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집이 없다.

뉴질랜드에서

by 게으른 곰

참 희한하다. 아니, 다르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참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전세 개념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부동산 계약 중 하나다. 당연히 내가 살고 있는 뉴질랜드에도 전세계약은 없다. 반지하도 없다. 이곳의 대부분 주거 형태는 주택이고 월세가 비싸다. 그래서 혼자인 사람들은 집 하나를 셰어 하는 경우도 많다. 방을 렌트하는 것이다. 나는 뉴질랜드가 첫 해외살이였기 때문에 집 구하는 방법은 당연히 몰랐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통해 사진으로만 집을 보고 한국에서 계약을 했다. 그렇게 내가 지금 살게 된 이 집은 내가 이사오기 전에도 한국인 엄마가 아이와 살았던 집이다. 나는 이 집을 계약하고 그들이 쓰던 가구나 생필품들까지 모두 인수받았다. 이것들은 심지어 사진도 보지 않고 목록만 보고 돈을 이체했다. 막상 와서 보니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잡다한 물건들도 많았고 내가 이걸 그 돈을 주고 사다니! 하게 만드는 것도 있었다. 여하튼 이 집은 몇 년째 사람만 바뀌었고 대부분의 물건들은 그대로인 셈이다.


생각해 보면 모든 일들은 내가 한국에서 다른 사람을 통해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을 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무려 6주를 빈집으로 월세만 내다가 드디어 뉴질랜드로 들어와 입주를 했고 나는 지금 또 한 번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주인이 다시 들어오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계약기간이 끝나면 이사를 하려고 했다. 도로 바로 앞에 있는 이 집은 1층 주택이다. 방이 2개에 거실과 화장실, 그리고 부엌이 있고 주차장과 작은 텃밭이 있다. 집 구조상 도로에서 집 안이 훤히 보이기 때문에 종일 블라인드를 치고 살 수밖에 없다. 작년, 안 그래도 우중충한 뉴질랜드의 겨울을 블라인드 쳐진 집에서 보내고 난 뒤 나는 무조건 이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집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이곳에서 나의 인간관계는 0에 가깝기 때문에 내 의지로 어딘가를 가고자 해서 집을 떠나는 이유 말고는 집을 나갈 일이 별로 없다. 한겨울엔 비 오고 흐린 우중충한 날씨덕에 더욱더 감옥같이 느껴지는 이 집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어 한동안 도서관을 다녔다. 샌드위치를 싸서 하루는 도서관에 가고 하루는 바다에 가고 하루는 공원에 가면서 겨울을 버텼다. 그리고 여름이 시작되려고 하는 12월, 맑아진 하늘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에서 2달 정도 꿈같이 행복한 시간을 보낸 나는 다시 뉴질랜드로 왔다. 새 해가 다시 시작됐다. 올해의 가장 큰 행사는 이사다. 1년 전인 작년 3월에 부동산에서 이사를 나가지 않겠냐고 연락이 왔었다. 내가 계약을 한 지 3달이 조금 지났을 때고, 실제로 살기 시작한 지는 2달이 채 안 됐을 때였다. 너무 황당한 이야기에 거절을 했지만 집주인의 큰 그림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 집 계약을 12월 중순부터 시작했는데계약 만료가 1년 뒤인 12월이 아니고 그다음 해 3월까지로 되어있었다. 그러니 총 14개월 2주가 계약기간으로 되어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이때부터 집주인은 3월에 이사를 들어올 계획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사를 일찍 나가주면 고마운 것이고, 아니면 1년 뒤 3월에 들어오면 된다. 내 생각엔 다른 곳에 살고있는 집주인의 계약이 아마 3월에 종료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이사 가야 할 날도 3월이 된 것이다. 여기 계약은 종료 일정이 고정되어 있는 게 있고 고정되어 있지 않고 새로운 새 입자가 구해지면 조율을 통해 중간에 이사를 나갈 수 있는 계약이 있다. 나는 집주인의 스케줄에 맞춰 고정되어 있는 계약이었고 이게 나중에 후회로 돌아왔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 나라의 부동산 거래 시스템을 알지 못했고, 다른 사람을 통해 계약을 했다. 그래도 계약서를 제대로 확인했어야 했는데, 아무 정보가 없었던 나는 fixed라는 글을 보고도 별다른 의구심을 품지 못했다. 아는 게 없으면 궁금한 것도 없다. 나는 조금 더 열정적으로 궁금해했어야 했다. 계약기간이 12개월도 아니고 10개월도 아니고 14개월 2주인 것에 대해 의문을 품었어야 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사인 한 계약서가 있고 이제 나는 기가 막히게 딱 맞는 날짜와, 마음에 쏙 드는 구조를 가진, 같은 동네에 있는 집을 구해야 한다. 이럴 수가.


그러던 중 이웃 Nick이 이사를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집은 4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구조다. 다들 같은 입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서로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눈다. 한 번은 도둑이 옆집을 털려고 무려 대낮에 온 적이 있었는데, 도둑이라고 의심하지 않았던 내가 그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하는 것을 본 이웃이 경찰에 신고를 해준 덕분에, 나는 이번 연도 어느 날 경찰서를 한 번 다녀와야 한다. 그가 재판을 받는다고 한다. 이 이야기도 언제 다시 풀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닉네 집에 작년에 둘째가 태어났는데, 집이 좁아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갈 예정이라고 했다. 닉의 가족은 아내와 아들, 딸, 그리고 강아지를 키운다. 닉의 집은 우리 집과 비슷한 크기이고 뒷마당이 있다. 그리고 1층은 차고 겸 창고이고 2층이 집이다. 도로 바로 앞에 있는 집이기 때문에 이 구조가 더 마음에 들었다. 도로에서 더 안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창문을 열고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단 한 가지 걸리는 건 방이 2개라는 점이다.


우리는 세명이다. 나와 큰 딸, 작은 딸. 처음 집을 구할 땐 학교와 가깝다는 점 때문에 방 3개를 포기했다. 집을 구해주신 분이 이 집을 너무 강하게 추천하셨다. 우리 집에서 학교는 걸어서 5분이 걸린다. 살면서 이 부분은 점점 크게 와닿았다. 등교시간이나 하교 시간이면 버스에 학생들로 가득 차 탈 수 없을 정도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전교생이 2000명 정도 되는 큰 학교다. 그 아이들이 같이 등교하고 같이 하교하니 붐빌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리 집과 학교는 모두 같은 도로 앞에 위치해 있는데 그 도로는 2차선이다. 매일 차가 밀린다는 뜻이다. 비가 많이 오거나 다른 이유로 아이를 학교까지 데려다주지 않아도 되는 건 나에게 큰 이득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같은 방을 쓰는 게 당연히 싫었을 것이고 둘은 사소한 문제로 자주 다퉜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이사 갈 집은 무조건 방이 3개인 집으로 가리라 다짐을 했었다. 내가 아이들을 차로 태워다 줘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난관이 또 있다. 그건 바로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바로 이유다.


잠깐 뉴질랜드의 부동산 임대 거래 시스템을 소개하겠다. 한국은 몸이 안 좋으면 바로 병원에 가서 잠시 대기 후 진료를 받고 약을 받아올 수 있고, 내가 이사 가고 싶은 동네 부동산에 가서 임대를 내놓은 집들을 바로 보고 가격과 날짜가 맞으면 그 자리에서 계약까지 할 수 있다. 이 얼마나 간단하고 빠른 시스템인가. 그에 비해 뉴질랜드는 내가 아프면 일단 내 담당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예약을 해야 한다. 빠르면 며칠 내 예약이 될수도 있지만 한참 기다려야 될 경우도 있다. 그래서 어디가 부러지거나 극심한 고통이 아닌 이상 집에서 휴식을 취하다 스스로 회복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이 곳 슈퍼마켓 한 코너엔 상비약이 잔뜩 진열되어 있다. 자, 다시 부동산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내가 세입자고 이사 갈 집을 구한다고 가정했을 때, 나는 일단 인터넷에 나와 있는 빈 집을 찾아야 한다.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하면 연락처를 통해 날짜와 시간 예약을 하고 집을 볼 수 있다. 그 집으로 이사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10명이라고 했을 때, 10명은 집주인에게 나에 관한 정보를 서류로 보내야 한다. 무슨 일을 하는지, 수입은 어느 정도 되는지, 심지어 내가 무슨 차를 타는지도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나의 통장 잔고를 보내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서류를 작성할 때 추천인 2명을 써야 하는데 나같이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사람은 아무래도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1년 치 렌트비를 모두 입금하고 입주했다는 사례도 들어봤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전에 살던 집을 관리하는 부동산이나 집주인에게 연락해 내가 이 집에 사는 동안 렌트비가 밀린 적은 없는지, 살면서 큰 문제는 없었는지도 확인한다. 이런 절차를 거쳐 이 집을 원하는 10명의 사람 중 제일 마음에 드는 한 명과 계약을 한다. 나머지 9명은 다시 집을 구해야 한다. 이 절차를 또 반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뉴질랜드는 현재 집이 부족한 것 같다. 매일 부동산 거래 사이트를 들어가도 이 근처에 세입자를 구하는 집은 1-2개 밖에 없다. 여기저기에서 집을 많이 짓고 있는 것 같지만 단독 주택이 대부분인 이 나라는, 게다가 한국인보다 매우 느긋한 마음으로 살고 있는 이곳의 정서로는 내가 이사 갈 때에도 여전할 것 같아 걱정이 많았다.


나는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의 유튜브를 통해 이사의 어려움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어느 사람은 집만 20채를 넘게 봤는데도 집주인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게다가 3월까지가 계약이므로 한국에서 뉴질랜드로 돌아오자마자 2달 만에 위 과정을 거쳐 새 집을 구해 이사를 해야하는 막중한 책임을 떠안고 있었다. 그때 마침 닉이 이사를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사 가는 날짜가 2월이라고 했다. 닉네 집도 방이 2개였기 때문에 처음엔 시큰둥했다. 아이들의 싸움에 지쳐있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집을 계속 찾았다. 사실 그때는 이사 예정 한참 전이었기 때문에 그때 내가 본 빈 집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냥 남의 집 구경을 하면서 이 구조 괜찮겠다, 여긴 마당이 넓어서 좋다. 라며 감을 익히고 있었다. 그런데 매물이 너무 없다. 몇 달을 집 구경을 했는데 기껏 나오는 집은 많아야 5개 정도였고, 그마저도 금방 계약이 되는 것 같았다. 여기서 선택받지 못하면 옆동네나 윗동네, 혹은 아랫동네로 이사를 가야 할지도 모른다. 여기는 대중교통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 내가 아이들을 학교까지 태워다 주고 데리고 와야 하는 일이 생길 확률이 높다. 게다가 어느 집은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지만 어느 집은 사진으로 봐도 오래되고 낡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웃긴 게 이 시기는 이사갈 날이 앞으로도 한참 남았었던 때다. 나는 왜 내가 이사 갈 수 없는 집을 그렇게 구경했을까.


인간은 불확실한 것을 싫어한다. 나도 그렇다. 이사가 스트레스가 됐다. 이 동네에 집을 못 구하면 멀리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가만히 있지 못하게 했다. 여기는 학교와 걸어서 5분 거리고, 내가 좋아하는 빵집도 7분 거리고, 바다도 7분 거리다. 도서관이 있는 작은 번화가는 걸어서 20분이 걸리고 그곳엔 도서관과 식당들, 공원, 쇼핑센터가 있다. 반대쪽으로 걸어서 40분, 차로 15분 거리에는 오클랜드에서 제일 예쁜 마을인(이건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다.) 데본포트가 있다. 잔잔하지만 묵직하게 이사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던 어느 날, 내 상태를 알아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닉네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게 어떻겠냐고 한다. 기특한 녀석들, 아직 어린애 같지만 내면은 훌쩍 성숙해졌다. 나중에 들어보니 학교까지 걸어가는 게 좋다고 한다. 나이가 어려도 나에게 장점이 되는 게 무엇인지는 알 수 있다. 그다음은 수월했다. 닉에게 나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게다가 닉은 내 신분을 확인해 줄 사람으로 사용하라며 본인의 신상 정보를 적어줬다. 집주인은 집을 공개하지 않고 나에게만 먼저 지원서를 받았고 우린 계약을 진행했다. 불가피하게 이번에도 몇 주 내가 원하는 날짜보다 빨리 계약을 하게 됐지만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이사 스트레스는 단숨에 없어졌다. 나는 더 이상 인터넷 유랑을 하지 않아도 된다. 집을 보러 가고, 지원서를 내고, 글을 쓰고, 서류를 첨부하고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설명해야 하는 어렵고 힘든 일이 생략됐다. 야호!


닉이 살던 집은 우리 집보다 조금 더 큰 것 같고 넓은 뒷마당이 있다. 작은 테라스도 있어서 답답할 것 같지 않다. 늘 바라던 어딘가 쳐다볼 수 있는 장소가 생겼다는 게 정말 좋았다. 필요한 가구를 들여놓고 이사를 하면 된다. 모든 게 다 잘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사 시기가 다가오자 잊고 있었던 마지막 관문이 나타났다.

오늘,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관리하는 부동산에서 메일이 왔다. 아주 긴 장문의 메일이다. 그 내용은 내가 이사 가기 전 집을 어떻게 복구해놓아야 하는지에 대해 빼곡히 적혀있다. 환풍기 청소, 곰팡이 제거, 창고 상태, 찌든 때 제거, 그 외 모든 가전이나 가구의 상태 체크를 해야 한다고 적혀있었다. 나는 이제 천천히 이사를 진행하고 살던 집을 광이 나게 청소해야 한다. 전문 청소업체도 당연히 있다. 하지만 그리 크지 않은 집이라 내가 청소하기로 마음을 먹은 터다. 샤워실 타월걸이는 이미 떨어졌고 요즘 가스스토브도 불이 안 켜진다. 싱크대 주변 실리콘도 다 떨어졌다. 이걸 일단 부동산에 말을 해놓긴 했는데 어떻게 처리가 될지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해 봤다. 나는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을까. 이사는 한국에서도 사실 신경 쓰이는 일이다. 처리해야 할 일도 많고 바꿔야 할 시스템도 많다. 한국에서는 남편이 이사에 필요한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했다. 나는 집안 정리와 청소등을 맡았다. 이곳에서는 청소와 정리, 그리고 이사에 필요한 서류와 전기, 가스, 수도 및 인터넷 모두 내가 처리해야 한다. 게다가 옆집으로 이사라 따로 이사차나 사람을 부르지 않고 아이들과 짐을 하나씩 옮기기로 했다. 크거나 무거운 물건은 없지만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무엇보다 애들은 학교에 가고 내가 거의 모든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더 걱정이다. 나는 시작한 일은 끝장을 봐야 하는 몹쓸 성격을 가졌다. 아이들이 하교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지 못할 거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단독 주택이 대부분인 뉴질랜드에서 세입자의 의무와 집주인의 의무가 명확히 나누어져 있는 게 이해가 된다. 아파트가 아닌 이상 집은 관리하지 않으면 금세 낡고 허름해진다. 겨울엔 무척 습한 나라이기 때문에 습기 관리도 신경 써야 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집에 마당이 있기 때문에 잔디 관리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이사 가는 집은 집주인이 잔디 관리 해줄 사람을 주기적으로 보낸다고 한다. 물론 돈은 내가 낸다. 세입자의 의무다. 차라리 이 시스템이 낫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나는 뭐든 시작하려면 남들보다 두 세배의 시간과 노력이 든다. 소통이 잘 안 되니 이곳에서의 삶이 더 팍팍하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하다. 이사만 잘 마무리되면 조금 편안할 것 같은데, 과연 그날이 올까 싶다. 남편이 있었다면 이런 것쯤 아무것도 아니었을텐데, 의지할 수 있는 사람 한 명이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새삼 깨닫는다. 4월에 남편이 오기로 했는데, 그 때는 이사가 모두 끝났을 때니 남편에게 이야기보따리를 풀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다.


해외 살이 첫 이사가 코앞이다. 나는 원래 새로운 경험을 좋아한다. 작년부터 시작된 새로운 해외 살이는 그전에 느꼈던 새로운 경험에 비해 즐거움이 덜하다. 아마 새로운 경험 자체를 즐길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새로운 경험 속에서 탈이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지내고 있다. 새로운 것을 충분히 느끼기도 전에 걱정이 먼저 앞선다. 이사도 마찬가지다. 새집으로의 이사는 한국에서든, 뉴질랜드에서든 설렌 감정이 크다. 그런데 새 집에 대한 기대감이나 설렘보다 부동산 매니저와의 만남, 기존 집 복구 의무에 대한 부담감 등이 너무 크다. 내일은 바다로 산책을 나가야겠다. 한발 뒤로 물러서서 숨 한번 고르고 멀리서 이 상황을 지켜봐야겠다.

즐기자. 그리고 느끼고 생각하고 기억하자. 지나가 버리면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게 된다. 오늘은 이제 어제가 됐다. 그러니 내일이 오늘로 오기 전에 실컷 새로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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