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by 게으른 곰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있는 나라에 사는건 행운이다. 누구는 평생 여름만 겪어보고 또 누구는 겨울만 살다 죽는다. 그 속에도 봄과 가을은 있겠지만, 정반대의 계절은 겪어보지 않고는 상상도 못할것이다.

아름다운 사계절이 있는 한국에서 태어난 나는 무릎까지 내린 눈도 경험 해봤고 37도까지 올라가는 뜨거운 여름도 겪어봤다. 벚꽃피는 아름다운 봄과 오색 찬란한 낙엽길을 걸으며 추억을 많이 쌓았다.


문제는 겨울이다.

정확하게는 나의 문제라고 해야할 것이다. 나는 수족 냉증을 평생 앓고 있는 사람이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있지만 근육양은 잘 늘지 않는다. 추위를 견뎌낼만한 체력이 없다. 아무리 두꺼운 옷을 입고 있어도 한기는 작은 틈을 발견하고 옷 속으로 기어코 들어온다. 나의 온 신경은 삐쭉 곤두선다. 작고 뾰족한 찬 바람이 나의 살갗을 건드리면 오돌토돌 피부가 반응한다.


"너무 싫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표현이다. 오는 계절을 어쩌겠는가. 게다가 겨울은 그 나름의 운치가 있는 계절이지 않은가. 겨울은 엄숙하고 진지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안에 포근함이 있다. 그쪽 편에서 보면 겨울은 참 좋다. 하지만 싫다. 내가 남편처럼 추위를 많이 타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겨울이 오기를 손꼽았을 것이다. 눈이 오는 계절, 차분히 가라앉아 정리하는 계절, 한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하는 계절, 겨울은 여러가지로 정말 매력있는 계절이다.

하지만 이 모든 멋짐은 추위를 잘타는 것 하나로 두려운 계절로 바뀐다. 나에게만 적용되는 일이다.


나는 겨울이 오기전 단단히 채비를 한다. 내복은 필수다. 답답하고 불편하지만 선택 사항이 아니다. 장갑, 외투, 부츠, 모자를 갖추고도 방한 용품을 더 뒤적거려본다. 그럼에도 겨울은 나에게 매번 힘든 계절이다. 이불 속에서 나올 수 없게 만들고, 이럴바에는 차라리 곰처럼 겨울잠을 자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최저 기온 영하 14도이다. 뉴질랜드에서 한국에 온 지 2주가 지난 나는 이 추위가 더 견디기 힘들다. 뉴질랜드는 지금 한여름이다. 그 좋은 계절을 두고 영하 14도인 한국으로 왔다. 가족이 만나는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기쁜 일이지만, 하필 그 시기가 이렇게 추운 계절인 것이 한없이 아쉽다.


나는 오늘 집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외출하고 돌아오는 딸이 붕어빵을 사왔다. 붕어빵을 한입 베어물고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문득, 겨울이 주는 행복을 하나씩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어묵탕을 먹어야지. 모레는 호빵을 먹어야겠다. 글피는 방어회에 술 한잔 해야지! "


뭐, 겨울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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