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가 그렇게 쓰기 싫었다.

글쓰기의 시작

by 게으른 곰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일기가 숙제였다. 일기는 참 귀찮은 숙제임이 틀림없다. 사실 우리의 인생은 하루하루가 별다를 게 없다. 어제와 비슷한 오늘을 산다. 어제는 친구를 만날 수도 있고 오늘은 병원에 갈 수도 있지만, 그 외에는 매일이 특이할 것 없이 비슷하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회사나 학교로 간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도 기상 시간은 다를 수 있지만 하루의 패턴이 비슷한 것은 마찬가지다. 여하튼 우리는 매일을 보통 비슷하게 살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어린 시절 일기 숙제는 참 고역이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방학이 되면 더 문제다. 매일 했었어야 하는 숙제는, 방학이 끝날 때쯤 각 잡고 앉아서 내리 30일치가 쓰여진다. 이때는 어느 소설가보다도 웅장하고 버라이어티 하게 상상력을 쥐어짜야 한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굵직한 사건이 있던 날을 제외하곤 기억이 전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는 사건도 사건이지만, 일기장 첫 줄에 날씨를 쓰는 칸이 있었는데 날씨를 기억해 내는 게 정말 힘들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 꺼내서 검색 한 번이면 끝나겠지만 그 시절은 지나간 날씨를 알아낼 길은 오롯이 기억밖에 없었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께서는 날씨까지 세세하게 확인하지 않으셨을 테지만 그때는 이 친구 저 친구에게 물어봐 날씨 동냥을 했다. 일기를 착실하게 매일 쓴 친구가 있다면 정말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친구와 저 친구, 혹은 또 다른 친구에게 물어 날씨 구멍을 메꿨다. 이때, 어떤 친구는 맑음, 또 다른 친구는 흐림이라고 답하면 또 어려워진다. 그럼 제삼자가 필요하다. 다른 친구의 답이 곧 정답이 된다.


이렇게 날씨를 겨우 채우고 나면 본격적으로 상상력 발휘하기에 돌입한다. 일단 기억나는 날부터 일기장을 채운다. 일기를 쓰면서 그날을 다시 훑어보는데 사실은 이것도 은근히 어려웠다. 어느 화난 날이 기억났다. 그날에 왜 화가 났었는지는 이유는 기억이 나지만 감정은 이미 정리가 되었기 때문에 그때의 분함과 울분은 글 속에 담지 못한다. 어쩌면 그래서 오히려 장점일 수도 있겠다. 내가 화난 날의 일기지만 글은 이미 옆에서 지켜본 구경꾼이 쓴 듯한 느낌이다. 시간과 함께 그날의 감정도 사라져 버렸다.

그날에 일기를 썼다면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채 일기를 썼을 것이다. 그 당시에 왜 화가 났는지 나의 마음을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모두가 같은 글자를 이용하지만 글쓴이의 감정이나 성격, 경험의 농축된 어느 것에 의해 각기 품는 온도는 다르다. 방학을 시작한 날의 신난 하루를 방학이 끝나기 하루 전에 일기로 쓴다면, 그 설레고 끝없이 행복했던 마음이 그대로 기록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기억으로는 저장되었지만, 감정은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내일이 개학인데 방학식 날의 감정이 남아있을 리 만무하다. 그날의 감정을 절반의 절반도 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게 시다. 일기보다 적은 글자로 한 면을 채울 수 있었다. 특히 머리를 아무리 쥐어 짜내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날 때, 시를 쓰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그 당시에는 시가 쉬웠던 기억이 난다. 내 일기장은 절반이 시다. 방학 때면 시가 더 많다. 나의 시에는 다급함이 담겨있다. 개학 전날 한꺼번에 쓴 그 마음이다. 시의 주제나 내용은 모두 다른데 왠지 방향은 모두 한 곳이다. 한 줄이라도 더 쓰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때는 시 쓰는 게 어렵지 않았다. 어떤 주제로 시를 쓴다고 했을 때, 지금은 긴 문장의 글보다 시를 쓰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반면 그 시절 나는 시 쓰는데 막힘이 없었다. 그저 짧은 글로 하루 일기를 대신해주는 시가 고마웠다. 내 팔이 덜 아프게 해 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느 넓은 잔디밭에서 치러진 전국 백일장에서 동시 분야 장려상을 탔다. 상장이 학교로 배달되고 전교생 앞에 혼자 나가 상을 받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빠도 시를 즐겨 쓰셨다. 아빠는 자연을 노래하는 시를 많이 쓰셨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시가 좋았다. 지금 그때 쓴 시를 다시 보면 부족함은 많지만 맑고 순수한 마음은 그대로 담겨있다. 약간의 조급함도 함께.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아이들과 친정을 찾은 어느 날, 아이들은 내 어릴 적 일기장을 읽느라 신이 났다. 모아두니 꽤 여러 권이다. 부모님은 그때의 추억을 버리지 않고 잘 보관해 두셨다. 큰 딸이 읽어주는 내 일기에 가족이 모두 모였다. 어릴 때만 할 수 있는 유쾌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특히 짖궂었던 내 동생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나는 그때 동생을 '마음속에 악마 한 마리가 살고 있는 게 틀림없다'라고 표현했다. 그 소절에서 동생을 제외한 모든 가족은 박장대소를 했다. 동네 깡패에서 돈을 빼앗긴 날, 동생이 갑자기 사라져서 엄마와 여기저기 찾으러 돌아다닌 날, 오락실에서 신나게 오락을 한 날, 짝사랑했던 오빠에 관한 이야기 등 나의 성장이 담겨있었다. 지금은 잊었던 기억이 일기를 들쳐보고 다시 생각났다. 누렇게 바랜, 너덜 너덜한 공책 안에 나의 어린 시절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나의 일기는 중학교 때 끝이 났다. 중학교땐 일기 숙제가 없었지만 일기를 썼다. 그땐 혼자 품은 말이 많았을 것이다.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민이나 꿈의 이야기들 같은 거 말이다. 어른이 된 나는 그때 쓴 일기에 울고 웃는다. 힘든 날 쓴 일기를 보면 마음이 아팠다. 그때의 내가 안쓰러웠다. 지금의 내가 가서 꼭 안아주고 싶은 날도 많았다. 그리고 그 시절을 잘 견디고 보낸 내가 참 대견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일기가 없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남들 다 공부할 때 기타를 쳤고 그림을 그렸다. 공부는 제일 마지막 순위였다. 그때의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때 읽은 책은 무엇이고 친구와 무엇을 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록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었지만 또 가장 힘들고 우울했던 시간이었던 시절이다. 혹은 내 기억이 잘못되어 막상 일기를 보니 너무 밝고 순수했던 아이였구나.라고 새삼 느끼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개학 전에 몰아 쓴 일기처럼 고등학교때 기억나는 날을 일기로 한번 써봐야겠다. 개학은 없으니 조급함은 빼고 그때의 내가 했던 생각과 행동을 담백하게 담아내고 싶다.


나의 글쓰기의 시작은 일기다.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기록이 남아있고 중학교 때까지 썼으니 6년 정도가 된다. 어릴 땐 시를 많이 썼는데, 중학생 때의 내 일기는 글이 길어지고 공책엔 자물쇠를 채웠다. 그 당시에는 고역이었던 그 행위가 지금 나에게 큰 자산이 되었다. 미래의 나에게 이렇게 큰 행복이 될지 모르고 썼겠지만 고역을 견뎌낸 어린 나에게 고맙다. 한편으로 나의 자식들에게 일기를 쓰게 하지 못한 게 아쉽다. 그들도 그들이 지나온 시간을 기록해 두었다면 스스로 기쁨이 되었을 텐데 아이들에게 좋은 자산을 남길 기회를 만들어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다시 일기를 써보려 한다. 나의 가장 빛나고 찬란했던 그 시절의 일기는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나의 기록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어린 내가 다 큰 나에게 알려준 교훈이다. 지금의 일기는 할머니가 된 나를 기쁘게 할 것이다. 하루하루 나의 감정과 경험을 꾹꾹 눌러 담은 글 말이다. 그리고 나중에 매일매일 무료한 일상이 심심한 할머니가 된 나에게 선물로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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