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죽었다 깨어나도 못해.’
죽었다 깨어나는 기적을 겪어도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누구에게나 있다. 내가 이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할 때는 달릴 때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15분이 넘어가면 점점 숨이 달리고 다리가 무거워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할 것 같은 순간이 온다. 그때부터 나는 죽었다 깨어났다를 반복한다.
‘못하겠다. 더 이상은 못 뛰어.’
중얼거림이 시작된다. 마음속에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는 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계속 달린다. 숨이 막힌다.
‘아, 이제 진짜 더 이상은 안돼. 저 앞 나무까지만 뛰자.’
나무에 다다랐는데도 나는 멈추지 않는다. 여전히 호흡은 가쁘고 허벅지 종아리가 돌처럼 무겁다. 숨은 이제 가까운 거리에서 들릴만큼 거칠다.
‘아, 진짜 죽었다 깨어나도 더 이상은 못 뛰겠다.’
몇 번이고 되뇌면서 나는 계속 달린다. 호수를 지나고, 큰 나무를 지나고, 마지막 언덕길이 남았다. 내가 달리는 달리기 코스 끝엔 살짝 가파른 언덕이 있다. 죽을 것 같이 힘들지만 나는 그 언덕을 뛰면서 올라간다. 언덕 위로 올라갈수록 달리기 속도는 점점 느려지지만 절대 걷지는 않는다. 그리고 기어이 언덕 꼭대기에 올라선다. 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운동 앱 달리기를 종료한다. 30분 달리기를 하면 5km 전후로 달린다. 달리기 페이스가 그리 빠르진 않지만 빨리 달리려고 애쓰지 않는다. 달리는 동안 숨이 많이 거칠어지면 안 되는데 자꾸 속도가 빨라진다.
30분 동안 나는 10번 정도 죽었다 다시 깨어난다.
2
요즘 나도 모르게 유튜브를 틀어놓을 때가 많다. 넋을 놓고 보고 있으면 하루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하루를 보낸 날은 잠자리에 누웠을 때 뭔가 잘못한 기분이 든다. 마음이 찝찝하다. 당장 내일까지 해야 할 일은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렇게 시간을 소비하는 건 옳지 않은 마음이다. 하지만 일처리 방식이 잘못 설계되어 있는 나의 뇌는 다음날도 유튜브를 아무 생각 없이 클릭한다. 요즘은 도파민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다. 도파민에 중독된 나의 뇌는 유튜브를 정처 없이 배회하다가 제목에 이끌려 어떤 뇌 과학자의 유튜브 영상을 클릭했다. 매일 새로운 뇌 세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1. 하루에 두 끼만 먹어라. 공복 시간을 오래 가지면 뇌는 위기라고 느껴 새로운 뇌 세포를 만든다.
2. 격렬한 운동. 위와 비슷한 이유다. 우리의 뇌는 몸이 배고프고 힘들면 일을 한다.
3. 그리고 세 번째 방법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반면에 쉬운 방법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샤워를 할 때 마무리 30초 정도를 찬물로 씻기.
밥을 굶는 것과 격렬한 운동에 비해 3번은 비교적 짧게 끝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는 평생 찬물로 샤워를 해본 적이 없다. 워낙 몸이 찬 사람이라 손발이 항상 차기 때문에 한여름에도 온수로 샤워를 한다. 그런데 될까?
오늘 저녁 식사를 하고 샤워를 하면서 계속 마무리 찬물 샤워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오늘 한번 해볼까? 조금만 버티면 되는데. ‘
이미 지난 며칠 동안 결국 하지 못한 채 오늘을 맞았기 때문에 오늘은 조금 비장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은 꼭 해야 할 것 같은 책임감 말이다. 오늘도 성과 있고 의미 있는 일을 많이 하지 못했다. 겨우 데일리 드로잉 한 장을 그렸을 뿐이다. 매일 그림 한 장과 글 한쪽을 쓰기로 결심했고, 삐걱 삐걱대긴 해도 잘 굴러가고 있다. 이상하게 몸이 피곤하면 하루를 쓸모없이 흘려버리는 일이 쉽게 일어난다. 뭔가 보상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이다. 휴식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종일 책을 읽은 휴식과 종일 영상을 본 휴식은 이상하게 기분이 다르다. 내가 본 영상들은 내가 선택했지만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렇다. 그 순간은 뇌가 생각하기를 멈추는 것 같다.
‘아니야, 죽었다 깨어나도 못해.’
따뜻한 물을 맞으며 생각했다. 오늘도 못할 것 같다. 지금 물온도가 딱 좋다. 내가 좋아하는 온도다. 이제 샤워가 거의 끝났다. 샤워기 손잡이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찬물이 나온다. 샤워기 손잡이에 손을 댔다가 다시 뗐다. 으, 짧지만 깊은 고뇌의 시간이 시작됐다. 그리고, 나는 영상을 생각 없이 클릭하듯, 생각을 멈추고 손잡이를 오른쪽으로 휙 둘렸다.
‘헉’하고 숨이 막혔다. 가슴이 순간 공허해졌다. 모든 산소가 다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몸을 물줄기로부터 대피시켰다. 하지만 나는 다시 용감히 맞섰다. 또 한 번 숨이 턱 막혔다.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손으로 재빨리 머리카락을 다시 헹궈냈다.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차가운 물이 온몸을 깨우기 시작했다. 물이 닿은 곳의 세포는 편안한 잠을 자다가 화들짝 놀래며 잔뜩 몸을 웅크렸다.
샤워를 끝냈다. 뇌세포가 다시 살아날만한 경험이었다. 뇌세포뿐만 아니라 온몸의 모든 신경이 새로 태어나는 기분을 느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콧노래가 나왔다. 온몸이 경쾌하게 노래를 불렀다.
영어 회화 시간에 누군가가 그랬다. 중국에서 파는 벌레 튀김 꼬치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먹는다고. 나는 하루 이틀 굶으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는 다른 일을 찾아 한번 도전해 볼까? 생각해 봤다.
음, 역시 번지 점프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