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사랑

by 게으른 곰

나는 자연을 사랑한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태어날 때부터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 자연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자연을 사랑한다. 따뜻한 햇살 아래 앉아 살금살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매미 소리를 듣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정확히 지금 내 상황이다. 테라스 의자에 앉아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아래, 살금살금 불어오는 바람이 조금 차게 느껴져 울 양말을 신고 두꺼운 겉옷을 입고 그늘에 앉아 있다. 따뜻한 커피 한잔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담장 덩굴 속 어딘가에 숨어있는 매미는 여름의 끝자락을 놓칠세라 귀가 찢어질 듯 크게 울어대고 있다. 지금은 오전이고 해는 나의 등뒤에 있어 집 그늘이 나를 덮고 있다. 조금 춥긴 하지만, 이만큼 완벽한 평화는 잘 찾아오지 않는다.


울타리를 덮은 담쟁이는 잎이 세 갈래로 갈라져있다. 바람이 찾을 때마다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것 같다. 마음속으로 나도 인사를 건넨다. 옆집 마당에 10미터도 넘어 보이는 야자나무가 우리 집 마당 울타리 바로 옆에 있다. 더운 나라에만 있는 줄 알았던 야자나무가 추운 겨울이 있는 뉴질랜드에서도 잘 큰다. 하긴 제주도에서도 꽤 많이 본 것 같다. 내 집에 있는 나무는 아니지만 키가 큰 야자수는 나에게도 기쁨을 나눠준다. 나는 지금 매우 평화롭고 자연 친화적인 공간에서 무척 행복하다. 몇 마리의 새가 왔다 간다. 잔디 속에 먹을 게 있는지 한참을 무전취식하더니 휘 가버린다. 꼭 두 마리씩 짝지어 다니는 새가 있는데 둘이 술래잡기를 한참 하더니 옆집으로 놀러 갔다. 조용한 마당엔 하루종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가만히 앉아있으면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평화롭다. 역시 자연이 가까운 삶은 좋다.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이 느껴진다. 저 멀리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이의 울음 옆에 있는 사람의 마음은 모르겠지만, 나에겐 그마저도 행복하게 들린다.


갑자기 이마가 간지럽다. 이런, 모기가 물고 갔나 보다. 조그맣게 부풀어 오른 이마를 긁으며 모기를 찾는다. 집 안도 아니니 찾아봤자 잡을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모기가 내 옆에 앉았다면 바로 손으로 탁! 잡았을 것이다. 다시 눈을 마당으로 돌리는 순간 파리가 내 커피 컵에 앉았다. 미간이 찌푸려진다. 손으로 파리를 쫓는다. 파리는 윙 날아올랐다가 내가 방심한 틈을 타 다시 내 컵에 앉는다. 파리도 커피가 필요한가 보다. 뭐, 그들도 피곤한 일이 있겠지. 그래도 파리와 컵을 공유하긴 싫다. 집안에 잇는 전기 파리채를 가지고 올까 잠깐 고민하다가, 엉덩이가 무거운 나는 다시 한번 손을 휘휘 젓는다. 하늘에 하얀 갈매기가 날아간다. 엄지손톱보다 더 큰 벌이 윙윙 꽃에서 꽃으로 움직인다.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물을 마시러 집안으로 들어갔다. 물을 따른 컵을 들고 창가로 간다. 순간 내 등뒤로 수많은 닭살이 솟아남을 느꼈다. 머리끝이 삐쭉 선다. 창 틀에 거미가 있다. 그것도 한 번도 보지 못한 크기다. 게다가 색이 검다. 하얗거나 갈색인 부분이 없고 색상 기호 #000000 인 완벽한 블랙이다. 거미도 나를 인식했는지 많은 움직임은 아니지만 움찔움찔한다. 그 거미가 돌변해 갑자기 창틀로 연결된 집안으로 들어오.... 는 상상을 했다. 등 뒤뿐만 아니라 온몸에 닭살이 올라왔다. 나는 허둥지둥 손에 잡히는 대로 무언가를 잡은 뒤 거미를 툭툭 쳤다. 거미는 놀래 벽돌 틈 구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큰일이다. 더 큰일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은 몇 배로 더 불안하다. 구멍을 바라봤지만 그늘로 안이 보이지 않았고, 게다가 거미도 검은색이라 전혀 보이지 않는다. 창틀은 바로 거실로 연결돼 있고 거미는 마음만 먹으면 집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잠갔다. 물론 거미는 닫힌 창문을 뚫고 집안으로 들어올 수 없을 거고 더더군다나 잠금쇠는 절대 열지 못하겠지만 그 행동은 내 마음에 위안을 준다. 다른 창문으로 갔다. 그곳엔 거미가 없다. 아, 문득 내 방 창문이 떠올랐다. 바깥쪽에 거미줄이 있었는데 손이 닿지 않아 그냥 내버려 뒀다. 호다닥 뛰어간 내 방 창문엔 아까 그 거미와 조금 다른, 갈색을 띤 거미가 있다. 아까 그 거미보다 작지만 이 거미도 꽤 크다. 다시 닭살이 올라왔다. 긴 막대를 찾았다. 가진 것 중 제일 긴 30cm 자를 손이 들고 거미를 툭툭 쳤다. 거미는 창틀 틈에 더 바짝 붙어 몸을 숙였다. 다시 툭툭 쳤다. 아까처럼 더 숨어 들어갈까 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이곳엔 틈이 없다. 거미는 계속되는 나의 공격에 할 수 없이 창문밖으로 호다닥 떠났다. 그리고 자를 이용해 거미줄을 모두 제거했다. 해충약도 뿌렸다. 당분간 거미는 내 창문에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집안 모든 창문을 점검했고 5마리의 거미를 내쫓았다.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햇빛, 잔디, 나무, 새, 벌, 나비, 바다, 바람을 사랑한다.

나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인가? 파리, 거미, 바퀴벌레, 모기, 새가 싼 똥은 사랑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날벌레를 무서워하거나 다리 많이 달린 돈벌레를 발견하고 소리를 지를 때마다 나는 '걔들은 너희가 더 무섭다. 그만 좀 해, 쟤들이 우리보다 이 집에 오래 살았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나도 깜짝 놀라지만 아이들에게 태연한 모습을 보이려 애쓴다. 내 세대보다 더 자연을 접하지 못하고 자란 세대다. 자연에 어우러져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다. 아이들이 학교 갔을 때 거미와 만나서 다행이다. 그들은 내가 당황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 저녁에 아이들에게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거미 얘기를 했다. 거미를 내쫓은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나에게 핀잔을 줬다.


'엄마, 우리보다 거미들이 먼저 이 집에 살았다고. 걔네들을 내쫓으면 어떻게 해, 걔들이 이 집 주인인데.'


이 집을 살다가 이사를 간 클로이가 거미 사진을 보고는, 'House friends!'라고 했다. 아, 내가 당당하게 외쳤던 자연 사랑은 이들에 비하면 절대 당당할 수 없구나. 나는 클로이에게 'House friends'를 모두 내쫓았다고, 조금 부끄러운 마음으로 답했다.


파리도 번식을 위해 알을 낳는다. 구더기는 나에게 혐오감을 준다. 너무 어려운 문제다. 아... 그래도 파리랑 구더기랑은 절대 한집에서 같이 못 살 것 같다.


나는 선택적으로 자연을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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