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첫 도시로 정한 이유
고이 모아놨던 마일리지로 뉴욕행 편도 티켓을 끊었다. 10년에 넘는 직장생활을 잠시 멈추고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혹시 휴직신청이 반려된다면 일이 주 내 돌아오는 티켓을 준비해야 했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확정된 날, 그저 입 꼬리가 귀로 올라갔던 것 같다.
대학시절 알바비 모아 떠났던 3주의 유럽여행이 나의 가장 긴 여행이었다. 짬짬이 휴가 내어 다니던 여행은 길어야 2주였고,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못내 아쉬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번에는 원 없이 지겨울 만큼 집을 떠나 있고 싶었다. 그냥 그때그때 내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싶었다. 내 마음대로 모든 시간을 채우고 싶었다.
반 년간의 쉼을 계획하며 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한 달 살기를 꿈꾸었다. 한국과 계절이 반대라 가을쯤 도착하면 점점 따뜻해질 것이었다. 남미의 파리라고 불릴 만큼 아름답고,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관광객으로서는 엄청나게 저렴한 물가로 지낼 수 있고, 싸고 맛 좋은 소고기의 나라라고 했다. 가는 길에는 칠레의 비교적 유명하지 않은 해변 도시에서 유유자적하고 싶었다. 어차피 직항은 없으니, 마일리지 티켓으로 뽕뽑을수 있는 가장 장거리인 뉴욕에 갔다가,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고 콜롬비아부터 거쳐 내려가야지 했다.
사실 5년 전쯤 남미에 갔었다. 총 2주도 안 되는 기간이라 페루와 볼리비아를 짧은 비행기 타가며 이동하고, 칠레 찍고 멕시코시티를 경유하여 들리느라 정신없던 일정이었지만, 가장 먼 나라에 본 낯선 마을, 사람들과, 가장 젊어서 지구의 태초와 가장 닮아 있다는 안데스 산맥의 혹독한 광활함은 사무실에 돌아와 눈을 뜨고 있어도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고산병과 해발 4천 미터의 칼바람에도 까무잡잡한 사람들이 웃어주는 그 대륙을 또다시 가리라 그려왔고, 그렇게나 먼데도 나는 그곳이 좋아 스페인어를 배우는 것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미국을 거쳐 남미 땅끝까지 가야지 하는 두루뭉술한 계획만을 가지고 뉴욕행을 결심했다. 10년 넘게 휴가란 휴가는 대부분 여행에 써온 나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될 것 같은 도시 여행이 별로 걱정되지 않았지만, 코로나 이후 찾아본 뉴욕의 숙소 물가는 살벌했다. 혼자 오래 지낼 생각을 했기에 예산을 열심히 아껴야 했다. 어떻게 어떻게 폭풍 검색 끝에 브루클린 어딘가에 위치한 후기 괜찮은 에이비앤비의 방 한 칸을 약 70달러/박에 예약했다. 이 정도면 거의 최저가였기에 만족했다. 맨하탄은 도미토리 10인실 마저 100달러인 곳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친구와 촌캉스를 떠났다. 나의 휴직 성공을 축하하며,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책을 읽고, 뉴욕에 가면 뭐하지? 고민하다가 바로 뮤지컬과 해리포터 체험전시를 예약했다. 워싱턴 DC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기차를 예매했다.(이건 뉴욕 가서 했던 것 같기도 하고..) ESTA 비자를 준비하고 미국번호가 나오는 이심을 사고 여행자 보험을 들고 어떤 신발을 신고 갈지 고민을 하고…
입국 심사를 생각하니 출국 일정을 말해야 할 것 같고 그러자니 다음에 갈 나라는 정해놔야 할 것 같았다. 남미를 가야 하는데 어디를 가지.. 하고 지내던 중 유튜브를 보다가 곽튜브의 영상이 추천에 떴다. 지구마블을 통해 보던 웃기는 여행을 하던 곽튜브씨는 과테말라의 안티구아란 곳에 가서 스페인어를 배운답시고 노력과 고생을 하는 중이었다. ㅋㅋㅋ
바로 이거였다. 핸드드립 커피 메뉴에서 봤던 것 같은 안티구아란 이름을 찾아보니 멕시코 아래쪽 중미 과테말라에 있는 마을자체가 문화유산인 도시이며, 수도 과테말라 시티의 치안이 안 좋은 것 대비 관광지로서 유명해 안전한 편이고, 미국이나 서양인들이 남미여행을 시작하기 초반에 스페인어를 배우며 머무르는 배낭여행자의 도시로 유명한 곳이었다. 물론 한국에선 커피 생산지로 가장 알려진 곳이었고.
과테말라에서 스페인어 배우기라니! 너무 설레는 거 아닌가. 대학 때 교양 수업으로 스페인어 입문을 한 나는 현지 어학원을 다니며 일취월장해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눌 꿈에 부풀었다. 곽튜브를 만난 것은 운명이었다. 미국에서 과테말라로 가는 5시간 정도의 비행기는 수시로 있었다. 동부에서 LA로 건너가 친구를 방문한 다음에, 과테말라로. 이것이 정답이라고 느껴졌다.
그렇게 뉴욕인, LA아웃, 과테말라행 루트를 확정했다.
2023년 7월의 일이었다.
출발
예정된 것을
하기만 하면 내 몸은 뉴욕에 가있다.
이 얼마나 쉽고 멋진 문명
-'23.8월 출발하는 날 메모장에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