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5일, 뉴질랜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2월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10개월을 뉴질랜드에서 지낼 계획이었다. 한국은 겨울이 끝나고 있었고 뉴질랜드는 여름의 막바지였다.
여름의 끝자락이었지만 뉴질랜드의 여름은 매우 아름다웠다. 한국의 여름과 다른 점이 많았다. 제일 큰 차이는 습하지 않다는 점이다. 햇빛 아래에 서있으면 피부가 타는 것같이 뜨거운데 그늘로 들어가면 아주 시원하다. 뉴질랜드의 여름은 덥고 뜨거웠지만 에어컨 한번 켜지 않았다. 두 번째 다른 점은 모기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간혹 모기에 물리기도 하는데 일단 물리면 심하게 붓고 매우 간지럽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모기는 한두 번 정도였다. 모기가 없는 반면에 파리가 많았는데, 창문을 열어두면 집안에 파리가 5마리 정도 날아다닌다. 어떤 파리는 엄지손톱만 하고 어떤 파리는 새끼손톱만 하다. 그냥 두면 밖으로 다시 나가기도 하고 그렇게 나간 녀석이 다시 들어오기도 한다. 파리는 모기와 달리 사람을 물진 않지만 음식에 앉기도 하고 날아다니는 소리와 시각적인 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에 되도록 내쫓거나 할 수 없을 땐 잡는다. 한국에서 파리를 잡아본 기억이 없다. 처음엔 뚱뚱한 몸체가 부담스러웠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나는 파리 킬러가 되었다. 내가 죽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집 창틀에 파리가 많이 죽어있었다. 죽이지도 못하고 내쫓지도 못한 파리는 집안에 갇혀 창밖을 바라보다 창틀에서 죽는다. 파리는 햇빛을 보지 못하면 살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어제 들어온 파리가 오늘은 날아다니는 소리도 안 들리고 내일은 창가에 죽어있다. 성질이 급한 것 같기도 하다.
가장 큰 문제는 영어였다.
애들은 영어를 금방 배웠다. 학교 가면 친구들도 있고, 선생님도 있으니 대화할 상대가 많았다. 나는 영어를 책으로 배운 세대이기 때문에 스피킹을 정말 못했는데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으니 항상 제자리걸음이다. 혼자 스피킹 연습을 해야 하는데, 게으른 나는 그 소중한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되돌아보면 속에서는 열심히 뉴질랜드에 적응하고 있었던 것 같다. 처음 낯선 땅에 나가 살면서 애들 때문에라도 쳐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래서 오히려 우울했던 거 같기도 하다.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어서 외로웠다. 아이들이 내 옆에 있었지만 그들과 어둡고 힘든 얘기는 나눌 수 없었다. 나는 엄마였고 아이들이 이곳에 적응을 잘하도록 격려하고 응원했다. 나는 내가 스스로 돌봐야 했다. 집에 관련된 일이나, 도둑이 들었을 때나 슈퍼에서 산 물건이 잘못 배달되었을 때 가끔 영어를 사용해야 할 일이 나에게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 오면 일단 부담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는데 여차저차 상황은 해결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런 과정을 통해 내가 점점 작아졌다는 것이다. 배운 영어와 현지 영어는 전혀 달랐다. 자신감이 점점 떨어졌다. 영어를 못하는 내가 싫었는데, 딱히 공부를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많이 되는데, 그때는 정말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뉴질랜드의 여름이 가고 가을을 지나 겨울이 왔다.
뉴질랜드의 겨울은 매우 습하다. 온 집안이 곰팡이 파티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곰팡이를 본건 귤 상자 안에서 남모르게 혼자 곰팡이에 뒤덮인 불쌍한 귤을 제외하고 처음이다. 장롱, 서랍장, 옷, 책장 뒤.. 구석이란 구석엔 모두 곰팡이가 피었고, 집에 있는 모든 문에도 곰팡이가 생겼다. 영하로는 내려가지 않는 날씨였지만 습하고 난방시설이 없는 집 구조 때문에 매우 추웠는데, 매일 아침 창문을 다 열고 환기를 해야 했다. 밤을 지나 다시 아침이 되면 창문에 물방울이 맺혀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마른 걸레로 창문을 닦고 환기를 한다. 추워서 집안에서 파카를 입고 살았다. 히트 펌프를 키면 따뜻했지만, 끄면 금세 다시 추워졌다. 먼 땅의 집은 온기를 오래 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더 힘들었다. 얼른 하루를 보내고 자고 싶었다. 그래야 내일이 온다. 내일 아침이 오면 또 밤만 기다렸다. 겨우내 나는 아침에 환기하고 곰팡이를 청소하고 곰처럼 잠을 많이 잤다. 그렇게 꼬박 5개월을 살고 봄이 왔다. 뉴질랜드의 긴 겨울이 끝났다.
이때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오래간만에 찾은 한국은 떠났을 때 모습 그대로였다. 떠날 때도 겨울이었고, 다시 왔을 때도 겨울이다. 사람도 모두 그대로다. 하필 겨울이지만 마음이 이내 편안해졌다. 집에 왔다. 하루 이틀 살다 보니 여전히 싸울 일도 있고, 고민스러운 일도 있다. 새삼 깨달은 점도 많고 그리움에 묻혀 잊고 있었던 짜증 나는 일도 다시 생겼다. 모든 게 그대로다.
나는 10개월 동안 무엇을 했을까.
긴 겨울을 힘겹게 보냈다. 계절이 반대인 두 나라에서 살다 보니 일 년에 겨울만 6개월 이상을 사는 것 같다. 이건 지금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여름에 세 번째 책이 나왔다.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책이 발간되었을 때 잠깐의 기쁨이 지나가고 그 후로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그전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책이 나올 때마다 느끼는 것 중 하나다.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뉴질랜드로 갈 때 책을 여러 권 챙겨갔다. 마음이 편치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섯 권도 읽지 못하고 한 해가 지나갔다.
많이 걷고 뛰었다.
내가 제일 열심히 한건 달리기다. 주 3회, 많으면 주 5회 달렸다. 최소 30분을 달렸는데,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을 때 그 기분이 좋았다. 힘들었지만 제일 좋았던 일이다. 10월부터 무릎이 아파 달리지 못했는데, 많이 힘들었다. 나는 달리기로 위로받고 있었나 보다. 한국에 오자마자 정형외과를 갔는데, 무릎은 너무 괜찮다고 한다. 내 무릎은 왜 아팠을까.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유튜브를 거의 보지 않았다. 뉴질랜드에서 시간이 많아지고 우울감이 돌때 유튜브를 많이 봤다. 좋은 강의도 많이 보고 재미있는 영상도 많이 봤다. 도움도 됐지만, 가장 후회하는 것 중 하나다. 너무 시간을 많이 낭비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게으른 완벽주의라는 단어를 올해 이곳저곳에서 많이 봤다. 나는 스스로를 게으른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한다. 딱 들어맞는다. 개선 방법이 여러 가지 있는데, 지금은 매일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글쓰기 모임을 통해 동기 부여를 받고 있다.
사람의 성장은 성공으로도 오지만 실패를 통해서도 겪는다. 올해 나는 개인적으로 실패투성이인 한 해를 보낸 것 같다. 계획한 목표 중 성공한 게 몇 개 없다. 소중한 시간을 소중하지 않게 보냈다. 위안 삼는 것은 아이들이 새 학교에 잘 적응했고 한번도 아프지 않고 한 해를 보낸 것이다. 큰 사건 사고 없이 첫해를 넘겼다. 집에 도둑이 두 번 들긴 했지만 내 기준에서 그들은 귀여운 수준이었다. 그 덕에 뉴질랜드 경찰과 대화도 나누고 조서도 작성해 봤다. 도둑인 줄 모르고 마당에서 나와 도둑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경찰에 신고해 준 착한 이웃이 있었다. 닉과 클로이는 내가 뉴질랜드에 정착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젊은 키위 부부다. 이제 보니 뉴질랜드에서 내가 얻은 것들이 꽤나 많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나 자신이 스스로 이룬 것이 없다 생각되어서인 것 같다. 조금 더 부지런한 사람이 되고 싶다. 매일 글쓰기를 통해 극복해 보려고 한다. 짧은 글은 짧은 글대로, 긴 글은 긴 글대로 아직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지만, 꾸준히 계속 해나가면서 느리지만 정확히 발걸음을 남기며 걸어가려 한다.
2024년이 온다. 달리기를 시작할 때 1분 달리기부터 해야 하는 것처럼, 처음엔 느리고 어설프지만 나중엔 긴 호흡으로 30분 이상 달릴 수 있는 나를 상상하며 하루를 작은 성취로 마무리하는 매일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