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는 요즘 불안을 자주 느낀다. 불안은 머리가 엉클어진 듯 복잡하며 초조함과 조급한 마음을 동반한다. 실체가 없는 불안은, 그렇기 때문에 해결 방법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나는 현재 남편과 떨어져 살고 있다. 결혼을 하고 한 번도 부부가 떨어져 살게 될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우리가 결정한 일이니 남 탓 할 것도 없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하고 결정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도 준비되지 않은 헤어짐이 조금 당혹스러웠던 것 같다. 우리는 공항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펑펑 울며 헤어졌고 나와 아이들은 뉴질랜드로 왔다. 아이들도 아빠의 부재가 슬프고 힘들겠지만 엄마가 함께 있으니 한편으로 위안을 받을 것이다. 문제는 나다. 나는 어른이 된 지 한참 지났고, 남편 없이 시작된 삶을 잘 꾸려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인생을 살면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잘 흘려보냈다. 이사도 몇 번 했고, 애들 학교 일이나 나의 작업도 모두 잘해왔다. 관공서에서 내가 필요한 서류를 요구하거나 제출할 수 있고 몸이 안 좋을 땐 의사에게 나의 몸 상태를 설명하고 적절한 처방을 받았다. 당연하다. 나는 이미 40이 넘은 나이다. 어른이 된 지 20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이 세상을 사는 방법을 거의 배웠다.
뉴질랜드에 살기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이 아름다운 뉴질랜드에서 내가 엄청나게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남편과 언어, 딱 2가지다. 뉴질랜드는 매우 평화로운 나라다. 사람들은 대게 친절하다. 날씨가 좋으면 '이곳이 바로 천국인가'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아름답다. 물론 겨울에 비가 많이 오고 습하기 때문에 곰팡이와 전쟁을 치러야 하지만 말이다. (뉴질랜드는 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여름의 막바지라 멀리서 들리는 매미 소리에 행복한 감정이 느껴져서인지, 지금 마음으로는 겨울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작년 겨울에 춥고 외롭고 힘들었던 기억이 슬쩍 떠오르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뉴질랜드의 여름은 작년의 겨울을 잊게 만들 만한 매력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2.7배 넓은 땅을 가진 뉴질랜드의 인구는 우리나라 인구의 1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어딜 가나 사람이 북적거리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길을 걷는 사람은 더욱 보기 힘들다. 과장을 조금 보태 길에서 만나는 80%는 러닝 하는 사람들이고 20%는 주차된 차로 가는 사람들이다. 뉴질랜드의 모든 길은 내 차지다. 천천히 걸으며 예쁜 경치를 감상하는 게 취미가 됐다. 겨울은 비가 자주 오고 흐린 날이 많기 때문에 나의 유일한 해방구인 걷기를 자주 할 수 없다. 그래서 유난히 남편이 많이 보고 싶었다.
남편은 매사에 긍정적이다. 가끔은 끝도 없는 긍정이 아무것에도 진심이지 않은 것 같이 비칠 때가 있을 만큼 밝은 사람이다. 나는 결혼 생활 내내 힘들고 어려운 지점을 남편의 응원 덕분에 덜 힘들게 지나왔다. 남편은 이 세상 모두가 나에게 잘못됐다고 말할 때 유일하게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이다. 나의 우주에 떠있는 작은 태양처럼 늘 그 자리에 있었던 남편이 사라지니 나의 뉴질랜드 일상은 조용하고 고요해졌다. 다행히 과학이 발달된 세상을 사는 세대라 인터넷이 우리의 먼 간격을 어느 정도 좁혀주고는 있지만 살갗을 맞대며 사는 것과 떨어져 사는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일 년에 두 번 남편은 뉴질랜드로 오고 우리는 여름방학 2달 동안 한국에서 함께 지낸다. 그럼에도 남편이 가지고 있는 가족 안에서의 공간은 채워지지 않았다. 남편의 공간은 우리 가족을 감싸 안은 울타리다. 우리에게 안정을 주었던 울타리가 없으니 불안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남편이 비운 자리는 모두 내가 채워야 했고 작은 고비를 넘길 때마다 남편을 생각났다. 15년 동안 남편이 해온 일들이 많았다. 남편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여보는 신경 쓰지 마. 내가 알아서 할게.'
이다. 이 말의 무게를 이제야 느낀다. 나는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스스로 모든 걸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부분이 남편 덕에 그렇게 느껴졌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에 이사를 했는데 가구를 옮기거나 물건을 나르는 등의 힘쓰는 일 말고도 처리해야 할 일들이 꽤 많았다. 양쪽 집 청소와 부동산 업무, 아이들 공부와 식사, 스토브 고장으로 수리 신청, 버려야 할 쓰레기 정리, 필요한 가구 구입, 이사 갈 집 사이즈 재기, 이웃이 놓고 간 짐 연락하기 등 소소하지만 할 일 들로 꽉 찬 몇 주를 보냈다. 아직 짐도 다 못 옮겼고 옮겨 놓은 짐은 하나도 풀지 못했다. 그런데 몇 주 동안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었던 정체 모를 불안이 조금 사라졌다. 아직 이사 중간이기 때문에 완전한 안정은 다시 마음에 고요가 찾아왔다. 나도 드디어 키 작은 울타리를 두세 개 세운 것 같은 느낌이다.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고 그동안 나를 꽉 붙들고 있던 불안을 다시 생각해 봤다. 불안은 불확실에서 오는 것이 틀림없다. 나의 뉴질랜드 생활은 확실한 일 반, 불확실한 일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슈퍼에서 장을 보고 밥을 해 먹는 일, 산책을 가고 운동을 하는 일,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나의 업무에 관련된 일은 확실한 일이다. 이 일을 하는 동안은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반면 부동산과 이사 문제로 답변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 스토브가 작동하지 않아 수리업체를 불러야 하는 상황, 가스 계약 종료 시 환불이 되는 부분 체크, 전기, 인터넷, 가스의 주소 이전 업무 등 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나 전문 용어로 된 영어를 많이 사용해야 하는 일, 업무 처리를 위해 누군가와 만나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하는 일, 우리나라와 다른 문화 등은 나에게 불안을 가지고 온다. 무슨 일을 해결하기 위해 답을 기다리고 있을 때 나의 마음 아래엔 불안이 얇게 깔려있다. 불안은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상황일 때 생긴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집 구할 때나 가는 곳이었다면 뉴질랜드는 집의 하자와 부품 교환 및 집에 관련된 모든 상황을 부동산과 상의해야 한다. 내가 뉴질랜드에 온 첫 해기 때문에 나는 부동산 관리인을 더 귀찮게 했을 것이다. 남편이 있었다면 뚝딱 5분 만에 해결됐을 여러 가지 문제들 때문에 나는 늘 끙끙대야 했다. 상황을 알면 불안은 적어진다. 나라마다 업무 처리의 방식이나 소요되는 시간 등 모든 것이 다른데, 한국과 비슷한 과정과 결과를 예상했다가 전혀 다르게 진행이 되어 당황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니 이제 작은 울타리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 남편도 오랜 시간 동안 넘어지고 부딪치면서 높고 튼튼한 울타리를 올렸을 것이다.
인생은 쉼 없이 흘러간다. 우리가 떨어져 살고 있는 오늘도 우리의 인생이다. 내가 나의 인생을 선택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은 나의 예상과 정반대로 흘러가는 인생의 순간도 있을 것이다. 선택한 그 시간 속에도 무수히 많은 인내와 고뇌와 불안이 있다. 아직 남편만큼 성숙한 사람이 아니라 아이들이 가끔 나의 불안을 눈치챈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수 없이 많은 불안을 숨기고 묵묵히 그것을 품었을 남편을 생각하며 불안을 감추는 연습을 한다. 이제 곧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다. 아직 텅 비고 정리 안 된 새 집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다. 한번 마음을 털어냈으니 아이들에게 미소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저녁은 스파게티를 해야겠다. 아이들은 토마토 스파게티를 좋아한다. 나는 토마토 스파게티보다 오일 스파게티를 좋아하지만 이것도 인내해야 하는 부분 중에 하나다. 아이들도 언젠가 오일 스파게티를 좋아하는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