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었다. 오늘도 나는 어제보다 하루만큼 더 늙었다. 혈기 왕성했던 시절도 지났고, 육아로 힘든 생활도 지나갔다. 인생은 늘 힘들고 또 행복한 것이지만 점점 삶의 힘듦과 행복의 크기는 작아지고 있다. 안 힘들고 안 행복한 것은 아니고 이미 수많은 힘듦과 행복을 겪었기 때문에 감정이 반감되었다. 그래서 예전만큼 힘들지 않고, 예전만큼 행복하지도 않다.
나이가 들었어도 세상을 잘 모르던 이십 대의 마음은 여전하다. 여전히 호기심이 있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고 엉뚱한 행동을 한다. 겉모습이 늙는 속도를 속마음은 따라오지 못한다. 그래서 간혹 마음도 같이 늙은 척 어른스럽게 꾸밀 때도 있다. 나는 꽤 어른스러운 척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됐다. 식당에서 매너 있게 식사하고 점잖은 말을 한다.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친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이나 가게에서 만나는 종업원에게도 늘 웃으며 말을 건넨다. 나는 사회에 꽤 적응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방법도 알고 있고, 자존심을 꺾어야 할 때도 알고 있다.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속담의 의미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나는 제법 사회가 말하는 어른이 된 것 같다.
그렇지만 여전히 철들지 않은 말과 행동이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요즘 들어 자꾸 말이 많아지는 게 그중 하나다. 자꾸 말이 길어진다. 할 말이 많은 건 아닌데 말끝에 꼬리가 붙는다. 상대방이 내 말의 진정성을 알아주길 바랄 때면 더 그렇다. 말 한마디로 진심이 전달될까 하는 걱정에서 비롯된 습관이다. 이건 분명히 애들을 키우면서 생긴 버릇이다. 어쩜 아이들은 백번을 말해도 한 번을 행동하지 않는지, 육아가 힘든 건 나뿐만은 아니겠지만 나는 아이를 키울 준비를 단단히 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것 같다. 밥도 못 지었던 29살의 나는 덜컥 엄마가 됐다.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고 싶었다. 오직 그 생각이 육아를 준비한 모든 것이었다.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옳은 것이지만 지켜지지 않는 수많은 일들을 경험했다. 정치가 그랬고, 종교가 그랬고, 학교가 그랬고, 가족이 그랬고, 친구가 그랬다. 나도 그랬다. 누구나 치사한 마음을 품고 세상을 살고 있었다. 나는 치사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어느 순간은 치사해졌다. 요즘은 내가 좋았던 것을 말하고 싶어진다. 진짜 좋다고. 내가 싫었던 것은 하지 말라고 말리고 싶다. 진짜 안 좋다고. 아이들이 내가 겪었던 힘듦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동료에게 결혼생활의 행복을 알게 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리고 조금은 외로운 마음에서 그렇다. 내가 겪은 일이 아니어도 힘들고 좋은 일들은 그들 인생 안에 꽉 차게 들어찰 것이다. 꼭 내가 아니어도 될지도 모른다. 아니, 그래도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치사한 생각을 하고 있다.
별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된다는 걸 백번도 넘게 경험했지만 오늘도 무심한 말은 입 밖으로 나간다. 무심한 내 말은 별 말이 아니지만, 누군가에겐 별 말이 되어 마음에 콕 박혔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말수를 줄여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은 틀림없는 진리다.
그래도 아직 자리지 못한 내 마음엔 세상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어,
사람이 좋고, 음악이 좋고, 자연을 좋아하는 나는 아직도,
17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마냥 세상이 아름답고 좋았던 그 시절의 사랑이 여전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