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작은 가게

공간 이야기

by 춤추는바람



작은 가게(느린산책)를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이전 직장 상사분이 들른 적이 있다. 지나는 길에 잠시 들렀다고 하면서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꿈을 이뤘네요.” 회사를 다니며 베이킹과 커피, 꽃을 배웠던 나는 언젠가 작은 가게를 열고 싶다고 사람들에게 말했던 것 같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꿈이었다. 가게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잊고 있었는데 어느새 꿈이 이루어져 있었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마음에 드는 공간이 눈에 들어오면 걸음을 멈추고 살펴보는 게 내 주된 일과였다. 카페나 상점에 가서도 그곳만의 특색을 찾기 바빴다. 그러다 나만의 가게를 내자고 마음먹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바로 가게를 내지는 못했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변수가 생겼기 때문이다. 아이가 너무 어릴 땐 외출조차 쉽지 않아서 걸음마를 시작하고 말문이 트이면서 내가 꾸민 공간에서 나만의 일을 시작하고 싶다는 꿈을 다시 꾸게 되었다. 동네를 지나다 공사하는 곳이 보이거나 공간이 좋아 보이는 가게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기웃거렸다. 급기야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가게 자리를 알아볼 즈음 이전에 눈여겨보았던 골목에 카페 자리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느린산책'은 그렇게 우연인 듯 필연적으로 시작되었다.



마음에 드는 공간을 만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공간도 공간이지만 세가 문제였다. 혼자 운영할 생각이었으니 부담이 적어야 했는데 세가 낮은 자리는 수도 시설이 없다던지 환기가 잘 안 되는 등 문제가 있었다. 크기가 너무 작은 공간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답답해질 것 같아 선뜻 마음이 동하지 않았고. 이러저러한 조건을 따지며 몇 개의 공간을 고사한 후 그 카페 자리를 만나게 되었다.



정해두었던 기준보다 월세가 높았지만 공간이 넓고 반듯했다. 집기를 거둬내고 페인트칠을 다시 하면 하얗고 깨끗한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부에 화장실이 있고 수도 시설도 갖춰져 있었다. 이미 카페로 영업을 했던 곳이기에 베이킹을 하는 공간으로 변경하는 데에 문제가 없었다. 무엇보다 위치가 마음에 들었다. 초등학교의 후문을 마주하고 있는 골목은 너무 좁지도 넓지도 않아 적당히 한적했다. 가게라면 사람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 잘 보이는 위치가 좋을 테지만 은둔형 기질이 있는 내겐 적당히 눈에 띄지 않고 숨어 있는 공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좁은 골목과 이어지는 모퉁이에 있는 자리라 묘하게 방향을 틀고 있는 것도 좋았고 그런데도 전면으로 난 통창이 남향을 향하고 있어 빛이 잘 든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한적한 골목, 흰색의 비어 있는 공간, 큰 창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곳, 이 조건이 맞아서 부담스러운 월세에도 덜컥 계약을 해버렸던 것 같다. 여기라면 내가 원하는 공간을 만들 수 있겠다는 막연한 마음이 생겼으니까. 예기치 않게 큰 공간을 얻게 되었으니 하고 싶었던 것을 다 해보자는 욕심도 들었고. 처음엔 그저 꿈에 부풀어 올랐던 것 같다. 공간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인테리어를 구상하면서 디저트를 팔면서 베이킹 클래스까지 함께 운영할 수 있겠다는 포부를 품었으니 말이다.



이전 카페의 집기가 다 빠져나가고 비워진 공간은 예상보다 더 컸다. 그리고 깨끗한 듯 보였던 벽은 얼룩덜룩 지저분한 곳 투성이었고, 집기에 가려져 몰랐던 자리의 창문은 어이없는 무늬와 색으로 나를 당황시켰다. 게다가 온수 공급용 가스보일러는 임시적으로 설치되어 안전상 문제가 있었고. 비용 때문에 업체를 쓰지 않고 셀프 인테리어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집기만 넣으면 되겠구나 생각했던 안일한 마음에 먹구름이 끼었다. 미처 확인하지 못한 문제가 드러나면서 골치가 아팠지만 하나씩 천천히 해결해보기로 했다.



남편과 함께 직접 페인트를 칠하고, 가장 싼 싱크대를 사 와서 상판과 손잡이를 나무 소재로 교체했다. 카운터용으로 쓸 선반장과 커다란 원목 테이블만 가구 공방에 맞추고 그릇을 넣을 장과 수업용으로 쓸 작업대는 목공소에서 짜오는 바람에 스테인과 바니쉬를 바르는 마감을 직접 했다. 입간판 조차 목공소에서 나무만 짜 온 후 글씨를 새겨주는 공방까지 손수 들고 갔다 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모든 과정이 힘들고 고되었지만 마음만은 뿌듯했다. 내 공간을 내 손으로 직접 꾸민다는 생각에 더 애착이 갔으니까. 그러는 사이 이상한 무늬의 창과 창틀은 사람을 불러 교체하고 온수기와 환풍기를 설치하느라 예상치 못한 비용이 들었다. 업소용 냉장고에서부터 온갖 주방 용품을 구입하고, 전등을 교체하는 등 돈이 들어갈 곳은 끝도 없이 생겼다.



완벽하자면 영영 끝나지 않을 일이었다. 오픈 날짜를 정하고 부족한 대로 시작을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면서 필요한 것을 채우는 게 더 효율적일 거라고. 그렇게 겁 없이 가오픈을 시작했고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혼자 하기엔 벅차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고 판매와 클래스를 함께하겠다는 계획을 변경해 클래스 위주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선물 세트와 케이크만 주문 판매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시작할 때의 마음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혼자 힘으로 꾸려나갈 수 있는 일의 규모는 해봐야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운영을 위한 실질적 고민(수입구조나 손익 계산, 유지 비용 등)은 없이 덜컥 뛰어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난에 힘들었고 좋아하는 마음마저 흔들리는 고비를 맞아야 했지만 철저하게 준비하려고 했다면 시작조차 못했을 게 뻔하다. 고민하다 걱정이 늘고 그러다 접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적당한 때란 절대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안다. 결심하고 뛰어드는 때가 가장 좋은 때라는 걸, 부족하더라도 시작의 움직임이 힘을 만들어 간다는 걸 몸소 배웠다. 가게를 꾸려가느라 몸과 마음이 고생하고 오랫동안 품었던 좋은 마음이 시들해지긴 했지만, 무언가를 내 손으로 직접 해보았다는 것은 내 안에 커다란 우물을 파는 일이기도 했다. 누구도 덮어버릴 수 없는 나만의 우물, 나만이 채우고 가꿀 수 있는 것. 그걸 가져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서 가게를 접은 지금도 여전히 나만의 공간을 꿈꾸는가 보다.







가게를 운영하는 일은 어렵고 고되었지만 좋은 점도 많았다. 한시도 놓아주는 일없이 엄마만을 바라보는 아이와 끝없이 이어지는 집안일에서 벗어나 나만의 공간에서 호흡을 되찾는 일은 당시 내 삶에서 반드시 필요했던 일이기도 했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가게를 향해 완만한 경사길을 걸어 올라갈 때면 알 수 없는 설렘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늘을 바라보고 길가에 늘어선 나무나 들꽃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가 찾아오면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직 나만을 기다렸다는 듯 고요한 공간과 손때 묻은 물건들이 일제히 안부를 묻는 것 같았고.



커피를 내리고 마음에 드는 음악을 틀어 놓고 수업 준비를 하는 아침을 사랑했다. 혼자 고요히 나만의 리듬에 맞춰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 재료를 계량하고 수업의 흐름에 맞춰 도구를 챙겨 놓으며 머릿속으로 그날의 시나리오를 쓰는 사이 훌쩍 흘러가버렸지만 온전히 내게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면 동쪽에서부터 서서히 빛의 그림자가 대각선으로 들이치는 걸 볼 수 있었다. 커다란 원목 테이블과 그릇장, 카운터 겸 수납장, 작업대 정도가 전부인 공간에는 빈자리가 많았고 하얀 여백은 빛의 무늬를 고스란히 찍어내는 순수한 도화지가 되었다.



수업이 시작되면 재료의 상태를 맞춰 제한된 시간 안에 디저트를 만들기 위해 분주히 몸을 움직였다.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집중하는 학생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열심이었을 테고. 바삐 수업을 마치고 나면 가장 기다렸던 시간이 펼쳐졌다. 그날 만든 케이크와 쿠키, 타르트로 아름답게 꾸민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언제부턴가 실습시간보다 시식 시간이 더 좋았다. 베이킹을 배우러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으로 만들기를 좋아한다는 것에서부터 비슷한 취향과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과 꿈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이면 수업의 고단함도 잊혔다. 누군가는 동경하는 공간을 가진 이로 나를 부러워했고, 나는 여전히 꿈을 품고 첫 마음을 키우고 있는 이들의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며 어떤 기운을 얻었다. 좋아하는 것을 나누는 일은 말없이 서로의 삶을 격려해주는 일이라는 걸, 작고도 커다란 그 테이블에서 배웠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감당해야 하는 몫이 있다. 공간을 갖는다는 건 그곳에서 중심이 되는 일뿐만 아니라 청소에서부터 설거지 등 유지 보수와 관련된 잡다한 것을 책임지는 일이다. 시간을 할애하는 정도를 따져보면 후자의 비중이 더 크면 컸지 결코 적지 않았다. 아직 엄마 손을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를 돌봐야 하는 처지라서 집에서도 육체적 소모가 컸던 탓에 가게를 운영하는 일이 더 버거웠다. 꼬박꼬박 나가는 월세를 감당하느라 허덕이는 것도 스트레스였지만 몸이 이겨낼 수 있는 한도의 노동 강도를 넘어섰다는 게 나를 지치게 했던 가장 큰 이유였다. 월세는 어떻게든 충당할 수 있었고, 시간을 더 들이면 안정적인 구조를 찾아갈 수 있었을 테다. 하지만 몸이 축나는 사이 좋아하는 마음이 옅어지고, 피폐해진 마음이 아이에게 향할 때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싫어하는 일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그걸 잘 몰랐던 탓에 내 능력을 벗어나는 큰 공간을 열었고 그 바람에 싫어하는 일의 몫도 컸다. 내 몸에 맞는 공간이 필요했다. 혼자 힘으로 꾸리기에 적절한 크기의 공간, 그래서 좋아하는 일과 하기 싫은 일이 균형을 이루는 곳.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서 고심 끝에 첫 가게의 문을 닫았다. 오로지 내 손으로 만든 공간이라 애착이 컸지만 처음이라 시행착오도 많았다. 생각지 못한 현실적 문제로 좌절하면서 애정이 애증으로 바뀌기도 했던 곳. 하지만 그 가게가 있었기에 여전히 꿈을 품고 달려가는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것 같다. 마음속으로 꿈꿨던 일을 현실로 실현해보는 경험은 그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 일은 나에 대한 믿음을 키워줬고 해 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 주었다.






온기를 품은 빵과 케이크로 다정한 기운을 나누고 싶었던 그 마음으로 지금은 글을 쓴다. 달콤한 케이크가 글로 바뀌었을 뿐 세상에 나만의 작은 공간을 만들고 마음이 담긴 위로를 전하고 싶다는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감염병의 유행으로 두 번째 공간을 여는 일은 미뤄졌지만 나만의 공간에서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이야기를 짓는 날을 꿈 꾸고 있다. 더디지만 천천히 자라나는 식물 같은 꿈을 키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