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들
2월 말,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아침 공기가 달라졌다. 나도 모르게 '어우, 춥네'하는 소리에 침대를 빠져나온다. 8시를 지나 9시면 다시 햇빛이 온 땅을 감싸고 다시 따뜻함이 밀려든다. 오후 1시면 '어우, 더워'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뜨거움의 절정은 오후 3시에 시작된다. 해가 땅 너머로 넘어가려는 5시쯤은 우리 집은 한증막이 된다. 큰 창이 서쪽을 향해 있는 집이다. 우리 집은 오후 5시에 에어컨을 켠다. 어둠이 깔리는 8시부터 긴팔을 챙겨 입는다. 뉴질랜드는 하루엔 4계절이 시간마다 찾아온다.
요즘 이사를 매일 하고 있는 중이다. 새 집은 아직 텅텅 비었다. 나는 아침마다 텅 빈 이곳으로 와 글을 쓴다. 소파도 없이 바닥에 앉아서 말이다. 살던 집 계약 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집의 계약이 시작됐다. 날짜 맞추기가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내린 결론이다. 덕분에 이사가 여유롭다. 조금씩 집을 옮기고 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Carly Simon의 All the Things you are가 스피커에서 나오고 있다. 조금 찬 바람이 집안을 훑고 떠난다. 매미 소리가 들린다.
매미가 여름의 막바지를 붙잡고 있다. 귀가 떨어질 만큼 크게 우는 매미 소리는 여름의 밝음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기타 소리와 얼핏 비슷하게 들려서 음악을 듣는 느낌이다. 나름 박자도 있고 '찌릉 찌릉' 울다가 '찌리리리리리' 변주도 한다. 음악도 계속 같은 연주가 반복되면 질리기 마련이다. 매미는 음악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울창한 숲 한가운데 누워있는 상상을 한다. 나무 잎을 통과한 점박이 햇살이 땅에 닿아있다. 매미의 연주는 솔로보다 합주일 때 더 듣기 좋다. 오케스트라가 딱이다. 그래서 매미들의 공연은 나무가 많은 숲에서 들어야 한다. 매미는 나무가 집이다. 땅 속 나무뿌리 근처에서 태어나 몇년을 어둠 속에서 지낸다. 이때 연주하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훌륭한 음악은 연습하지 않고 자연히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내의 시간을 노력으로 꽉 채운 뒤 세상밖으로 나온다. 뿌리를 타고 기둥으로 올라와 드디어 자유의 날개를 얻는다.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 다닌다. 그리고 연주한다. 그동안 연습한 악보를 까먹지 않고 매우 훌륭한 공연을 펼친다. 뜨거운 햇살이 연주에 맞장구 쳐준다. 바람도 같이 노래한다. 매미는 몇 년 동안 꿈꿔왔던 황홀한 연주를 완벽하게 마치고 죽는다.
학교에서 매미의 삶을 배우고 한동안 매미 소리가 다르게 들렸다.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슬플 뿐이다. 매미의 삶을 행복이나 불행으로 결론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보고 듣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아쉬운 것이고 우리가 보고 듣기에 좋기 때문에 그 짧음이 슬픈 것이다. 슬픔은 우리의 것이지 그들의 것이 아니다. 매미는 제 인생을 뜨겁게 살았고, 제 역할을 모두 다했다. 그런데도 오늘 아침 매미 소리가 구슬프다. 인간은 이렇게 어리석다. 매미처럼 인생을 열심히 살지도 못하는데 매미의 인생을 안타깝게 느끼고 있다. 내가 안타깝고 슬프게 느끼는 건 사실 매미의 인생이 아닐지도 모른다.
매미가 또 연주를 시작했다. 이번엔 세 마리다. 각자의 화음대로 연습한 음악을 들려준다. 몇 주 뒤엔 고요가 찾아오겠지만, 그들의 삶의 마지막에 세상에 두고 간 악보 덕분에 내년에도 연습을 마친 매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아, 여름이 좋은 이유는 참 많다. 그 여름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