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먹힐까 두려워 굴 속에 웅크리고 있던 두더지 한 마리가 굴 앞으로 나와 밝게 빛나는 해를 만났을 때, 두더지는 눈을 떴다. 마치 심봉사가 눈을 갑자기 번쩍 뜬것처럼 말이다. 아름다운 자연이 눈에 들어왔다. 수십 가지 색을 가진 햇살을 보았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개는 모두 행복해 보였다. 오직 굴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나만 행복하지 않았다. 두더지는 용기를 내 한 발짝 세상으로 발을 내디뎠다.
나는 한국에서도 러닝을 했다. 런데이 선생님의 말을 잘 듣는 훈련생이었다. 1분 뛰기부터 시작한 달리기는 30분을 넘게 쉬지 않고 뛸 수 있게 되었다. 런데이 선생님은 나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다. 숨이 턱밑까지 올라와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할 수 있어요!'
라고 응원해 줬다. 달리는 사람이 달리기를 시작하고 몇 분이 지나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연구한 게 틀림없다. 그만할까?라고 잠깐 생각했다가 선생님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든다. 그렇게 나는 선생님에게 의지하며 30분을 뛸 수 있는 사람으로 변했다. 30분을 페이스 6.5로 달리면 대충 5km 정도 달릴 수 있다. 나는 5km를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된 첫날, 스스로에게 무척 감격했다. 내가 무언가 또 해냈다. 나는 체력이 원체 약하다. 엄마를 쏙 닮았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는 걸 좋아했고 움직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를 낳고 너무 힘들어서 체력을 키워야겠다 마음을 먹고 수영과 필라테스를 몇 년 하고 나서부터 자신감이 생겼다. 운동을 꾸준히 하면 체력이 늘어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다 시작한 달리기도 그랬다. 한 여름 30도에도 달렸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한 여름 낮에 달린다고 하면 극구 말릴 것이다. 나는 이상한 오기가 있는데, 마음먹은 것을 어떻게 던 이어가려고 초반에 욕심을 내는 편이다. 그러다 큰 탈이 나기도 하지만 꾸준히 마음을 담아 오랜 기간 동안 한 행동은 애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애정이 생긴 행동은 더 오래 할 수 있다. 달리기도 그랬다.
뉴질랜드에 올 때도 러닝화를 챙겨 왔다. 한국에서부터 신었던 운동화다. 러닝화 교체주기가 대략 500km 정도 달렸을 때인데 조금 신다가 새 운동화로 바꿔야 했다.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달렸다. 그렇게 뉴질랜드에서의 러닝이 시작됐다.
집에서 5분 거리에 해변도 있었고, 긴 산책로도 있었다. 달릴 만한 장소는 많았다. 처음엔 산책로에서 뛰었다. 여름에 러닝을 시작했기 때문에 오후 7시 넘어야 나갔는데, 뛰고 나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초반엔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쓰러져 잤다. 슬슬 5km 달리기가 몸에 익고 러닝은 안정을 찾았다. 주 3회에서 많게는 5회까지 달렸다. 무릎이 쑤셔 며칠 쉬기도 했지만 꾸준히 러닝을 했다. 무릎 때문에 장소를 바다로 옮겼다. 단단한 모래 위를 달리는 건 아스팔트보다 힘들었다. 뉴질랜드는 날씨가 자주 바뀐다. 바다 바람이 강한 날엔 걷다시피 하면서 달렸다. 달리기를 통해 나는 매일 견디고 있었다. 인상적인 건 주말 아침에 달리기를 하러 나가면 만나는 사람들 모두 인사를 건넨다. 'Good Morning!' 한마디가 무거워진 다리에 힘을 다시 채워 넣는다. 그렇게 한 주, 한 주 달리기를 했다.
그러다 보니 살이 빠졌다. 무려 5kg이나 말이다. 러닝을 꾸준히 했지만, 달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뉴질랜드에 와서 만날 사람도 없고 식재료도 없으니 식사량이 많이 줄었다. 딱히 먹을 게 없는 날은 스파게티를 먹었다. 스파게티를 먹는 날이 많아졌다. 다행히 아이들은 스파게티를 좋아했다. 다만 토마토 스파게티를 더 좋아해서, 오일 스파게티를 좋아하는 나와 신경전을 가끔 했을 뿐이다. 딱히 살을 빼려고 한건 아니었다. 한국에서 장을 볼 때와 뉴질랜드에서 사는 식재료가 완전히 달라졌다. 고기와 와인이 싸고 그 외에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거나 비쌌다. 마트 식재료 중 딱히 손에 잡히는 게 없다. 매운 건 라면뿐이다. 마트에 갈 때마다 라면을 하나씩 장바구니에 넣었다. 그렇게 라면을 많이 먹었는데 딱히 살이 찌지 않았다. 라면을 자주 먹어도 살이 안 찔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달걀이 매우 비싼데, 달걀을 제일 많이 소비했다. 요리에 있어서 제일 만만한 재료가 달걀이다. 부쳐먹고 말아먹고 삶아 먹었다. 라면에 달걀을 넣고 끓여 다 먹은 후 남은 라면 국물에 달걀을 한 개 더 익혀 먹었다. 달걀 18개 들은 달걀이 한국돈으로 13000원 정도 했다. 우린 일주일에 두 판 이상을 먹었다. 단백질은 충분히 섭취했을 것이다.
한국음식이 무척 그리웠는데, 한국 식당에 가도, 한국 마트에서 장을 봐도 이상하게 한국에서 먹던 그 맛은 아니었다. 매일 투덜거리며 장을 보고 요리를 했다.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일 년 동안 대충 먹었다. 채소 배달을 시켰었는데, 처음 보는 채소들이 많았다. 채소들은 알록달록 예쁜 색에 모양도 예뻤다. 조리법을 찾아보고 내 마음대로 요리했다. 국물에 따뜻한 밥을 먹고 자란 한국 사람은 굽는 조리가 많은 서양식이 그리 입에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입에 맞지 않았다기보다는 한식이 그리웠다가 더 맞을 것 같다. 이런 날들이 이어졌고, 식사량이 줄었고 운동을 꾸준히 했더니 살이 빠졌다! 옆구리에 펄럭거리던 날개가 없어졌다. 배도 납작해졌다. 나는 한식을 잃고 날씬한 몸을 얻었다. 남편은 살 빠진 나를 보고 매우 걱정을 했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찼다. 몸이 가벼웠다. 다시 가벼워진 몸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아름다운 뉴질랜드의 풍경이 더 아름다워 보였다.
추운 겨울이 되고 그리운 한국에 다시 돌아왔다. 가족이 모두 모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평생을 살았던 곳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함을 안겨줬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사는 삶에 맞춰져 있었다. 이곳만이 나를 이해해 주는 곳이었고 안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웠던 사람들을 만났다. 돌아온 나를 반갑게 맞아주고 환영했다. 사람도 그대로였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 한국에 나는 다시 돌아왔다. 내가 없었던 동안 이곳은 그대로였고, 그래서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먹고 싶은 음식도 실컷 먹었다. 역시 한식이 최고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한 달 만에 다시 6kg이 쪘다.
사실은, 그렇게 큰 충격이 아니다. 한국에 오면 다시 살이 찔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한국에 오기 전 한 달 동안 금주를 했다. 뉴질랜드 와인은 싸고 맛있었지만, 인내했다. 사람을 만날 것이고, 음식을 먹게 되면 당연히 술 한잔도 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예상한 대로 상황은 흘러갔다. 그리고 살이 다시 쪘다.
그런데 조급하거나 초조하지 않다. 나는 지금도 일 년 동안 못 먹은 음식을 실컷 먹는다. 뉴질랜드로 다시 돌아가면 못 먹을 음식들이다. 나는 다시 외롭고 무미건조한 삶을 살 것이고 달리기를 할 것이다. 그것 밖에는 할 것이 없다. 작년엔 그랬다. 첫 해였고 타국에서 적응하느라 온 에너지를 다 써버렸다. 올해는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한국에서 먹는 음식은 이곳에서 밖에 먹을 수 없다. 그래서 실컷 옆구리 살을 찌우고 있다. 헐렁한 옷에 다시 내 몸이 맞춰졌다.
2주 후에 다시 뉴질랜드로 간다. 많은 생각이 든다. 오늘은 반건조 오징어를 구워 먹었다. 이렇게 맛있는걸 외국사람들은 왜 안 먹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빵에 잼 바른 샌드위치를 먹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외국인처럼, 내가 그리워하는 음식은 화려하거나 대단한 음식이라서가 아니다. 내가 그리워 하는 건 어린 시절 먹은 싸구려 알사탕이고, 방과 후 집에 가는 길에 산 컵에 담긴 포장마차 떡볶이다. 도대체 뉴질랜드 사람들을 뭘 먹고사는 거야!라고 외쳤지만, 그것은 뉴질랜드 음식을 탓하는 게 아니고 한국의 음식이 그리운 것임을 나는 안다.
옆구리 날개가 팔락팔락거린다. 그래도 행복하다. 내가 있을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 그들과 밥을 같이 먹는다.
인생이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다. 특히 옆구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