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와 설거지

by 게으른 곰

종종 친구들끼리 모여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적게는 2-3명에서 부터 많게는 8-10명정도가 모였는데 몇 명이 모이든간에 요리를 맡는 무리와 설거지를 맡는 무리로 나눠졌다. 인원이 많으면 재료 손질이나 요리를 담당하는 메인 요리사 친구가 시키는 허드렛일을 하는 녀석도 있다. 그중엔 이곳도 저곳도 끼지못하고 침대에서 자는 녀석이 있는가하면, 빠진 재료를 공수해와야하는 마트 심부름을 가는 친구도 있기 마련이다.


나는 언제나 설거지 담당이었다.


결혼을 하고 요리를 시작했다. 요리라고 자신있게 내세울 실력도 아니지만, 결혼 후 쌀을 씻고 밥을 처음 지어봤다. 물만 잘 맞추면 밥은 그럴싸하게 잘 되었다.

문제는 밥 외의 음식이다.

음식을 만들려면 일단 재료가 있어야 하고 그 재료를 다듬어야 하고 재료에 열을 가하거나 열을 가하지 않고 완성을 시킨다. 한줄로 표현할 수 있는 요리는 직접 해보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일단 재료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하고 각기 다른 재료들을 음식에 어울리게 준비해야한다. 나의 경우를 보자면 고기 요리보다 채소를 이용해 만드는 요리가 훨씬 어렵고 힘든데, 그 이유는 당연하다.

채소는 일단 물로 씻어야한다. 그리고 흙이 뭍어 있거나 상한 부분을 도려내야하고 먹을 수 있는 부분을 다듬고 손질해야한다. 요리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귀찮은 과정이 있는것이다. 물로 씻어내고 다듬는 과정을 하면서 냄비엔 물을 올려야한다.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나물무침의 경우를 보자면 끓는 물에 데쳐야 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물이 끓을동안 채소를 다듬는다.

그렇다. 요리는 효율적인 순서를 알고 있어야 한다. 처음 요리가 어려웠던건 이 부분이었다. 나는 요리를 책으로 배웠는데 예를들면 그 순서는 이랬다.


1. 채소를 깨끗이 씻고 손질하세요.

2. 씻은 채소를 끓는물에 살짝 데치세요.


1번을 읽고 채소를 씻는다. 그리고 1번의 작업이 끝나고 가스에 물을 올린다. 그리고 기다린다. 물이 끓는 시간은 몇 분 걸리지 않지만 할일없이 냄비만 쳐다보고 있는게 그리 즐겁지 않다. 미리 물을 올려놨어야했다. 그리고 바로 채소를 데쳐 찬물에 헹구고 물기를 꽉 짜낸 뒤 참기름, 소금, 간장, 다진마늘, 다진 파 등을 넣고 버무려 완성한다.

지금이야 수십 번 만들어봤기 때문에 과정을 찾아보지 않는다. 나물을 만들땐 채소 데칠 물부터 올린다. 하지만 이렇게 내가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하기까지 몇번의 시행착오를 겪어야했다. 요리를 좀 해봤다 싶은 사람들은 '에이, 뭐 저런것도 몰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시행착오는 이것 뿐만이 아니었다.


중간 설거지.

말 그대로 중간에 하는 설거지다. 누군가 나에게 그런말을 했다.

'어떤 사람이 요리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보려면 요리하는 것보다 중간 설거지를 하는지 안하는지를 보면된다.'

라고. 이게 무슨말인가 하겠지만 나는 이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요리를 하다보면 사용된 그릇이 많이 쌓인다. 도마, 칼은 기본이고 컵, 숟가락, 양념 갠 그릇, 버무린 그릇, 데친 냄비, 볶은 그릇, 후라이팬, 나무 수저, 물기 빼는데 쓴 소쿠리, 재료를 담았던 그릇, 계량컵 등 순식간에 싱크대는 꽉찬다. 식사 후 먹은 그릇까지 합치면 싱크대에 들어갈 자리조차 없다. 게다가 요리할때 사용되는 그릇들은 대게 덩치가 커서 자리를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정리하면서 요리하지 않으면 금세 정신없이 복잡한 주방이 된다. 요리에 방해가 되는것이다. 요리까지하면서 설거지를 해야한다고? 라고 생각했다. 요리도 벅찬데 설거지까지 해야하다니.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꺼야. 라고 생각했다. 요리를 시작한지 10년이 넘어가니 중간 설거지쯤 휘릭 끝내버린다. 나물을 무치고 바로 양푼을 씻는다. 양념을 만들어 놓은 그릇도 사용한 후 바로 세척한다. 어려울게 없다. 이 과정은 머릿속에 요리의 전체적인 진행 과정만 알고 있으면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중간 설거지를 하기까지 12년이 걸린것 같다.


지금은 요리가 조금 수월해졌다. 아직 대단한 음식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예전에 비해 부담이 많이 줄었다. 그래도 친구들이 모여 무언가를 만들어 먹을 때 나는 아직도 설거지 담당이다. 무념무상으로 할 수 있는 설거지가 편하다. 설거지에도 나름 규칙은 있는데, 컵을 제일먼저 닦고 그 다음 기름이 안뭍은 그릇을 닦고 양념이 뭍어있는 그릇은 먼저 물로 헹궈낸 뒤 닦는다. 요즘은 식기 세척기가 있어 애벌 설거지만 하면 식기 세척기가 나머지 일을 다 해준다. 뜨거운 물로 진행이 되기 때문에 위생에도 더 나을것이다. 뜨거운 물 샤워를 한 그릇들은 손 설거지를 했을 때보다 더 뽀득뽀득해진다. 기분이 좋다.


정성껏 만든 음식은 둘러앉아 먹는 사람들의 행복을 맡고 있다면 다 먹은 후에 하는 설거지는 다음번의 행복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 맛있게 먹었으면 맛있게 먹은대로, 맛이 부족했어도 요리한 사람의 정성으로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 즐긴 행복의 마무리이기도 하다. 음식을 만들고 먹고 치우는 과정이 예전엔 번거롭고 귀찮았는데 이런 행복을 느끼고는 조금 수월해졌다. 모든 일은 마음이 가벼워야 즐겁게 할 수 있다. 요리는 더욱 그런것 같다. 어머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맛있게 먹어주면 그게 감사하다.'라고 하신다. 음식 만드시느라 고생은 어머님이 다 하시는데도 맛있게 먹어주는 손님들에게 감사를 표하신다. 예전엔 이 말이 충분히 이해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느정도 알수 있다. 나도 이제 제법 요리가 손에 익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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