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는 단어는 어릴 적 친구를 떠오르게 한다. 나이가 들면서 친구라는 이미지도 많이 바뀌는데 어렸을때의 친구하면 개구지고 명랑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반면 어른이 되고나서 친구는 편안하고 안정적인 느낌이다.
어린 시절 친구는 같이 노는 대상이었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친구와 함께 산으로 강으로 매일 놀러 다닌 기억이 있다. 비석치기, 오징어 게임, 고무줄 놀이 모두 친구가 있어야 할 수 있는 놀이들이다. 공기놀이도 혼자하면 재미가 없다. 재미있는 것을 하려면 꼭 필요한게 친구다. 시골은 같은 나이의 친구도 있지만 언니 오빠 동생 모두 다 친구여 였다. 놀이는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재미있는 법이다. 정월대보릉에 했던 쥐불놀이도 여럿이 모여 돌려야 더 아름답고 웅장햤다. 깜깜한 밤에 저마다 깡통속에 활활 타고 남은 나무 조각을 담고 논두렁에 서서 열심히 돌리면 예쁜 불꽃링이 만들어졌다. 저 멀리서 누군가 던진 횃불 하나가 허공에서 뱅글 뱅글 돌다가 휙 날아가서 땅에 박히는 모습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이 난다. 어두워진 저녁, 아빠와 손잡고 집에서 빈 깡통과 나무 조각들을 챙겨 논으로 가는 길에서 뒷집 친구도 만나고 앞집 친구도 만난다. 그렇게 우리는 그 시절을 함께 만들었다.
학창시절의 친구는, 이 세상 아무것도 무서울 것 없는 동지였다.
둘만 있어도 두려울게 없었다. 공부에 제일 최선을 다 했어야 했을 그 때 나는 친구와 공부를 제외한 수 많은일을 했다. 음악을 좋아했던 나는 친구와 음악 밴드를 만들어 활동했고 합주실을 빌려 연습도 했다. 그럴듯한 무대한번 서보지 못했지만 그때 나는 이 세상에서 누구모다도 음악에 진심인 음악가였다. 만화그리는것을 좋아해 동아리도 만들었는데, 내가 회장, 친구가 부회장을 맡아 운영을 했다. 화보집도 몇 차례 만들었고 옆 학교와 협업도 했다. 무엇인가를 하고 싶었을때 친구가 없었다면 용기를 못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했고 그때의 어린 혈기는 우정으로 자리잡았다.
성인이 되고난 후 친구는 술친구로 바꼈다. 여중, 여고를 나온 나는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남자 친구가 생겼는데 대부분 술친구였다. 회사에서 힘들 일이 있던 날엔 항상 술 한잔에 위로를 주고받고 술 두잔에 내일을 계획했다. 회사 업무라는것이 계획한대로 모두 성과가 나지는 않가도 했는데 그 핑계로 우리는 술을 자주 마셨던것 같다. 성과가 좋아서 한잔했고 성과가 나빠서 또 한잔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젊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열정도 많았고 의욕도 앞섰다. 작은일에도 열심이었고 또 그래서 많이 좌절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 이 세상과 부딪히며 참 열심히 살았던것 같다.
엄마가 되고나서의 친구는 육아 동료다. 같은 동네 엄마들과 자주 모였다. 대화의 90%는 아이에 대한 내용이다. 어젯밤에 아이가 한 어떤 작은 행동 하나를 가지고 심각하게 종일 이야기했다. 세상의 중심이 나에서 아이로 넘어가있던 시기다. 휴직을 했거나 육아로 인해 경력 단절이 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꿈을 위해 쫓았던 꿈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아이가 인생의 전부처럼 느껴진 시기다. 엄마들간의 공감대는 그 어느 시기보다도 높았는데, 동갑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끼리는 어느때 친구보다도 끈끈한 관계였다. 놀이터에서 매일 만났고 가까워진 엄마들은 주말까지 만나 가까운데로 소풍을 갔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커피를 함께 마시고 운동을 같이 했다. 처음엔 아이때문에 시작된 관계가 아이가 커갈수록 엄마 본인의 관계로 바뀌게 되었다. 어릴때 고민을 친구에게 털어놓듯이 옆집 애엄마는 어느새 내 친구가 되어있었다. 맛있는것을 나눠 먹는 이웃사촌이 되었고 여행도 같이 가는 사이가되었다. 아이는 어느새 훌쩍 커버렸고 우리에겐 아이들이 어릴때 함께 했던 추억이 남겨졌다.
물론 어릴때 친구가 지금의 친구이기도 한데 그 모습이 조금 바뀌었다. 학창시절 미술 학원을 같이 다녔던 친구는 아직도 자주 연락하는 사이다.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좋은 시간도 함께 보내면서 어른이 된 우리는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어른이 되고 아이를 키우며 각자의 사정으로 가까운 거리엔 살지 못하게 되었다. 모두 수도권에 살고는 있지만 누구는 윗쪽에, 누구는 아랫쪽, 아니 동서남북 골고루 각자의 삶에 맞는 지역에 터를 잡았다. 그러다보니 얼굴을 보기는 좀처럼 쉽지 않았고 가정일이나 회사일로 많이 바빠 시간을 내기도 어려웠다. 일년에 한두번 얼굴보는게 다지만 다행인것은 몇번 만나지 않아도 어색하거나 불편한것은 없다는것이다. 어릴때 사귄 친구들의 공통점이다. 일년에 한번 맛있는걸 먹으며 만나는데 못본만큼 할말도 많다. 3-4시간이 눈깜짝할 사이에 흘러간다. 각자의 집의 거리 때문에 너무 늦게까지 함께 있진 못해도 즐겁게 만나 즐겁게 헤어진다. 다음을 약속하고 그 사이는 인터넷 메신저가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사실 어린 시절의 친구는 어른이 되면서 멀어지기도 하는데, 어린시절의 공감대가 어른이 되어서까지 이어지지 않을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클리나멘처럼 잠시 만나 좋은 시간을 보냈고 그 뒤로 어른이 되고 각자의 꿈을 쫓다보니 다른 방향으로 멀어진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지금 만나면 취미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른것이 많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만나 좋았던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고 그때를 그리워하며 안부를 나눈다. 그때의 내가 보낸 그 시간 덕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아직도 소중한 존재인것이다.
앞으로 남은 인생의 친구를 생각해봤다. 내 마지막 친구는 남편이 될것이다. 지금도 제일 가까운 친구다. 남편과 나는 동갑이다. 같은 회사를 다녔었는데 동갑이라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둘 다 지기싫어하는 성격탓에 이런 저런 내기를 하며 친해졌다. 스타크래프트나 포켓볼 시합을 자주 했다. 당구장에서 짜장면 먹다가 결혼을 했다. 동갑이라 편한점도 많았는데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아이가 크면서 우리는 더 돈독해졌다. 젊음의 화려함은 없어졌지만, 대신 묵직한 믿음과 신뢰가 쌓였다. 우린 기쁨을 함께 즐겼고 슬픔을 반으로 나눴다. 힘든 시간을 인내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이겨냈다. 이젠 그 누구보다도 내 친한 친구가 되었다. 아직도 싸우고 서로 불만도 많지만 나를 가장 많이 이해하는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는 친구는 같이 산책을 하는 모습이 제일 잘 어울리는것 같다. 대화를 나누며 걷는 뒷모습이 떠오른다. 옆에 같이 걷는 그 사람과 오래 천천히 많은것을 보고 나누며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