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
벌써 세 번째 세탁기를 돌리고 있다. 여름옷을 제일 먼저 빨았고 다음은 침대에 사용할 담요, 그리고 지금 침대 매트리스 커버를 빨고 있다. 매트리스 커버 세탁이 끝나면 이불 빨래도 할 예정이다. 여름이 지나가고 있는 뉴질랜드라 가능하다. 오늘은 하루 종일 햇빛이 쨍쨍하다. 빨래를 5번 해도 다 마를 것 같다.
이사를 앞두고 해야 할 일이 많다. 짐 옮기는 건 너무 당연하고 빨래며 청소, 정리 정돈이 뒤를 따른다. 이번에 이사 갈 집은 바닥이 카펫인데, 카펫 있는 집은 한 번도 살아본 경험이 없어서 난관에 부딪혔다. 나는 이웃이 살던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가 이사를 간다는 얘기를 듣고 따로 부탁해서 그 집의 다음 세입자가 되었다. 뉴질랜드는 집 구하는 절차가 우리나라만큼 쉽지 않다. 게다가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집 매물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학교와 가까운 동네라 멀리 이사 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도 그렇고 나도 힘들어질 것이다. 그렇게 운 좋게 구한 새집은 작은 마당이 딸린 집인데 해가 많이 들어오는 게 마음에 들었다. 해도 잘 들고, 공기도 잘 통하고, 테라스도 있고, 마당도 있다. 학교는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한다. 어쩌면 방이 2개인 것 빼고는 완벽한 집이다. 그 완벽하게 잘 구한 집에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바로 카펫이다. 전에 살던 이웃이 실내에서 신발을 신고 생활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집을 계약하기 전 그의 집을 둘러본 나에게 이웃은 나가면서 카펫 청소를 하고 나갈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집 키를 받고 다음날 카펫 청소업체를 불러 스팀 살균 카펫 청소를 했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진공청소기를 돌렸는데, 세상에. 나는 경악했다. 먼지통에 먼지가 가득 모아져 있었다. 까맣고 작은 미세 먼지들이다. 원래 카펫이 이런 건가? 처음엔 의아함마저 생겼다. 이웃도 청소기를 한번 돌렸을 것이고 청소 업체도 불러 물 세척도 했다. 그런데 어떻게 저만큼의 먼지가 또 나올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 나는 요즘 틈 날 때마다 이사 갈 집 카펫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져있다.
집이 오래되어 낡고 허름한 것은 얼마든지 괜찮다. 이 집은 지은 지 오래되었는지, 문고리나 잠금 방식이 요즘에 보기 드문 모양새다. 팔각형의 금속 손잡이가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다른 운치로 느껴졌다. 천장이 높고 주방과 현관, 욕실은 나무 바닥이다. 연식이 꽤 돼 보이는데, 중후한 느낌이 좋다. 집 안엔 벽난로가 있는데, 사용하지 못하게 막아놨다. 요즘은 벽난로보다 더 간편한 난방 기구가 있는 세상이다.
모든 창문이 나무 프레임인데, 겨울에 추울 것 같지만 영하로는 내려가지 않는 날씨니 어찌 견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물론 한겨울이 되면 이중 창문이 있는 집을 그리워할 테지만 지금은 해 쨍쨍한 여름이니 일단 됐다. 오래된 세월을 집안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지만 나쁘지 않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다른 문화라 생각되어 나에겐 새롭게 느껴진다. 이렇게 좋은 다름이 있는가 하면 카펫은 아직도 골치다. 이웃이 한 번 우리 집에 들어온 적이 있는데 망설이지 않고 신발을 신고 들어왔다. 세탁기가 고장 나 새로운 세탁기를 배달해 준 키위도 신발을 신고 집안에 들어왔다. 버젓이 현관 매트가 문 앞에 있고, 신발이 현관 앞에 정리되어 있지만 그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 이웃이 두 번째로 우리 집을 방문했을 땐 신발을 벗었다. 가스스토브를 수리하러 오신 분은 처음부터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 신발끈이 야무지게 꽉 묶여있는 운동화를 신은 그는 신발끈을 하나하나 풀고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도구를 가지러 밖에 세워둔 차로 다시 가기 위해 신발을 구겨 신고 나갔다. 외국인들은 신발을 실내에서도 벗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발끈이 꽁꽁 묶여 있는 걸 종종 본다. 나는 신발을 살 때 신고 벗기 어려운 신발은 구입하지 않는다. 아마 많은 한국인들이 그럴 것이다. 꽉 묶은 신발끈을 풀고 신발을 벗고 들어와 주는 외국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는 다름을 이해해 주었다.
내가 지금 카펫과 씨름하고 있는 건 다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함이 아니다. 내가 살던 집은 마루 바닥이었는데, 겨울이 되자 온돌이 깔려있지 않은 마루 바닥은 카펫이 그리울 정도로 추웠다. 오클랜드의 겨울은 영하로는 내려가지 않지만 비와 바람이 많고 습하기 때문에 정말 춥다. 나는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외국 집 바닥이 왜 카펫인지 스스로 알게 되었다. 카펫이 깔린 집은 바닥이 그나마 차갑지 않으니 덜 춥다고 한다. 온돌이 없는 마루는 얼음판 같다. 맨질 맨질 차가운 마루대신 카펫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문화의 차이는 각 나라의 기후와 깊게 연관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재배할 수 있는 식재료를 바탕으로 음식이 다른 모습으로 발달했고 집 구조도 그렇다.
다시 카펫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이웃은 개를 키웠다. 집에서 개 냄새가 심하게 났다. 나도 개를 키웠었지만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느껴지는 냄새가 썩 좋지는 않았다. 공기 청정 스프레이 2통을 사다가 모두 뿌렸는데도 소용없었다. 청소기로 카펫을 벌써 5번 이상 빨아들였다. 먼지가 처음엔 엄청 나와서 기겁했지만 점점 빨려 올라오는 건 없다. 냄새는 카펫 그 자체에 배어있는 것 같다. 이걸 뜯어내 물로 빨 수도 없고, 이미 스팀 카펫 청소도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일 아침 새 집으로 출근해 모든 창문을 열어놓는 게 전부다. 다행히 창문도 많고 바람도 잘 통하는 집이라 환기를 시키면 냄새는 누그러들었다. 여름에 이사를 하게 되어 다행이다. 만약 겨울에 이사를 시작했으면 하루 종일 두꺼운 털옷을 입고 난로를 쬐며 환기를 시켰어야 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고 보면 운이 좋다. 이웃이 여름에 이사를 갔고 나도 계약 만료가 다가온다. 지금 살고 있는 집주인이 집으로 들어올 예정이라 연장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받은 상황이다. 사실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이사를 가려고 했었다. 도로가 바로 앞에 있는 집이라 하루종일 커튼을 내려놓고 살았다. 나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답답하지 않은 집을 원했다. 그 조건에 딱 맞는 집을 운 좋게 계약했는데 카펫이 속을 썩일 줄이야. 아는 분이 분말로 된 청소용품을 알려줬고 그걸 카펫에 몽땅 뿌렸다.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면 냄새가 싹 없어진다고 했다. 뿌려놓고 뿌려놓고 1시간 정도 후에 빨아들이면 된다고 했는데, 4시간 후에 청소를 했다. 진한 라벤더 향이 집안을 가득 메웠지만 라벤더 향 속에 아직 개 냄새가 남아있다. 절망적이다.
친절한 이웃은 나에게 좋은 집과 냄새를 남기고 떠났다. 아, 우편물과 은색 쟁반도 남기고 떠났다. 연락을 하니 물건을 찾으러 주말에 방문하겠다고 한다. 나에게 큰 숙제를 남기고 떠났지만 반갑게 맞이할 것이다. 살다 보면 냄새는 옅어지겠지. 두 집의 계약 기간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지는 않아서 당분간은 두 집 살림을 해야 한다. 오며 가며 살던 집과 새 집 청소를 해야겠다. 일단 카펫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