 투숙객들과 다 같이 먹을 밥이 기대된다. 자원봉사자들 외에 의외로 가족단위 투숙객이 좀 있다. 이런 곳에 묵을 사람인만큼 열린 마음이겠지, 모두 눈을 마주치면 미소로 인사를 나눈다. ㅎㅎ..



접시 코박고 먹은 저녁.

한국사람이라 하니 얼굴 빨개지던 케이팝덕 프랑스 소녀가 있는 가족과 함께한 식사. 아이들이 있는 두 가족이 함께 여행 중이라 하던 프랑스 가족들은 지금 생각해도 참 대단하다. 툭툭까지 빌려서 스리랑카를 누빈 그들의 체력과 사랑과 여유...(연신 interesting을 말하던) 그들도 잘 돌아갔기를. 페투니아 이모와 젊은 빌보 배긴스를 닮은 부부와의 친절한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다행히 밤에 폰을 껐다켜니 로밍이 터지기 시작했고 나는 백두산 천지 같은 숙소에 만족해 유명 관광지는 한 군데도 가지 않고 다음 날 오전 기차를 탔다.


숙소 정보 White monkey dias rest
내 표정이 뭔가 뚱한지 귀신같이 오케이? 오캐이? 하면서 장난을 걸던 스탭아 사실 그렇게 오케이는 아니었지만 맛도리 밥과 하루만 묵어도 따듯하게 안아주던 할머니가 그립구나. 만약 먼 훗날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때 그대로 있다면 좀 감동일 것 같아.



화, 목, 일 연재
이전 04화Day 4 뛰뛰빵빵과 짹짹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