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영어 공부 할 각입니다.

by 게으른 곰

중학교 1학년, 영어를 처음 배웠다.

요즘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학교에서 배운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중학교에 올라가서야 영어를 배웠다. 'I am a boy' 같은 문장을 배웠던 기억이 난다.

듣기, 쓰기, 읽기 영역을 배웠다. 쓰기는 사실 괄호 채우기가 많았다. 영어는 시험을 보기 위해 배우는 것 같았다. 나는 그때 영어가 한국어처럼 언어라는 생각을 했어도 영어를 배워서 내가 한국어처럼 말하는 모습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대학을 갔다. 학교에서 더 이상 영어를 필수로 배우지 않았다. 그렇게 영어와 멀어졌다. 회사를 다니면서 일본어 학원을 갔다. 퇴근 후에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매우 피곤했을 텐데 그래도 꾸준히 다녔다. 일어 과정 1년을 일시불로 결제를 했지만 1년을 채우지 못했다. 그렇게 돈도 날리고 일본어도 날아가버렸다. 그리고 한참 동안 언어를 배우지 않았다. 영어에 다시 관심이 생긴 건 아이를 낳고서였다.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문득 영어를 잘하고 싶었다. 해외여행 가서 유창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혼자 영어를 공부했다. 거창하고 본격적으로 공부한 건 아니다. 그냥 조금씩 매일 공부했다. 하루에 30분 이내로 공부를 몇 년 동안 꾸준히 해왔다. 실력은 그리 늘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영어에 익숙해지는 나를 발견했다.


점점 영어를 잘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는 단어가 늘어났고 쉬운 영어 책도 읽었다. 나는 영어 공부를 스트레스받지 않는 만큼만 했기 때문에 싫거나 질리지도 않았다. 어느 날은 10분을 공부했고 어느 날은 30분을 공부했다. 여전히 해외여행을 가서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대부분은 의미 전달이 되었다. 나는 영어가 더 좋아졌다. 영화를 볼 땐 한글 자막을 켜두고 봤는데, 한글 자막을 보며 듣는 배우의 영어는 모두 다 들리는 것 같았다. 내가 다 아는 표현들이고 단어들이다. 분명히 나의 영어 실력은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내가 단단한 착각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된 건 작년 초, 뉴질랜드에 가고부터다. 입국 심사 때 나는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진 못했지만 모든 질문에 대답을 했다. 수월하게 뉴질랜드에 발을 딛고 한국에서 미리 계약을 해놓은 집으로 갔다. 이웃집이 바로 옆에 붙어있는 곳이었다. 다음 날 이웃을 만났다. 뉴질랜드 사람이다. 그는 반갑게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친절한 이웃을 만나게 되어 기뻤다. 오후에 그를 다시 만났을 때 쓰레기 수거에 관해 질문을 했다. 내 영어 자신감이 무너져 내린 건 바로 이때다.


그는 원어민답게 매우 빠르고 독특한 뉴질랜드 억양으로 나에게 쓰레기 수거에 관해 설명해 줬다. 그는 매우 친절했고 설명은 길어졌다. 자세한 내용까지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는 듯했다. 문제는 내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 길어질수록 점점 머리는 멍해졌다. 그의 말이 영어는 맞다고 생각한 건 중간에 'Monday' 라던지 'every other week' 같은 말이 들렸기 때문이다. 그게 다였다. 우다다다다다다다 하고 그의 설명이 끝났다. 그리고 그는 웃으며 나에게 'Do you understand?'라고 물었다. 뇌가 정지된다는 말이 어떤 느낌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어정쩡하게 이해를 하고는 그와 헤어졌다. 살다 보니 쓰레기 버리는 일은 쓰레기차가 오는 날과 이웃이 내다 놓는 쓰레기통을 보고 금세 배웠지만, 그때부터 영어 울렁증이 생겼다.


그전에도 나는 내가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지 못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한국인이니까 완벽한 영어를 못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 영어가 완벽하지 못해도 항상 당당하게 말했다. 틀려도 괜찮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상대가 '천천히, 상냥하게' 대답해 주면 어느 정도 이해도 했다. 내가 그동안 영어로 대화를 나눈 이들은 모두 호텔 직원, 식당 주인, 매표소 직원, 항공 직원 등 내가 소비자의 입장일 때가 많았다. 그리고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너무나도 분명했다. 호텔에선 호텔에 관련된 대화를 나눴고 식당에서는 메뉴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이미 예상되는 질문과 답변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처음 내가 아는 영어 세계에서 벗어난 대화가 이웃과의 쓰레기 수거에 관한 대화였다. 그는 나에게 영어가 모국어로 사용하는 나라의 삶을 이야기했다. 대화 주제의 범위는 무한대였고 나는 영어를 무한대로 알지 못했다.


이웃은 여전히 친절했지만 나는 점점 말을 잃었다. 현지인과 대화를 할 때 말문이 막히는 일이 잦았다. 그만큼 내 자신감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영어 수업을 찾았다. 이것저것 구입을 했다. 앱도 구입하고, 온라인 수업도 들었다. 그 사이에 나는 집에 도둑이 들어 경찰에게 상황을 영어로 설명해야 했으며 예고하지 않고 나의 집을 찾은 방문 판매객에게 이해되지 않는 상품 설명도 한참 들어야 했다. 마트 배송을 받고 물건이 누락되어 상담원에게 환불을 요청해야 했으며 가스 밸브가 새 수리를 해줄 사람을 구해야 했고 그에게 어떤 현상이 있는지 설명해야 했다. 내가 아는 영어보다 훨씬 더 넓은 세상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영어 울렁증이 한번 오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 위축이 많이 된다는 소리를 누군가에게 들었다. 그렇게 공부를 오래 했는데, 영어를 말할 수 없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입으로 말하는 영어를 배운 적이 없다.


기가 꺾인 나는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커피숍에서 주문하는 일이나 부동산과 메일로 주고받는 일 등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을 제외하고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내가 영어로 말하지 못 하는게 싫었다. 뉴질랜드에서도 꾸준히 공부를 했지만 실력은 더디게 늘었다. 공부도 점점 멀리하게 됐다. 그렇게 나는 1년을 날려버렸다. 일본어처럼 영어로 날아가버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를 후회하면서 말이다. 지금은 준비되지 않은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시간이라고 나를 위로했지만, 그 당시엔 내가 참 무능해 보였고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 6년, 그리고 스트레스받지 않는 영어 공부 10년.

이렇게 공부를 했어도 말을 못 한다는 현실이 이젠 받아들여진다.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영어 문장을 눈으로 보고 머리로 이해했다. 그 문장을 입을 말한 적이 없다. 그래도 영어를 말할 수 있는 줄 알았다. 나는 3주 후 다시 뉴질랜드로 떠난다. 올해 목표는 딱 하나다.


삶을 영어로 말할 수 있을 만큼 공부하자.


첫 번째 목표는 나에게 쓰레기 수거 방법을 알려 준 이웃에게 아쉬움과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다. 그는 2월에 이사를 간다. 영어가 부족해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게 아쉽다. 올 연말엔 영어로 살았던 많은 삶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게 되길 바란다. 첫 목표였던 원어민처럼 말하기를 이루려면 평생 공부해야 할 것 같지만, 일단은 'I am a boy'부터 시작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부모가 된 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