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by 게으른 곰

라면은 누구나 쉽게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음식이다. 나는 라면에 이것저것을 첨가해서 먹는 걸 좋아하는데, 달걀은 물론이고 양파, 파, 부추, 버섯, 소시지, 치즈, 어묵, 만두, 떡국 떡 등 냉장고에 있는 재료 중 라면과 잘 어울리겠다 싶은 건 어떤 것이든 넣고 끓인다. 그래서 어느 때는 성공이고 어느 때는 실패다. 물이 부족해져 짜지거나 재료가 너무 강한 맛을 내 라면 본연의 맛이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다. 여러 해 동안 시행착오를 거친 나는 이제 그럴싸하게 간을 맞출 수 있게 되었지만 사실 여전히 맛은 보장하지 못한다.


한 라면 회사의 창시자가 일본에서 라면을 처음 들여온 과정을 적은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는 가난한 국민을 위해 많은 손해와 위험을 감수하고 라면을 한국에 들여왔다고 한다. 싸고 손쉬운 조리법에 든든한 끼니가 되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라면으로 허기를 달랬을 것이다. 꿀꿀이 죽이 5원이던 시절이었다. 10원에 판매를 시작했고 회사는 1년이 넘도록 적자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유일의 사료를 먹지 않고 풀을 먹여 소를 키우는 목장도 소고기 라면을 만들기 위해 시작했다고 한다. 라면에 소고기를 넣어 영양을 풍부하게 하려는 생각에서다. 그때 유명했던, 어떤 복서의 인터뷰 중 '라면 먹고 연습했어요.'는 어렵고 못살았던 그 시절, 라면으로 많은 사람들이 위로받았음을 말해준다. 그 계기로 라면은 우리 삶에 녹아들어 국민 음식이 되었다. 손쉽게 끓여 한 끼를 대신할 수 있는 라면은 맛도 좋다. 물놀이가 끝난 후 먹는 라면은 이 세상 어떤 진수성찬보다 훌륭하다. 겨울 바다 앞에서 먹었던 라면이나 산 정상에서 땀 흘리며 먹은 라면은 안 먹어 본 사람도 상상할 수 있는 맛일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의 라면은 학창 시절부터 시작이다. 나에겐 2살 어린 남동생이 있는데, 늘 바빴던 아빠와 엄마 대신 집에서 밥이나 간식을 챙긴 건 내가 아니고 동생이었다. 사람은 가지고 태어나는 소질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동생은 라면을 잘 끓였다. 살짝 꼬들면일 때 불을 끄고 냄비 채 식탁에 올려놓고 먹는 라면은 정말 맛있었다. 라면 끓이기는 타이밍이 중요한데, 내 라면은 늘 푹 퍼졌다. 이때부터 나는 설거지 담당이 되었다.


친구와 자취를 하며 회사를 다니던 20대엔 내가 라면을 끓였는데, 놀랍게도 나랑 같이 살았던 친구는 나보다 라면을 더 못 끓였다. 한 번은 내가 감기 몸살로 앓았는데 친구는 아픈 나를 위해 정성을 다해 달걀 죽을 했다. 나는 그 달걀죽을 먹고 분명히 더 아파졌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맛의 음식이었다. 아니, 그건 음식이라고 불리면 안 되는 어떤 존재였다. 라면은 내가 끓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돈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둘 다 집순이였기 때문에 라면을 종종 끓여 먹은 기억이 난다. 무슨 일이던 반복해서 하는 행동은 나아지게 된다. 나는 라면을 점점 잘 끓이게 되었다.


달걀에 고춧가루를 조금 넣고 끓이기도 했고 어느 날은 콩나물을 넣고 끓였다. 그때는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볼 생각을 못했던 시절이고 유튜브가 막 시작됐을 무렵이라 라면 조리는 모두 내 입맛에 의해 결정됐다. 콩나물이나 양파, 버섯등을 너무 많이 넣으면 라면이 싱거워진다. 다진 고기와 파, 고춧가루를 넣은 라면은 영양소도 제법 갖춘 식사가 된다. 귀찮거나 해장이 필요할 때, 주머니가 가벼울 때 라면을 자주 끓여 먹었다. 라면을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여온 분의 마음이 그때까지도 통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때 라면을 먹으며 이런 말을 했다.


'라면이 질리기도 할까?'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라면을 안 먹던 시기가 있었는데, 결혼 후다. 나는 결혼하고 몇 달 뒤에 바로 임신을 했다. 첫 아이라 초보 엄마가 된 나는 몸에 안 좋다는 것을 모두 끊어버렸다. 커피도 안 마시고 라면도 먹지 않았다. 몸에 좋다는 음식을 많이 먹으려 애썼는데, 임신 기간 내내 입덧이 심해 그마저도 먹고 다시 토했었다. 그럼에도 몸무게는 날로 늘어나 25kg 정도가 쪘었는데, 도대체 무엇을 먹고 그렇게 살이 많이 쪘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건 입덧으로 음식을 잘 먹지 못했던 기억뿐인데 말이다. 나는 입맛이 그리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다. 못 먹는 음식이 거의 없지만, 평소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은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홍어나 과메기 같은 음식이다. 사람마다 누구나 이렇게 못 먹는 음식도 있고 싫어하는 음식도 있다. 어릴 때는 못 먹다가 어른이 되어 먹을 수 있게 되는 음식도 있다. 어린 시절 내 친구는 순대를 먹지 못했다.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다고 한다. 음식은 사람마다 선호도가 다르기 마련인데 라면은 어릴 때부터 다들 좋아하는 음식이 아닐까 싶다. 건강을 위해 먹지 않으려는 이유를 제외하면, 라면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아이들이 라면을 먹는 걸 꺼렸다. 나트륨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음식이고 건강에 딱히 좋지 않다는 인식 때문이다. 둘째가 태어나고 몸이 힘들어지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졌을 때, 나는 라면을 끓였다. 도저히 다른 음식을 할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다. 맵지 않은 하얀 국물 라면이었는데 아이들은 잘 먹었다. 면만 건져줬는데도 라면맛에 홀딱 빠진 얼굴이었다. 그때부터 다시 라면을 종종 끓여 먹은 것 같다. 한 가지 바뀐 건 내가 끓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편이 라면을 잘 끓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물 양을 기가 막히게 잘 맞췄는데, 나중에 보니 계량컵으로 물을 맞추고 있었다. 아니, 무슨 라면 물을 계량컵까지 사용해서 맞추냐 핀잔을 줬지만, 그렇게 딱 맞는 물 양 때문이었는지 남편이 끓인 라면이 내가 끓였을 때보다 확실히 맛이 좋았다. 지금도 라면은 남편 담당이다.


그 뒤로 나이가 들면서 소화가 잘 안 되는 느낌에 라면을 자주 먹지 않는다. 많이 먹으면 한 달에 한두번 정도인 것 같다. 내가 라면을 안 끓여주니 아이들은 각자 컵라면을 사다 먹었다. 아이들은 공부로, 부모는 각자의 일로 바쁜 인생을 살았다. 그리고 작년에 뉴질랜드로 떠났고 그곳에서 지금까지 내가 평생 먹은 라면의 양만큼을 10개월 동안 먹은 것 같다. 한국의 매운맛이 그리울 때마다 마트에서 라면을 사다 먹었다. 어느 때는 일주일에 서너 번이나 먹은 것 같다. 어제 먹고 오늘도 또 먹었다. 그곳엔 딱히 매운 음식이 없었다. 다행히 마트에서 한국 라면을 팔고 있었고, 손쉽게 그리움을 조금 채울 수 있었다.


지금 한국에 온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집에서 라면을 한 번도 끓여 먹지 않았다. 밖에서도 먹지 않았으니 한 번도 라면을 먹지 않은 것이다. 딱히 먹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아마 몇 년 치 라면을 10개월에 모두 먹어버려 그런 것 같다. 다시 뉴질랜드에 가면 또 라면을 많이 먹게 되겠지. 그러니 지금은 먹고 싶었던 음식을 많이 먹어두고 기억해 두자. 나중에 한국의 그리움은 라면이 채워줄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여전히 라면으로 위로받고 있음을 느낀다. 누구는 멀리 있는 그리운 내 나라로, 누구는 가벼운 지갑으로 선택할 수 있는 한끼로, 누구는 라면을 끓여주던 그리운 사람으로 말이다.


여러모로 다행이다. 값싸고 맛있는 라면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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