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파 VS 양식파

뉴질랜드에

by 게으른 곰

엄마는 음식을 정말 잘하셨다. '엄청나게 맛있다!'라는 느낌보다는 정갈한 음식을 만드셨다. 지금은 나이가 드셔서 요리하는 것을 힘들어하시지만 여전히 엄마의 음식은 맛있다. 엄마는 맛보다 건강이 일 순위였다. 학창 시절 나는 점심 도시락을 싸갔는데, 엄마는 햄이나 소시지같은 인스턴트 음식은 절대 싸주지 않으셨다. 친구와 반찬을 자주 바꿔먹은 기억이 난다. 건강 제일주의 엄마 밑에서 자라 서였을까. 나는 과자나 아이스크림, 튀김 같은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나를 친구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어쩌랴, 전혀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 것을. 대신 나는 밥에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밑반찬, 제육볶음, 달걀말이 등 엄마가 해주신 밥을 양껏 먹었다.


친구가 집에 놀러 온 어느 날, 엄마는 치킨을 집에서 해주셨다. 닭을 직접 튀기는 엄마의 모습에 친구들은 무척 놀라워했다. 소풍날엔 김밥과 직접 만드신 고로케를 도시락으로 싸주셨다. 항상 선생님 도시락까지 넉넉하게 들고 갔다. 엄마가 해주신 요리 중 제일 인상적이었던 음식은 1m 정도의 긴 나무 밀대로 얇게 핀 밀가루 반죽을 착착 접어 식칼로 석석 썰어만든 칼국수다. 나는 아직도 만드는 장면 하나하나가 기억이 난다. 우선 밀가루에 물을 넣고 이리저리 치대 동그랗게 만든다. 바닥에 밀가루를 뿌리고 밀대에도 밀가루를 묻힌다. 그리고 밀대로 둥근 밀가루 반죽을 펴나간다. 동그랗던 구 모양의 반죽은 점점 얇아지고 넓어진다. 나중엔 1m 밀대보다 더 커진다. 넓어진 반죽은 옷을 개듯 차곡차곡 접어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로 자른다. 그래서 칼국수다. 애호박을 잔뜩 넣고 간장 소스로 간을 맞춘 진한 엄마의 칼국수를 다시 먹을 수 있을까. 엄마에게 말하면 손을 절레절레 저으실 것 같다. 비가 오던 날 여러 가지 해물을 넣고 끓여주신 해물탕과 전기팬에 만든 술빵도 생각난다. 나는 엄마 음식 때문에 찐 한식파가 되었다.




아마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빠가 피자를 사 오신 적이 있다. 내 생일이었던 것 같다. 인생 첫 피자였다. 피자 위에 올려진 치즈, 피망, 올리브, 베이컨도 처음이다. 그리고 그것들로 만든 피자는 결국 버려졌다. 우리 가족 중 피자가 입에 맞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내 생에 처음 맛본 피자의 맛은 '몹쓸 맛'이었다. 이때 먹은 피자는 지금의 피자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중학교 때 시내에 생긴 피자집에서 다시 피자를 먹을 때까지 나에게 피자는 몹쓸 음식이었다. 나의 학창시절, 시내 곳곳에 새로운 음식점들이 생겼다. 특히 다른 나라 식당이 많이 생겼는데 햄버거 가게, 패밀리 레스토랑, 피자 가게, 스파게티 가게, 그리고 화려한 커튼과 레이스, 그리고 푹신한 소파가 있는 파르페 가게가 많았다. 높게 쌓인 아이스크림에 여러 가지 과자가 꽂힌 파르페는 생김새만으로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제는 피자와 스파게티, 햄버거는 한국에서도 평범한 메뉴가 됐다. 나는 피자와 스파게티, 햄버거를 자주 먹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한식파다. 나는 그동안 한국의 음식이 다양하고 맛있다고 "특별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한국의 음식이 맛없다는 뜻이 아니고 감사함을 몰랐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한국의 음식은 다양하고 맛있다. 다만 그 사실은 나에게 당연한 것이었다. 삼겹살과 김치만 있으면 수십 가지 요리를 할 수 있는 한국인으로 살다가 뉴질랜드로 이사를 오고 나서 깨달았다.


'한식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어.'


미리 말하겠다. 나는 뉴질랜드 음식을 비하하거나 한국 음식과 비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다만 나에게 뉴질랜드 음식은 충족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40년을 한국 음식을 먹고살았으니 당연하다. 반대로 뉴질랜드 사람이 한국에 가면, 한국 음식의 다양함에 일단 즐겁겠지만 그가 먹고 자란 음식이 그리울 것이다. 사실 나는 이렇게 한국 음식이 그리울 줄 몰랐다. 작년에 처음 뉴질랜드에 입국했을 때, 음식은 하나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다른 짐이 많기도 했지만 굳이 챙겨가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뉴질랜드도 마트가 있을 것이고, 그 나라의 식재료와 소스들로 대충 해 먹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뉴질랜드에서 스파게티, 스테이크, 샌드위치를 두 번씩 먹었을 때쯤 나는 한인마트에 갔다. 김치를 샀다. 한국에서 김치를 사 먹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엄마와 시어머니는 매년 감사하게도 김치를 보내주셨다. 나는 한인마트에서 산 소중한 김치 5kg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와 김치전을 부쳤다. 김치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요리는 100가지이다. 막걸리 대신 와인을 마셨지만, 그때 먹은 김치전은 내가 평생 먹은 어떤 전보다 맛있었다. 사람은 실수를 통해 성장한다. 이때의 교훈으로 올해 뉴질랜드에 들어왔을 때 큰 가방 한 개를 김치만 채워 가지고 왔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도대체 뭘 먹고사는 거야?'는 내가 일 년을 뉴질랜드에 살면서 많이 한 말 중에 하나다. 나는 아직 뉴질랜드에 산 지 일 년밖에 안 됐기 때문에 충분한 정보가 없다는 점을 먼저 짚고 넘어가자. 키위들은 아침엔 요거트와 오트밀, 혹은 시리얼을 먹고 점심은 샌드위치로 가볍게 먹는다. 그리고 저녁은 온 가족이 모여 고기를 굽고 샐러드나 사이드 디쉬를 곁들여 푸짐하게 먹는다고 들었다. 퇴근길에 식당에 들러 포장을 하기도 한다. 그중 피시앤칩스가 간편하게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흔한 메뉴 중 하나인데, 내가 가본 피시앤칩스 가게는 모두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운영했다. 뉴질랜드의 요리를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점이 나에겐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한식당을 차린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내 집 주변의 피시앤칩스 가게들 중 애국심을 제외하고 객관적인 판단으로 한국분이 운영하는 가게가 제일 맛있다. 뉴질랜드엔 초밥, 중국 식당, 카레 등 아시아 식당도 많다. 물론 한식집도 있다. 이민자가 많은 나라라 그런지 다양한 국적의 음식들이 있다. 이 점이 그나마 나를 위로해주고 있다. 나는 빵보다 밥이 좋다. 그다음은 면이다. 빵은 나에게 식사가 아니다. 샌드위치도 식사가 아니었는데 일 년을 뉴질랜드에서 지내고 나니 어느 정도 식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행인 점은 뉴질랜드에 살면서 나의 요리 실력이 늘었다는 점이다. 나는 요리에 흥미가 없었다. 스스로 요리를 잘한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엄마가 해주신 청국장, 된장, 고추장, 김치등을 사용하면 얼추 맛있는 요리가 되었다. 재료에 열만 가하는 수준으로 요리를 했다. 영양적으로는 괜찮으니 문제 될 건 없다. 그랬던 내가 눈대중으로 하는 요리가 많아졌다. 이건 요리의 고수들만 할 수 있는 고급 스킬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어느새 그렇게 요리를 하고 있었다. 대충 두 숟가락, 대충 쪼르륵, 대파가 없으면 릭(Leek:대파를 10배 확대시켜 놓은 듯 한 채소), 라면에 양배추 넣기 등 요리의 창의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제육볶음을 해도 레시피를 찾아봤다. 할 때마다 양념 만드는 법을 찾는다. 도통 외워지지가 않았다. 그런 내가 음식의 궁핍을 경험하고 요리 고수가 된 것이다. 사실 고수라고 하기엔 아직 맛은 보장하지 못하지만, 고수들이 사용하는 스킬을 나도 사용하고 있으니 고수라고 칭해주자. 이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예전엔 요리에 필요한 재료가 한 가지라도 없으면 그 요리를 포기했지만 지금은 내가 만들 요리 재료 중 3개가 없으면 4가지 다른 재료를 내 마음대로 넣는다. 그래서 실패할 때도 있지만 어찌 됐든 요리는 완성이 된다. 맛이 없으면 맛없게 먹으면 되고 다음엔 조금 다르게 만들면 된다. 요리의 범위가 확장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되니 부담도 많이 줄었다. 요리를 뚝딱 해내는 기분이다.


엄마의 요리로 글을 시작해 스스로를 요리의 고수라 마무리를 지었으니 갑자기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엄마의 요리 실력을 따라잡는다 생각하니 까마득하다. 엄마 요리가 왜 맛있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정말 정성으로 요리를 하셨다. 반죽을 직접 밀고 고기에 붙은 기름을 꼼꼼하게 모두 떼내셨다. 육수 위에 뜬 기름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제거했고 멸치의 머리와 똥은 모두 분리했다. 요리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미 요리에 정성을 쏟고 계셨던 것이다. 불 앞에서 무언가를 찌고 볶을 때만 요리가 아니다. 거실에서 티비를 틀어놓고 콩나물 머리와 꼬리를 떼는 그때부터가 요리의 시작이다. 그러니 나는 시작도 안 한 셈이다. 엄마의 요리 실력은 평생 따라잡지 못할 것 같다.


장담하건대, 한식은 조만간 세계로 뻗어나가 세상 사람 모두가 즐기는 음식이 될 것이다. 애국심 다 빼고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한식은 맛있다. 나의 객관성은 엄마의 음식을 먹고 자란 세월만큼 공정할 수 없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지만, 확실하다. 그들이 한식을 맛있게 먹어주길 바란다. 그래서 해외에 한식당이 더 많이 생기길 바란다. 그것은 나에게 아주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아니, 한국에서 엄마가 해준 밥을 먹어본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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