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by 게으른 곰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건, 가벼운 우연이었다. 습관처럼 커뮤니티 사이트에 들어가 이런저런 글을 읽던 중 누군가 달리기 앱에 대해 써놓은 글을 읽었다. 5년도 더 된 일이다. 글이 재미있었던 게 틀림없다. 다 읽고 달리기 앱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 달리기를 운동으로서, 주기적인 계획을 세워해 본 적이 없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거나, 바뀐 신호등을 놓치지 않으려고 약 10미터를 달려야 할 때, 겨우 골에 들어선 뒤에도 그 자리에서 한참을 숨을 다시 채우는 사람이 나다. 평생 달리기를 운동으로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달리기에 재능이 없었다. 아니, 재능이 없었던 것보다는 달리고 난 뒤 힘든 그 순간이 너무너무 싫었다. 심장은 쿵쾅거리고 숨을 쉬느라 말도 할 수 없는 그 잠깐의 시간이 힘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때 계주 선수였었다. 반에서 정말 잘 달리는 유망주는 아니었지만 달리기 선수 명단에 한자리가 남아 있을 때 운이 좋으면 내가 선수로 들어갈 수도 있는, 그런 애매한 위치였다. 그래도 나는 반에서 꽤 잘 달리는 아이였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아무래도 체력이 있었을 것이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이 뭉근하게 떠올랐다. 문득 달리기가 하고 싶어졌다. 글쓴이는 정말 멋있었다. 그도 나처럼 달리기를 못했는데, 달리기 앱의 도움으로 달릴 수 있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달리기를 하기 위한 준비물이 은근히 많았다. 러닝화, 운동복. 휴대폰을 수납할 수 있는 가방이나 주머니, 모자. 써놓고 보니 단순한 준비물이지만, 그때는 왜 이렇게 고르기 어렵던지, 달리기 지식이 없었던 내가 구입한 첫 러닝화는 얼마 신지 못하고 버려졌다.

달리기 앱은 8주에 걸쳐 30분을 달리는 것을 목표로 주 3회의 스케줄로 짜여있었다. 대망의 첫날, 1분을 5번 달린다. 고작 1분이라니. 달리기를 위해 집 근처에 있는 토끼산으로 향하는 내내 1분 뛰기의 효용성에 대해 생각했다.


‘고작 1분이라니, 이게 운동이 되겠어?’


달리기를 못하는 나는 1분 달리기가 우스웠다. 1분은 유치원생도 달릴 수 있다. 아니지, 살다 보니 달리기를 제일 잘하는 사람은 어린이들이다. 그들은 지치지 않는다. 몸이 무거워지면서 결국 달리지 못하는 건 어른이다. 어쨌든, 토끼산에 도착했고, 5분 몸풀기 걷기를 시작했다. 토끼산 트랙은 작았다. 몇 바퀴를 걸었을까, 앱에서 달리기 선생님의 목소리가 힘차게 들렸다.


‘자, 이제 달리세요!’


그렇게 어른이 된 후 첫 달리기가 시작됐다. 바람은 선선하게 불었고 트랙 근처엔 운동하는 사람이 두 세명 있었다. 나는 가장자리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늦은 저녁이라 주변은 어두컴컴했다. 이어폰에선 달리기 선생님이 초보들의 달리기에 관한 정보들을 말해주고 있었다. 트랙이 아주 작았기 때문에 1바퀴를 도는 데엔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두 바퀴를 조금 더 달렸을 때 1분이 지났다. 이제 3분 걷기를 한다. 숨이 조금 가빠지긴 했지만, 괜찮았다. 그리고 곧 다시 1분 달리기가 시작됐다. 가벼웠던 몸은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2분을 달렸을 땐 호흡이 가빴다. 3분 걷기를 하면서 숨을 골랐다. 아직 숨이 달리고 슬슬 다리가 아픈데 세 번째 달리기가 시작됐다.

나는, 바뀐 보행자 신호등에 건너기 위해 죽어라 달리는 시간이 고작 10초도 안된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네 번째 달리기가 겨우 끝나고 3분 걷기를 하면서, 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마지막 달리기가 남았지만 어쩌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땀이 흐르고 종이리가 너무 아팠다. 세상이 핑핑 돌았다. 마지막 달리기를 정말 못할 것 같았다. 달리는 동안의 1분은 한 시간처럼 길었다. 종아리는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라 욱신 거렸으며 열감이 느껴졌다. 숨이 턱밑까지 차 내 주변 공기를 모두 빨아들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조용한 토끼산엔 거친 내 호흡만 규칙적으로 들렸다. 그때 경쾌한 달리기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오늘의 마지막 달리기입니다. 달리세요!.’


욕이 나왔다. 작게 욕 한마디를 뱉은 뒤, 나는 달렸다. 내가 가진 장점 중 꽤 쓸만한 건 중간에 포기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점이다. 완벽주의 성격일지도 모르고 자존심일지도 모른다. 겨우 한번 남았는데, 한번 남은 1분을 포기할 수 없었다.


드디어 오늘의 달리기가 끝났다. 1분 5번 달리기가 끝나고 5분 마무리 걷기가 시작됐다. 달리기 선생님은 내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것처럼 칭찬을 아낌없이 해줬다. 나도 내가 금메달을 딴 기분이었다. 뿌듯했다. 오늘의 달리기는 겨우 5분이었지만,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낸 것 같았다. 집을 향해 걷는 동안 거친 호흡은 점점 정리가 됐다. 토끼산을 내려왔다. 큰 도로가 나왔고 자동차들이 달리는 소리가 이어폰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머리가 맑았다. 기분은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모두 사라지고 뿌듯함만 남아있었다.


8주에서 몇 주가 더 지나고, 나는 30분을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됐다. 그리고 그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가끔 뉴질랜드에서 30분, 5km 정도를 달린다. 30분 이상 달려보려고 노력했지만, 아직은 30분이 한계다. 게으름 때문에 주기적으로 달리기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실력도, 시간도 늘지 않고 제자리걸음이다.

그래도 지금 나는, 취미에 달리기를 넣는다. 그래도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나는 정말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달리기가 좋다. 숨이 가빠지는 게 좋다. 숨이 가빠지는 구간이 지나면 호흡은 다시 규칙적으로 바뀐다. 다리가 무거워지는 듯하다가 다시 가벼워진다. 바람과 멋진 풍경이 내 옆으로 지난다.


달리기를 안 했으면 어쩔뻔했어, 싶은 생각을 한다. 우연히 시작한 달리기가 뉴질랜드에서까지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달리기는 멋진 동료이자 좋은 습관이다. 뉴질랜드엔 러너들이 정말 많다. 첫 달리기를 했을 땐, 몇 년 뒤 해외에서 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나 보다. 지금, 친구 없는 뉴질랜드에서 혼자 하기 딱 좋은 달리기를 하기 위해, 그때 나는 그렇게 열심히 달렸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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