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는 아니지만, 어쨌든 심플 라이프.

by 게으른 곰

뉴질랜드에 살면서 두 가지가 사라졌다.



첫 번째, 남편.


혼자 뉴질랜드로 아이 둘을 데리고 오면서 남편 없이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나는 바보 멍청이다. 특히 세금이나 관공서 업무, 돈 계산, 기계 등에 약하다. 자연히 이런 일들은 남편이 맡게 됐는데 다행히 남편은 수학과 출신 프로그래머였다. 숫자에 편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계산이 빠르고 그런 일들을 처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남편의 능력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유용하게 쓰이는 반면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상을 좇으며 살았다. 세상 속의 정의를 찾느라 한두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고 옳고 그름의 수많은 기준 속에서 중심을 찾아 인생을 조금 더 행복하게 영위하고자 했다. 이렇게 현실적인 사람과 이상적인 사람이 만나 적절히 서로의 장점 속에서 균형을 맞추며 살고 있었다.


나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걱정을 많이 하지 않는다. 일단 시작해 보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고난과 역경을 부분을 몸으로 때운다. 미리 예상하고 계획했으면 훨씬 덜 힘들었을 테지만 미리 계획하고 예상하는 일은 나에게 어려운 일이다. 무슨 일이든 일단 시작하기 때문에 좋은 점도, 나쁜 점도 많다. 내 인생은 결정하고 행동하고의 반복이다. 남편 없이 사는 삶은 상상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각오는 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예상보다 훨씬 더 힘든 시간들을 몸과 마음으로 때우며 지내고 있다.


남편은 단순하고 자상한 사람이다. 늘 나를 배려해 주고 무거운 물건을 나르거나 힘든 일은 본인이 먼저 나선다. 그래서 나는 뉴질랜드에서 무거운 짐을 나르거나 무언가의 수리가 필요하거나, 잔디를 깎는 일 등이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과 다르게 뉴질랜드에서 제일 힘들었던 건 남편이 없는 집안의 공기였다. 아이들은 아빠의 부재를 느끼는지 안 느끼는지, 새 학교에 적응하고 영어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나만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밤, 둘째가 침대에서 작게 흐느끼며 아빠를 찾았을 때, 표현은 안 해도 모두 남편의 빈 공기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언제든 얼굴 보고 통화할 수 있는 시대에 살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남편이 회사 가기 전, 우리는 매일 얼굴을 보며 대화를 한다. 뉴질랜드로 오기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가 시차가 적기 때문인 것도 있는데, 3-4시간의 시차는 생각보다 컸다. (뉴질랜드는 summer time이 있어 9월-4월까지는 4시간 차이가 난다.) 이곳이 오후로 접어들 때 남편은 하루를 시작했고, 내가 잘 시간까지 남편은 회사에 있었다. 시차는 얼마 안 나지만 의외로 마음 편하게 통화할 수 있는 시간은 딱 그때뿐이다. 재미있는 건, 서로 애틋한 마음으로 대화를 하다가 어느 순간 뭐가 안 맞는 순간이 오면 여전히 싸운다는 것이다. 분명히 애틋함과 싸움은 별개다.




두 번째, 쾌락.


두 번째로 잃은 건 쾌락이다. 엄청나게 신나고 엄청나게 재미있는 순간들이 사라졌다. 나의 쾌락은 뒤돌아보니 의외로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다! 나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를 만나 서로의 안부로 시작한 대화는 각자의 삶의 고민과 공감으로 이어진다. 어느 날은 세상의 정의를 찾기도 하고 어느 철학자의 이야기에 심취하기도 한다. 정답도 없는 대화가 나는 그렇게 좋았다. 정답이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그것이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느꼈다. 어느 날은 방향을 잃은 허무함에, 어느 날은 기쁨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헤어졌다.

이게 전부다. 나는 취미도, 잘하는 것도 별로 없다. 책 만드는 일이 좋아 책을 만드는 일을 했고 평범한 성과를 만들었다. 성공하지도 못했고, 망하지도 않았다. 그저 소소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 둘려싸여서 말이다. 생각해보면 어릴 땐 가족과 함께였고, 어른이 돼서는 친구와 자취를 했으며,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가정을 꾸렸다. 지금껏 누군가와 함께 살아왔다. 지금도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 건 마찬가지지만 아이들과 대화를 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주제에 아이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 젊은 세대와 다른 시대를 살았으니 세상을 바라보는 방향이나 범위가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이들과의 대화는 학교 이야기, 숙제나 시험, 친구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아이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무척 행복한 일이지만, 나의 삶의 고민이나 하소연을 그들에게 할 수는 없다.


이곳엔 친구가 한 명도 없다. 남편도 없는데 친구도 없다. 처음엔 이 점이 매우 좋았다. 한국에서 사람을 만나느라 많은 시간을 쏟았기 때문에(특히 뉴질랜드로 오기 전 몇 달은 이별을 축하?하는 자리가 많아서 더 그랬다.) 혼자인 시간이 좋았다. 나는 지금 혼자 산책하고 혼자 달린다. 혼자 장을 보고 혼자 커피숍에 간다. 한국에서도 혼자 많은 일들을 했지만, 혼자해서 아쉽지는 않았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혼자다. 뉴질랜드에서의 혼자는 조금 다르다. 시간이 지날수록 외로움이 조금씩 커진다. 누구가와 시덥잖은 일상을 나누고 싶은 욕망이 생기기도 한다. 여기서는 혼자가 싫다고 혼자가 아닐 수는 없다. 다행인건 아직은 필연적 혼자임이 싫진 않다. 혼자를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됐다.


어쨌든, 이렇게 단조로운 삶을 살고 있다. 마트에 가는 날, 산책을 하는 날, 달리기를 하는 날처럼 조금씩 다를 뿐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책에서 배우고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혼자서도 살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외로움은 피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특별하게 의미 있는 일을 하거나 중요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그저 웃고 떠드는 시간들이 그들의 삶을 조금 더 주름 잡히게 한다. 여러 가지 모양의 주름 안쪽에 추억이 담기고 기쁨이나 행복, 슬픔이 자리 잡는다. 때때로 주름을 잡아당겨 그 속에 담긴 그때의 기억을 발견한다. 나는 지금 주름이 없는 평평한 삶을 사는 것 같다. 스트레스도 없고, 우울하지도 않다. 그리고 기쁨도 없다. 이 말이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다. 조금 건조한 삶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감정이 널뛰기하듯 오르락내리락할 일도 없고 큰 시련이나 힘든 일도 없다. 그냥 어제와 같은 오늘이 반복될 뿐이다. 주름 없이 평평한 날들 말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혼자 사색을 즐겨야지 어쩌겠는가. 지금 이곳에서 나와 같이 주름을 만들 사람을 찾는 것은 넓은 태평양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10년을 알고 지낸 친구와 지금도 싸우는데, 새로운 친구 만드는 일은 태평양 앞에 가기도 전에 벌써 지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외롭다. 하지만 그 외로움이 다른 형태의 주름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깊은 주름은 아닐 것이고 자글자글한 주름들이 많이 모이겠지. 그 주름 안에 어떤 것들이 담기게 될지는 이 시간이 끝나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놓인 선물을 뜯는 설레는 마음처럼 그 어느 날, 주름을 잡아당겨 열어봐야겠다.


남편도 없고 쾌락도 없다. 매일 비슷한 크기의 작은 행복을 느끼며 조금은 건조한 삶을 살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소중하고 의미 있지만, 한 사람의 인간으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행복은 없다. 오늘도 도시락을 싸고, 글을 쓰고 마트에 다녀오고 커피를 마셨다. 아이들이 돌아오면 저녁을 해 먹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잠자리에 들것이다. 어제와 비슷한 하루다. 다음 주도, 그다음 주도 마찬가지다. 이런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나는 조금 더 작은 행복을 찾게 될 것이다. 나비의 방문이나 흔들리는 나무의 움직임, 구름의 크기와 개수를 행복한 마음으로 보고 기억할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작업적 영감이 가득 채워져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뭔가를 잃었으면, 다른 것을 얻어야 균형이 맞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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