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바나와 신해철

나는,

by 게으른 곰

학창 시절이 즐거웠던 이유 중 하나는 음악이었다. 나는 너바나(Nirvana)의 음악에 푹 빠졌다. 보컬인 커트(Kurt Cabain)가 꽤 호남이기도 했고 쟁쟁 거리는 기타 소리가 좋았다. 퇴폐적이고 반항적인 분위기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커트(1967~1994)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는데 그의 죽음을 전 세계가 오열했다. 내 친한 친구는 메탈리카 팬이었는데, 그땐 다름을 이해하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밴드가 최고라고 괜한 심통을 부렸던 것 같다. 둘의 음악은 전혀 달랐는데 말이다.


너바나를 좋아하던 시기엔 커트의 일대기, 커트 아내의 삶, 딸의 소식, 그들 음악의 세계, 그리고 커트 외 멤버들의 근황 등을 모두 꾀고 있었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잡지나 건너 건너 누군가의 입를 통해 귀동냥으로 듣는 게 다였다. 이 시기, 음악은 나에게 있어 매우 중요했다. 갑자기 기운 가정 형편에서의 도피처였고 공부하기 싫은 열등생의 반항이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어렵고 힘들 때마다 그의 음악을 들었고 그런 그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의 가장 유명한 노래인 'Smells like teen spirits'보다 'Lithum'을 좋아했는데, 조용하면서도 시끄럽고, 발랄하면서도 어딘가 슬픈 노래였기 때문이다. 노래 가사에 'I'm not gonna crack'이 반복되며 많이 나오는데, 그 가사에 내 마음을 다잡은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죽음 후에 이 노래를 다시 들었을 때, 그의 목소리는 마치 절규 같았다. 행복하지 않았던 그의 어린 시절이 그의 음악에 분명히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의 삶을 그는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조금 엉뚱하게도, 너바나 음악을 듣고 나는 뮤지션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루에도 마음이 열세 번씩 바뀌는 사춘기였다. 음악을 좋아하니 자연히 음악을 잘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하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기본 욕구 아닌가. 당장 밴드를 만들었고 나는 베이스 기타를 맡았다. 이때도 나는 마음먹은 것을 곧장 실행에 옮겼다. 연주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나는 베이스 기타가 제일 만만해 보였기 때문에 그것을 연주하기로 마음먹었다. 베이스 기타는 우습게 볼 악기가 아니었지만, 단순히 생각해야 뭐든 시작할 수 있는 법이다. 기타와 보컬까지 모집한 뒤 피아노를 잘 치던 친구를 꼬드겨 키보드를 억지로 맡게 했다. 친구는 록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정식 멤버 말고 객원 멤버 같은 포지션이었다. 그것은 서로에게 적절한 계약이었다. 드러머가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합주실도 빌렸고, 자주 모여 연주를 했었는데 드러머가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다른 밴드에서 드럼 파트를 부탁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애들 장난같이 음악을 즐겼고 나는 뮤지션이 되는 꿈을 꿨다. 밴드는 오래되지 않아 흐지부지 해체했고 나는 미술을 시작했다. 더 이상 악기는 연주하지 않았지만 그림을 그리며 매일 음악을 들었다.


커트가 첫사랑이라면 신해철은 인생의 동료다. 그의 음악은 가사가 좋았는데, 젊어서는 누구나 그렇듯 세상을 바꾸려는 혈기 왕성한 혁명가에서 점점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을 노래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가사를 썼다. 우리는 같이 나이 들고 있었다. 특유의 무겁고 중후한 목소리도 그의 매력 중 하나였다. 그가 라디오를 진행했을 때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들었고, 그가 라디오를 하차한다는 소리에 난생처음 라디오 방송국에 편지를 보냈다. 나는 그것이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태어나서 처음 어딘가에 사연을 보내는 나의 진심이 담긴 편지를 읽으면 그의 마음도 변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그는 내 편지를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니 편지의 존재도 몰랐을 테지. 그렇게 그는 라디오를 떠났지만 나는 음악으로 그와 계속 만났다. 30대를 지나 40대에도 우린 함께였다. 힘들고 지쳤을 때 유독 그의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속삭이듯 노래하는 그의 노래는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됐다. 첫 우리 집으로 이사했을 때, 집 페인트칠을 하면서 들었던 그의 노래가 기억난다. 우리집 이라는 설렘과 페인트 칠로 힘든 몸, 그리고 남편과 나눈 대화, 그리고 신해철의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내가 기억하는 좋은 기억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안타깝게도 내가 좋아하는 두 뮤지션 둘 다 고인이 되었지만 둘은 내 안에 있다. 둘은 음악 스타일도 전혀 다르고 추구하는 음악의 방향도 달랐지만 나에게 공통적으로 울림을 준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청소년기에 만난 커트와 어른이 되고 나서 더 좋아진 신해철의 음악은 아마 내가 노인이 되어도 들을 것 같다. 록 음악 듣는 할머니인 나를 생각하면 벌써 즐겁다. 둘 다 시끄럽다면 시끄러운 음악이지만 수천번을 들은 나의 귀는 그들의 음악이 시끄러움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꿈도 많고 반항심도 많았던 나의 청소년 시절과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첫 우리 집이 생겼을 때의 잔잔한 행복으로 남아있다. 소리나 냄새로 기억하는 것이 더 오래 남는다고 한다. 그들의 음악은 길게, 아주 길게 나에게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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