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통이 났다.
남편이 무심한 성격인 걸 알고 있지만 아니나 다를까, 1년 만에 만났지만 여전한 무심함에 화가 났다.
종교는 없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이지 않은가. 가족이 모두 함께 모여 무엇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날이란 말이다. 요즘엔 거리에서 들리는 캐럴 음악 소리는 줄어들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머릿속에 심어진 크리스마스의 이미지는 가족, 연인, 친구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고 편안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주입되어 있다. 연인들은 수 주전부터 무엇을 할지 진지하게 생각해 계획을 세워놨을 것이다. 몇몇은 특별한 계획보다는 집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서로의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표현하는 시간을 계획했겠지.
화려한 이벤트나 비싼 음식이 아니더라도, 나는 우리 가족이 함께 보낼 크리스마스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남편은 이런 것을 준비하는 것에 취약한 성격인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렇기에 점심때쯤 남편에게 오후에 쇼핑몰에 가서 아이들 작은 선물 하나씩 사주자고 먼저 이야기했다. 큰 애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5학년 때부터 받지 못한 얘기를 지나가면서 몇 번을 하기에, 선물 하나사주고 싶었다. 무심하지만 자상한 성격을 가진 남편은 당연히 나의 의견에 동의를 했건만, 오후가 되자 둘째가 먼저 배신을 한다.
"나 친구 만나러 나갔다 올게."
10개월 만에 한국에 돌아왔기 때문에 나름 아이들도 만나야 할 친구들이 많을 것이다. 친구들은 아직 겨울 방학전이고 학원을 다니지 않는 친구는 거의 없다. 오늘은 크리스마스고 공휴일이기 때문에 딱히 스케줄이 없으면 만나기 좋은 날인 것이다. 둘째가 친구를 선택하고 나가고 남겨진 셋은 자연스럽게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한편 봤다.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기도 했고 둘째가 그 사이에 돌아올까 하는 기다림이기도 했다. 재난 영화는 그저 그런 내용이었고 인간의 본능과 추함이 극치에 다다랐을 때 끝이났다. 기분이 찝찝했다. 어느새 밖은 어둑해졌고 문득 귀찮아졌다. 몸이 무거웠다. 샤워를 하고 침대로 들어갔다.
우리 가족은 10개월을 떨어져 살았다. 그리고 다시 모인 지 2주가 지났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그래서 나는 가족이 함께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그것이 무엇이어도 좋았다. 소소하게 같이 모여 식사를 하고 하하 호호 웃으며 오늘을 보내고 싶었다. 크리스마스의 이미지는 그런 것이었다. 행복하고 마음이 풍성한 날이어야 한다. 괜히 남편에게 심통을 냈다. 오늘 같은 날은 뭐라도 해야 하지 않냐고, 어떻게 이렇게 아무 계획 없이 지나갈 수 있냐고 말이다. 남편은 늘 이런 식이다. 이벤트 같은 건 바라지도 않지만, 아무리 그래도 오래간만에 모인 가족의 계획이 아무것도 없는 게 한편으로 무척 섭섭했다. 떨어져 살다가 몇 개월 만에 만났지만, 반가움은 잠시고 우리 가족은 모두 그대로의 자리였다. 처음엔 그것이 편안함으로 다가왔고, 바뀌었으면 하는 것이 바뀌지 않은 것에 이내 섭섭하고 화가 났다.
남편은 그제야 일이 잘못된 것을 알아챘다. 늘 너무 늦게 눈치를 챈다. 우리가 원래 가려던 쇼핑몰을 가자고 채근한다. 나는 다 귀찮아졌다며, 이제 나가서 뭐 하냐고 거절했다. 오후 7시가 넘은 시간이다. 영화 예매한 것을 취소했다. 평화롭고 땅 넓은 뉴질랜드에서 돌아온 터라 바글바글한 사람 구경이 하고 싶어 쇼핑몰을 가고 싶었다. 지금 가도 사람은 많을 것 같았지만, 둘째도 없고 시간도 훌쩍 지나가버려 김이 새 버렸다.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은 남편은 그제야 혼자 분주하다. 이것저것 다른 대안을 나에게 들이민다. 어디에 끝내주게 맛있는 해장국집이 있다며 가자고 하질 않나, 예전에 우리가 먹고 기억이 좋았던 어느 식당을 가자고 하질 않나, 첫째가 먹고 싶어 하던 아귀찜을 먹으러 가자고 하질 않나, 남편의 계획은 모두 밥집이다. 그것도 왠지 크리스마스에 전혀 붐빌 것 같지 않은 집들뿐이다. 아무런 계획이 없던 사람이 갑자기 계획할 수 있는 건 평소에 본인이 맛있게 먹었던 밥집이 다였다. 힘이 더 빠졌다. 침대에 누워 못 들은 체하고 있다가 잠이 들었다.
"탁.탁.탁.탁.탁"
잠결에 주방에서 들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밤 10시다. 둘째는 집에 돌아와 있었고, 남편은 야식인지, 늦은 저녁인지를 만들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는 다 지났다.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분주하게 무엇인가를 만들던 남편이 방으로 들어왔다.
"여보, 일어났어? 짜파게티 먹자! 내가 양파도 넣었어."
배가 고팠다. 저녁도 못 먹고 잠을 잤던 터라 못 이기는 척 거실로 나갔다. 남편이 만든 짜파게티가 냄비째로 식탁위에 놓여 있었다. 엄마가 싸주신 열무김치도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아이들은 짜파게티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배가 고팠던 나도 맛있게 잘 먹었다. 남편도 맛있게 잘 먹었다. 우리는 남편이 끓인 라면을 모두 만족하며 먹었다. 라면은 항상 남편이 하는 요리였다. 나보다 물 조절을 잘했고 적당하게 면이 익을 때쯤 불을 껐다. 여전히 남편의 라면은 맛있었다. 양파를 넣어서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좋았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남편이 밉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날이다. 다음번에도 이런 일이 또 생길 것이다. 크리스마스 연휴 몇 주 전에 가족 여행을 계획하고 떠난 내 친구의 남편 자랑을 들으며 눈 온 여행지에서 보낸 친구 가족의 소식에 또 뾰로통하기도 했지만 자고 일어나 먹은 짜파게티에 절반은 용서가 되었다. 어쩌겠는가. 15년을 알려줘도 못하는 남편인데. 그렇다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작은 것이 아님은 잘 알지만, 앞으로도 또 계획 잘 세우는 친구 남편이랑 비교도 하겠지만, 아삭아삭 씹히는 짜파게티를 먹으며 두런두런 온 가족이 모여 앉았으니 일단은 만족해야겠다.
양파를 넣은 게 신의 한 수다. 아삭아삭 씹히는 양파 조각이 내 마음도 잘게 부숴버렸다.
크리스마스에 우리 가족은 아삭한 짜파게티를 나눠 먹으며 따뜻한 방에서 뾰로통하지만 마음 담긴 대화를 하며 보냈다. 내년 크리스마스도 위와 비슷할 것이다. 내년엔 양파 넣은 짜파게티보다 조금 더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