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게 없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매일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밥을 먹고 커피도 마시고 화장실도 간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설거지를 끝낸 뒤 노트북을 연다. 그렇게 벌써 한 시간이 흘렀다. 빤히 화면만 째려보고 있다. 머릿속에서 여기저기 흩어진 작은 조각들을 붙잡아 가만히 들여다보지만 영 끌리는 소재가 없다. 커피잔을 바라보다가 커피를 좋아하는 나에 대한 글을 쓸까 하다가 한 줄을 쓰고 지웠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커피에 대해 딱히 쓸게 없다. 커피는 어제도 좋아하고 오늘도 좋았다.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계속 좋을 것이다. 만약 커피가 내일 당장 사라진다면 커피에 관한 나의 열정적인 사랑을 글로 10장 정도 채울 수 있겠지. 오늘은 아니다.
매일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작년 12월 둘째 주부터 시작된 글쓰기는 주말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 다만 이사를 하느라 정신없이 보낸 이 주 정도, 그리고 이사의 여파로 할 일이 많았던 며칠, 그리고 코스트코를 다녀온 엊그제 정도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잘 써오고 있다. 벌써 네 달째라니. 시간은 참 빠르고 나는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속도로 늙고 있구나 싶다. 그동안 내 안에 있는 것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나왔다. 작년부터 뉴질랜드에 살기 시작했기 때문에 뉴질랜드에 관한 이야기가 제일 많고 그다음 나의 어린 시절,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관한 글이 많다. 거의 모든 글이 나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상의 지식과 이론에 관한 글은 거의 없다. 아는 것도 많지 않을뿐더러 아직 글쓰기가 쉽지 않은 초보인 나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게 제일 쉽고 즐겁다.
그렇게 네 달째에 접어선 오늘은 참 쓸게 없다. 같은 내용의 글을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몇 번 반복해서 쓰기도 했고, 내가 기억하는 굵은 이야기들은 모두 다 꺼냈다. 이제 창밖에 보이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같은 작고 평범하지만 그 안에서 보석을 발견하는 글을 써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문제는 내가 아직 그 보석을 찾는 길을 잘 모른다는데 있다. 오늘은 하늘이 온통 구름으로 뒤덮여있고 바람이 많이 분다. 가을로 접어선 뉴질랜드는 슬슬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겨울은 습하고 흐리고 비가 많이 온다. 내가 싫어하는 삼총사가 결합된 모습니다. 작년에 아무 대비 없이 맞이한 겨울 동안 무척 힘들었기 때문에 올해는 단단히 준비하고 있다. 준비라는 것은 첫째, 마음을 단단히 먹는 것과 둘째, 창이 많은 집으로 이사한 것, 그리고 한국에서 배로 보낸 발 워머가 곧 도착할 예정이다. 별거 없다. 작년 겨울은 너무 추웠는데, 제일 추웠던 곳이 발이다. 한국에서도 수족냉증인 이었는데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뉴질랜드의 겨울 동안 내 손과 발은 여전히 수족냉증을 앓았다. 어쨌든, 해가 도통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요즘은 글쓰기에 좋은 날씨일지도 모르겠으나, 한 시간이 넘도록 무엇에 대한 글을 쓸지 고민하다가 결국 쓸게 없다고 하소연을 하고 있다.
가야 할 방향과 노력할 부분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데, 나는 오늘도 게으르고 무지하며 이 모든 것을 낙관적인 태도로 감추고 있다. 해외에 거주하면서 책을 소지하는 게 쉽지 않아 이북 리더기까지 구입해 왔는데, 아직 한 권의 책도 다 읽지 못했다. 내가 구입하는 책의 소재는 철학, 인문학이 많은데 그렇기 때문에 각 잡고 앉아서 읽지 않으면 영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왜 그런지 나는 소설책엔 손이 가지 않는다. 우연히 소설책을 읽기 시작하면 하루 이틀 만에 모두 읽어버릴 정도로 재미를 느끼지만 왜 인문이나 철학에만 손이 가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채워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서 의무감에 구입하는 게 아닐까. 혹은 욕심만 많아서 궁금한 게 많은데 게으른 성격이 욕심을 따라가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옛날부터 지적 허영심이 많았던 것 같다. 읽지 않는 책을 참 많이 샀다. 더 이상 책꽂이에 꽂을 곳이 없어 바닥에 쌓여있는 책들은 아직도 한국에서 고스란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꽂을 데가 없는 책꽂이 걱정은 없어졌지만 사이버 공간 속 어딘가에 구입해 놓은 그 책들에게도 손을 내밀지 않고 있는 건 같다.
그래놓고 글감이 없다고 징징거리고 있다. 인풋이 없으면 아웃풋이 나오지 않는다. 무언가 내 속으로 들어와야 그것이 나의 무언가와 결합되어 다른 모습으로 세상으로 나오겠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글감이 없어서 시작한 하소연은 '독서'를 하지 않는 자기반성의 글이 되었다. 이름이 알려진 훌륭한 문장을 쓰는 작가들은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정답을 이미 알고 있지만 조금 더 빠르고 명확한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여기저기 기웃거려 본다. 작가의 인생을 열어보고, 작업하는 공간과 작업의 영감, 작가의 노력을 들여다본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역시 지름길은 없다.
한 시간을 넘게 빈 화면만 쳐다보다가 20분 만에 하소연을 썼다.
오늘도 참 게으르고 무지하고 낙관적인 나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