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창틀에 파리가 앉았다. 토실토실 살이 오를 대로 오른 파리다. 파리는 지금 고민 중이다. 자유로운 바깥세상으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집 안으로 들어와 편안한 삶을 살 것인가. 나는 한참 동안 파리를 바라봤다. 자유로운 인생과, 편안한 인생 중 한 가지를 고르는 것은 쉬이 결정할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의 고민의 무게만큼 긴 선택의 시간을 기다려주기로 했다.
파리는 날개를 움찔거리다가 뒷다리 한 개가 파르르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저녁으로 넘어가는 시간이라 서쪽으로 지는 햇살을 한껏 받고 있는 파리는 아름다운 광경에 잠깐 딴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나도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바깥세상은 살아있으며 축복받은 곳이다. 집안으로 들어올 것을 선택할 이유가 딱히 있어 보이지 않는다. 파리가 이 모든 아름다움을 버리고 집 안으로 들어올만한 장점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봤다.
나는 매일 요리를 한다. 잘하지는 못해도 아이들과 먹을 음식을 하루에 두 번 만든다. 아침에 만든 요리를 점심까지 먹고 저녁엔 새로운 요리를 한다. 내가 깨끗하게 주방을 치워도 파리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어딘가에 항상 존재할 것이다. 싱크대이든, 조리대 구석에 떨어진 빵조각이든, 운이 좋은 날엔 어딘가 흘린 고기 조각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파리의 수명은 20일에서 60일 사이로 알려져 있는데, 그동안 배불리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항상 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게다가 한국인이 사는 집이라면 금상첨화다. 빵과 시리얼보다 다양한 식사를 할 수 있지 않은가. 더욱이 나는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감자칩, 에너지바나 견과류, 과일, 젤리, 초콜릿, 빵이 떨어지지 않는다. 또, 추위를 잘 타는 나는 집안에 온기가 떠나지 않도록 항상 애쓰고 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엔 환기가 끝나자마자 창문을 닫고 겨울엔 히터로 집안을 훈훈하게 데운다. 어느 계절에 와도 파리가 살기엔 우리 집만큼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 거센 바람이 없는 집 안은 비행을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다.
반면에 밖은 위험하다. 보통 위험한 것이 아니다. 가을이 시작되고 있는 이곳은 밤이 되면 무척 춥다. 비가 수시로 오기 때문에 습하고 축축한 날씨가 이어진다. 매일매일 깊은 어둠과 춥고 습한 긴 밤을 견뎌내야 한다. 고슴도치, 포섬을 비롯해 거미, 각종 새들이 구석구석에 살고 있다. 저렇게 살이 통통하게 오른 파리라면 아마 반나절도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거미줄에 걸리거나 새에게 잡아먹힐 것이다. 그들은 주로 바닥에 떨어진 나무 열매를 먹고 가는데 육식이 당기는 날엔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파리가 제격이다.
집안에서 파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딱 한 가지다. 내 눈에 띄지 않는 것. 이것은 파리가 무상거주를 하는 조건으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약속이다. 몸집이 제법 큰 파리가 내 앞에 서성인다면 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운이 좋다면 어쩌다 내 눈에 띄어도 한 번에 죽임은 당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꽤 훌륭한 비행실력을 가졌다. 이 문제는 인간이 잠든 밤에 파리가 활동을 시작한다면 해결된다. 어딘가에 떨어져 있는 음식을 먹고 난 뒤는 자유시간이다. 그들이 무엇을 하고 싶을지는 잘 모르겠다. 파리 친구가 한 마리 더 있다면 좋을 것이다. 인간이든 파리에게든 친구는 필요한 법이다. 파리의 기준으로는 인간이 사는 집이 꽤 넓을 것이므로 나름의 여행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편안한 삶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매일 제공되는 다양한 음식 찌꺼기와 추위를 피할 수 있고 천적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는 조건은 꽤나 매력적이다. 수명만큼 살다 죽을 수 있다. 이곳은 천국이다. 어느 날 다른 파리가 들어올 수도 있으니, 외롭지도 않을 테다. 게다가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평생. 이것만큼 좋은 조건이 있을까?
장점을 길게 늘어놨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결국 집안에 갇혀 자유를 잃은 파리에게 남은 건 역시 죽음뿐이다. 파리는 한정적인 세상을 자위하다가 죽게 될 것이다. 새로운 것을 접할 확률이 적기 때문에 삶의 즐거움도 없을 것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따뜻한 바람을 타고 높은 하늘로 솟아올라야 할 텐데, 집이라 함은 어떤 모양이든 천장이 있기 마련이다. 평수가 다르겠지만 올라갈 수 있는 높이는 한정되어 있다. 편안한 삶을 택한 대가로 끝없는 뫼비우스 띠 위를 날다가 죽게 될 것이다. 과연 파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내가 파리라면 어디로 갈 것인가. 밖인가, 안인가.
드디어 파리가 날개를 움찔거린다. 내 눈썹도 같이 움찔거린다. 나는 알아챘다. 드디어 선택의 순간이다. 파리의 엉덩이가 씰룩거리다가 날개를 푸드덕 거리며 밖으로 높이 높이 날아갔다.
휴, 나는 전기 파리채를 움켜쥔 손가락에 힘을 뺐다.
불필요한 살생을 하지 않았다. 다행이다. 평화로운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