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면서 나의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것은 자의적 이기도 했지만 타의적인 부분이 많았다. 나 혼자의 인생은 손쉬운 결정을 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배고플 때 먹고, 졸리면 잤다. 음악이 듣고 싶다면 음악을 들으면 된다. 게다가 스피커로 들을지, LP로 들을지, 노트북이나 휴대폰으로 들을지, 헤드폰을 끼고 들을지 모든 것을 내가 정할 수 있다. 입맛이 없으면 끼니를 거르면 된다. 몸이 피곤한 날은 하루종일 누워서 TV를 보며 보내기도 하면서 말이다.
나는 부모가 된다는 것이 내가 손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것임을 생각하지 못했다. 부모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얼마나 큰 책임감이 필요한 일인지 잘 몰랐다. 20대 후반에 엄마가 됐지만 그때의 나는 몸만 큰, 철없는 어른이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그저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꿈꾸고 그리던 가족의 모습이었다. 결혼식을 올리고 2달 후에 첫 아이가 생겼다. 행복했다.
첫 아이를 낳고나서부터 나의 환상은 깨졌다. 아기는 그저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인 줄 알았다. 아기도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는 줄 알았다. 졸리면 울고 배고프고 우는 아기가 힘들었다. 졸리면 자면 되는데 왜 잠을 못 자는지 이해가 안 됐다. 나 역시 졸려도 잘 수 없었고 원래부터 부족한 체력은 아예 바닥을 찍었다. 배가 고픈데 밥을 먹을 시간이 없었고, 내가 입맛이 없어도 아이를 위해 요리를 해야 했다. 부모가 되고나서부터 요리 실력이 점점 늘었다. 이제는 그동안의 쌓인 시간들이 모여 고추장 몇 숟가락, 간장 몇 숟가락, 다진 마늘 몇 숟가락, 이런 건 보지 않아도 제법 그럴듯한 요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부모로서 내 아이들에게 옳은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였다. 물론 그것은 어느 정도 주관적인 옳음이겠지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삶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 내가 보여주는 대로 아이들은 배울 것이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 동안 책을 읽었고, 주말엔 산으로 바다로 여행을 자주 다녔다. 밥을 먹고 나면 힘들어도 바로 설거지를 했고 몸이 피곤하고 힘들었을 때, 게임을 하거나 웹툰을 보며 늘어져있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이는 24시간 나와 함께했고 나에게서 배우며 자랐다. 아이를 키우며 도를 닦는 심정으로 살았다. 스트레스도 많이 쌓였다. 남편과 나는 부모가 된다는 건 '참는 것이다'라고 정의를 내렸다. 어젯밤에도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아이에게 시간이 늦었으니 얼른 자라고 최대한 다정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이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할 말이 아직 남아있었다. 엄마 아빠는 이미 침대에 누워 졸린 눈꺼풀을 최대한 뜨려고 애쓰고 있는데 아이 눈에는 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 방을 세네 번 더 들어와 이야기를 늘어놓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 부부는 서로를 격려하는 동지가 되었다. 졸리지만 짜증을 내지 않으려 애썼다. '조금만 더 참아 여보.'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건 아이들에게 행복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행복해야 한다. 옳은 것을 어른에게 배우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문화를 누리고 자연을 가까이하며 자라야 한다. 이 세상의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모두 보고 느끼고 울고 웃으며 말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 자기 의지 하나 없이 태어난 아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 같은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선택에 의해 태어난다.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물론 나도 아이들에게 점점 요구하는 것도 많아지고 아이들에게 나의 과거를 투영시켜 바라는 게 많아질 때도 있다. 그래서 지금도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있다. 자식을 낳는 그 순간부터 부모가 된 우리는 끊임없이 참선하고 수행하여 경지에 올라야 하는 위치에 선 것이다. 나는 이미 수십 번 도를 깨우쳤다. 물론 나의 기준이다. 나의 욕구를 억누른 것이 수백 번은 될 것이다. 이 행동은 나보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이가 습득하길 원하지 않는 것이라면 기꺼이 참을 수 있는 게 부모일 것이다. 나는 아직도 안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지만 아이에게 전달해주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이런 노력은 아이가 청소년기가 될 때쯤 위험해진다. 아이들도 이제는 세상을 조금 알만한 나이가 된 것이다. 세상의 옮고 그름을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안에서 편하고 즐거운 것도 찾아낼 수 있다. 부모가 아무리 애를 써도 세상의 숨겨진 모습을 알아버린 아이들을 컨트롤하기는 쉽지 않다. 이때부터 마음을 조금 내려놓는다. 다르게 표현하면 아이들의 자유를 존중하고 그들의 선택을 지지한다. 그것이 부모가 봤을 때 조금 불안정하고 내가 생각하는 옳은 방향과 반대 방향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본인이 보고 있는 작은 부분이 세상의 전부라 생각하기 때문에 부모의 반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턱없이 부족한 경험과 좁은 시야에서 찾은 그들만의 진리를 존중해줘야 한다. 우리도 그렇게 자라서 어른이 된 것처럼 그들도 그들만의 소중한 보석을 품고 아픔을 겪으며 어른이 될 것이다.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부모의 믿음으로 어른이 된 그들은 또다시 자신의 아이를 키우며 비슷한 과정을 겪으며 말이다. 그들도 참고 인내할 것이고 끝없는 사랑을 그들의 자식에게 전해주다가 어느 순간 몸만 큰 어른에서 철이 들고 마음도 큰 어른이 될 것이다.
어른의 역할은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나를 돌이켜볼 때 내가 이상으로 삼고 있는 기준에 반도 못 미친것 같다. 아이들에게 자주 화를 냈고 아이들의 의견을 무시했다. 아이들이 제안한 여러 가지를 내가 피곤하거나 흥미가 없다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았다. 나쁜 습관을 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많이 보여줬다. 내가 조금 더 인내했어야 했다. 부모는 반성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도 부모는 자식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나보다.
'미안해' 대신 '고마워'를 많이 사용하려고 한다. 급한 사정이 있어서 누군가에게 무엇인가 부탁을 하고 미안하다는 표현을 많이 썼다. 어느 순간 '고마워'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사랑 표현을 잘 못하는 엄마다. 아이들은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걸 알 것이다. 내가 말하는 건 말로,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들이다. '사랑해'라는 말과 안아주고 둘째의 뽀뽀를 받아주는 일 같은 거 말이다. 무뚝뚝한 부모 밑에서 자란 나는 애정 표현이 어렵다. '가족의 사랑은 많이 표현할수록 좋다.'라는 게 나의 이상향인데 나부터 잘 안된다. 이미 중학생이 된 둘째는 아직도 굿 나이트 뽀뽀를 한다. 키가 이미 나만큼 컸다. 어릴 때 빼고 부모님에게 뽀뽀를 하거나 받아본 기억이 없는 나는, 덩치가 산만해진 둘째의 뽀뽀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부모다. 인내하고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둘째도 뽀뽀가 싫어지는 날이 오겠지.
...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