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이야기
“그곳에서 살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나의 친애하는 집에게>에서 하재영 작가는 이렇게 썼다. 삶의 배경이 되는 집은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안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이 한 사람의 취향을 쌓고 세계관의 토대를 만들기도 하니까. 우리의 정체성에는 집이 만들어 놓은 자리가 있다.
내게도 그런 곳이 있을까. 그곳에 살지 않았다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집이. 엄밀히 말하자면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결혼 전까지 살았던 중곡동 집들이다. 결혼하고 신혼집으로 구했던 빌라를 제외하고 주욱 아파트에서 살았으니까. 아파트는 내게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아닌 것 같다. ‘집’이라는 단어가 지니고 있는 의미는 다양하고 개인마다 해석도 다를 테지만, 내게 집은 땅 위에 맞닿아 있고 천정 위로 하늘이 펼쳐지는 곳이다. 현관 밖에는 작더라도 마당이 있고 꽃나무를 기를 수 있는 곳, 그리고 대문을 열면 골목으로 한없이 연장될 수 있는 곳. 한 가족의 고유한 생활 방식과 가치관이 담기는 곳을 집이라고 생각하는 내게, 아파트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있다.
제목은 생각나지 않는데 가끔 또렷하게 떠오르는 영화의 첫 장면이 있다. 늦은 오후, 햇살이 공기 중에 한 겹을 드리우며 쏟아지는 거실이 등장한다. 80년대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단층집, 마루 바닥은 오래되어 색이 짙어졌고 반질반질 윤이 난다. 마당을 향해 난 전면 창은 나무틀로 감싸여 있다. 러닝셔츠 차림의 중년 남성이 활짝 열린 창문 턱에 걸터앉아 마당을 바라보고 있다. 빛이 번져 실내의 많은 것이 지워진 대신 나무 바닥과 창틀, 러닝셔츠 차림의 구부정한 뒷모습이 선명하게 남겨진 곳. 그 장면은 내 유년으로 들어가는 기억의 열쇠처럼 작동했다. 그곳에 나의 첫번째 집이 있었다.
기억 속 첫 번째 집은 마당이 딸린 이층 양옥집이다. 골목으로 난 초록색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양 옆으로 나무들이 줄지어 선 좁다란 오솔길이 있었고 그 길을 지나야 네모난 마당과 집이 나오는 형태였다. 길가에 면한 옆집의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값으로 따지자면 가치가 쳐지는 집이었다. 하지만 그 덕에 오솔길을 따라 걷는 재미와 골목에서 떨어진 아늑함을 누릴 수 있었다. 마당에는 여러 가지 나무가 있어 철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달렸다. 봄에는 딸기를 땄고 여름이 다가오면 포도나무에 연둣빛으로 포도송이가 맺혔다. 앵두나무에 달린 앙증맞은 열매는 서서히 빨갛게 색이 변해갔다. 사과였는지, 이제는 기억도 아리송한 나무에는 하얀 꽃이 피었고, 가을이면 감나무에 탐스러운 감이 열렸다.
거실엔 바둑판무늬로 네모난 나무 바닥이 깔려 있었고 천정 또한 양각의 나무로 마감되어 있었다. 패브릭 소파와 한쪽 벽에 붙박이로 설치된 책장, 피아노가 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땐 실내용 그네가 놓였고, 겨울엔 연탄난로를 두기도 했다. 텔레비전과 모서리 장 등 몇몇 가구들이 거쳐갔던 기억이 난다. 그 집에 사는 동안 변함없이 자리를 지켰던 것은 소파와 책장, 피아노다. 초록색에 붉은 꽃이 그려진 트위드 재질의 패브릭 소파와 꽃무늬 커튼, 코바늘 뜨기로 만든 레이스 커버는 나의 인테리어 취향의 바탕이 되었고 붙박이 책장과 피아노는 독서와 음악으로 내 삶의 중심을 형성했다. 주말이면 나와 언니를 서점에 데리고 가 직접 책을 고르게 했던 아빠의 관심 덕분일 수도 있지만 책 읽는 습관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집안에 늘 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름밤이면 골목이 어둑어둑 해지고도 밥 먹으러 들어오라는 부름이 있을 때까지 집 앞에서 고무줄놀이를 했다. 엄마 심부름으로 골목을 내달려 큰길 못 미쳐 있던 슈퍼에서 커다란 수박을 사서는 두 팔로 끌어안고 오던 밤은 이상하게도 아련하다. 시장 가는 엄마를 따라나섰다 엄마가 마당의 꽃나무에 물을 주는 사이 모르는 남자애를 쫓아가 지갑을 빼앗겼던 일은 아직도 아찔하게 떠오르고. 집 앞 골목은 놀이하는 아이들로 늘 북새통이었다. 놀이터가 따로 없던 시절, 아이들은 어디서든 뛰어놀았고 골목은 늘 왁자지껄했다.
출근하는 아빠를 현관에서 배웅하고도 아쉬움에 쫓아 나가 대문을 열어 보면 골목은 늘 텅 비어 있었다. 어린 내 눈엔 까마득히 멀어 보이는 길 모퉁이를 아빠는 이미 돌아서 버리고 없었다. 그럴 때면 아빠의 걸음은 얼마나 빠른 건지, 아빠에게 초능력 같은 게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키가 자란 후 우연히 다시 동네에 들렀을 때 내 믿음이 얼마나 허황되었는지 확인하게 되었다. 내가 커진 만큼 세계는 한없이 작아져 있었다. 작아지면서 초라해져 버렸다. 초록색 철제 대문은 낡아서 녹슬고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었고 넓은 대로라고 여겼던 길은 그야말로 좁고 짧은 골목길에 불과했다. 완벽하다고 느꼈던 한 세계가 아주 작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거기 있었다. 하지만 기억 속에서 만은 영원했다. 시간의 빛에 퇴색되지 않았고 유일하고 고유한 곳으로, 언제든 돌아가고 싶은 곳으로 낡지도 않은 채 남겨졌다.
그 집을 떠나 한 번 이사를 했다. 두 번째 집도 마당이 있는 양옥집이었지만 예전보다 마당이 작았다. 그리고 고등학교 들어가던 해에 다세대주택으로 새로 지어졌다. 결혼하고 구한 신혼집은 친정 근처에 있던 방 두 개 짜리 빌라였고, 이후로는 아파트에서 살았다. 처음 아파트로 이사가 살던 때가 생각난다. 막 이사해 집이 낯선 즈음 퇴근 후 아파트 입구를 들어서며 혼자 눈물을 떨구었던 기억이 있다. 한 번도 아파트에서 살아본 적 없는 내게 커다랗고 하얀 건물은 전혀 집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똑같이 생긴 공간이 층층이 포개진 시멘트 덩어리. 깨끗한 현대식 빌딩이 지닌 차갑고 건조한 인상은 나와 집 사이 단절감을 불러일으켰다.
“인생이 어떤 토대 위에 서 있다면, 인생이 우리가 계속 채워 가는 그릇이라면, 그렇다면 내 그릇은 의심할 바 없이 이 기억 위에 서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지난날의 스케치:버지니아 울프의 회고록>에서 가만히 누워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자기의 존재를 감지했던 최초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내게도 나라는 존재를 알아챘던 처음의 기억이 있다. 떠들썩하던 골목에 괴괴한 햇빛만 고여있던 날, 아무도 없는 마당에서 혼자 흙을 파며 쪼그려 앉아 있던 순간, 내 곁에 나란히 앉아 있던 어떤 시선을 의식했으니. 나와 주고받는 혼잣말도 유년의 집에서 시작되었으니 나라는 세계가 열린 지점도 바로 그곳일 것이다.
인생이 어떤 토대 위에 서 있고 계속 채워 가야 하는 그릇이라면, 내 그릇은 의심할 바 없이 초록색 대문의 이층 집 위에 있다. 살았던 집이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채웠고 살고 싶은 집의 밑그림이 되었다. 처음의 집은 영원한 집이 되어 나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나의 마지막 집은 인생의 처음을 열어주었던 유년의 집을 닮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