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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Nov 05. 2022

마음의 윤곽을 그리는 일

오늘도, 글쓰기 모임에 갑니다




동네 도서관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친구들과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수업은 끝났지만 참여했던 사람들 중 마음이 맞는 몇몇과 글쓰기 동아리를 만들었고 2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다. 주제를 정해 각자 글을 써온 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식이다. 이런 방식을 ‘합평’이라고 부르지만 우리 모임에서 평가는 없다. 다른 이가 써 온 글에 귀 기울여 주고 공감하고 칭찬하느라 바쁘다. 그러느라 매번 웃음꽃이 만발한다. 위로와 격려를 잔뜩 받고 돌아오는 길에는 마음이 말갛게 개어 있다.


글을 읽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알아 간다. 누군가를 새롭게 알아가는 게 이토록 기쁘고 즐거운 일이었던가. 도서관 수업이 끝난 후에도 자발적으로 모임을 지속할 만큼 글쓰기에 애정과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며 주위를 세심하게 살피는 이들이라 각자의 개성과 시선이 제각각 고유하게 예쁘다. 모임 때마다 간식을 챙겨 오고, 서로의 일상에 다정하게 관심을 가져준다. 어쩌다 이 좋은 모임의 멤버가 되었는지, 내게 온 행운이 별처럼 빛난다. 만남이 거듭될수록 어쩜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있는지 놀라게 되는데, 곰곰 생각해봐도 답은 하나다. 글 쓰는 사람들이라서.


글을 쓴다는 건 자신이 지나온 자리를 돌아보고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일이다. 투박하고 엉성하게 그려진 삶의 밑바탕을 진득하게 들여다보면서 재차 공들여 덧그려보는 일 같다. 그러느라 쉽게 지나칠 일도 잠시 멈춰 바라보고, 별거 아닌 말과 생각에도 가만히 관심을 갖는다. 순간에는 희미했던 마음의 자국을 쉽게 지우지 못하고 타인의 것도 헤아려 보려 노력한다. 글을 쓰고 다듬는 일은 마음의 윤곽을 다듬어 그 모양을 선명하게 하는 일 같다.


모임에서 가장 어린 친구는 스물한 살의 하루님. 그녀가 이번에 써온 글에는 마음이 가라앉고 우울했던 날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과제에 시험에, 정신없이 1년을 보냈는데 어느 날 문득 가슴이 휑한 느낌이 들었다고. 그래서 음악을 듣고 길을 걸었는데 그게 자신의 내면을 향하는 길이었다는 글. 선우정아의 <도망가자>와 아이유의 <Love poem>을 들으며 멜로디와 가사에 공명하고 눈앞에서 흘러가는 강물 위로 시선을 던지는 그녀의 모습이 슬프지만 다행스러웠다. 자신이 느끼는 혼란한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이유와 근원을 곰곰이 생각해보는 모습이 좋았다.


“노래 가사를 한 줄씩 되뇌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동안 뱉어내지 못하고 참기만 했던 감정들이 오히려 공허함의 형태로 나를 찾아왔던 건 아닐까. 무언가 비어있는 듯한 느낌과 답답함이 동시에 느껴졌던 건 그래서였을까.”

-하루


마음을 보살피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알아서 일까. 하루님의 글이 좋았다. 자신의 감정을 덮어버리지 않고 그 신호를 지켜보는 모습, 마음에 패인 좁은 홈을 따라 흘러갈 수 있는 음악을 듣고 생경하게 다가오는 풍경 위로 마음을 펼쳐보는 모습이. 그러다가 자신이 느끼는 공허감의 원인을 어렴풋이 헤아리는 지점에서는 잠잠하게 기뻤다. 울적한 기분이 말끔히 지워지거나 텅 빈 마음이 무언가로 채워진 건 아니다. 그래서 글의 마지막까지 쓸쓸한 기운이 맴돌았지만, 하루님이 자신의 감정을 돌보고 있어 다행스러웠다.


마음을 돌보는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만이 아는 마음의 길을 천천히 다져가는 중이라고. 낯선 감정을 글로 적어 내려가는 것은 마음에 있는 무수한 길 중 익숙하고 편한 길 대신 가보지 않고 피하기만 했던 좁은 길로 걸음을 내디뎌 보는 일, 그래서 조금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어둡고 불편해 보이던 길을 걸으며 하루님은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작고 예쁜 돌멩이(그녀가 수집하는 원석처럼)를 줍지 않았을까. 내가 나를 돌보는 사이 조그만 위로를 구했을 것 같다.


“어쩌면 이런 마음이 허영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상대방에게 물질 공세를 하면서 우월감과 만족감을 얻는 사람이 있다던데 그게 나인가 싶었다. 아니다. 달라도 한참 달랐다. 정말 이상한 일이지. 선물을 건넬 때 내 표정과 감정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얼굴들만큼은 또렷하게 기억나는 게. 인류애? 세계평화? 이상하게 잊을 수 없는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하던 차에 이런 글을 만났다.”

-단풍


같은 날 단풍님이 써 왔던 글의 일부다. 단풍님은 도서관 수업이 끝난 후 우리 모임을 도서관 동아리로 등록해 지원금까지 받게 해 준 열성과 추진력의 주인공이다. 게다가 다른 이들의 글에 가장 크게 리액션을 보여주고 글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묻어나 다정함과 이타심이 천성인 사람이라고 짐작했다. 지난 모임 때는 단풍님이 보온병에 차를 우려 왔다. 모두가 감동해서 달게 차를 마셨는데 그 일에 대해 써온 글에서 단풍님의 또 다른 면모와 진심을 발견했다. 쾌활하고 씩씩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차를 준비하면서 그걸 사람들 앞에 꺼내 놓을 일을 걱정하고 망설였으며, 차를 내어줄 당시에는 부끄러워 등줄기로 땀이 흘렀다는 고백. 전혀 몰랐던 단풍님의 면모였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누군가를 만날 때면 무언가를 주고 싶어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사람이었다. 상대가 환하게 웃는 얼굴이 좋았고 그러면 오히려 자신이 고마워졌다고. 그런데도 무언가를 내어주려는 자신에게 허영심이나 우월감이 있는  아닐까 의심했다.  글을 따라 읽는 동안 그녀의 선의가 투명하게 닦이는  보았다. 다시 질문하고 답하면서 자기 마음의 진위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렇게 알아챈 그녀의 진심이 지난번 선물의 기쁨을 고스란히 되살려 놓았다. 우리의 웃는 얼굴 때문에 어쩌면 그녀가 우리보다  기뻤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의 기쁨도    자랐다.  


하루님과 단풍님의 글을 들으며 생각했다. 글을 쓰면서 두 사람은 마음의 흐릿하던 윤곽선 하나를 또렷하게 그어본 게 아닐까. 여러 개의 면과 색을 가진 마음이라는 복잡한 도형이 있다면 ‘우울’이나 ‘기쁨’이라는 면에 하나의 선분을 그었을 거라고. 시작 점과 끝 점을 찾아 맑고 깨끗한 선 하나를 더했을 거라고. 자기 마음의 진위를 찾아 글로 옮겨가는 과정은 천천히 공들여 반듯하게 선을 긋는 일을 닮아 있으니까.


감정의 진위를 아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어떤 날은 이유 없이 우울감이 찾아오기도 하고. 어떤 감정은 슬픔인지 분노인지, 억울함이나 서러움인지 분간이 어려울 때도 있다. 기뻤지만 그것이 진실된 기쁨인지 가장한 웃음인지 애매할 때도 있고. 글을 쓰면서 감정의 이름을 섣불리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걸 알아간다. 표면의 감정 이면에 무수한 이유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도. 글이라는 도구로 마음을 탐험하다 보면 당연하다고 여겼던 길이 이상한 샛길로 빠진다는 걸 발견한다. 그건 존재하는지 몰랐던 길일 때도, 머리로 알고 있던 마음의 지도와 일치하지 않는 길일 때도 있다.


알면 알수록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감정이고 마음이다. 그런데도 글로 옮길 수 있다면 영영 길을 잃지는 않을 거라고 믿는다. 종이 위로 마음의 길을 풀어내면서 나만 아는 마음의 지도를 그려가고 있으니까. 머리로만 알던 지도에 무수한 샛길을 연결하고 있으니까. 조금씩 내 마음의 진짜 길을 찾아 더듬더듬 걸어가면서 버려져 있던 길에도 눈길을 준다. 그렇게 마음을 돌본다. 어두운 길에는 조그만 빛을 드리우고 어지럽혀진 길은 힘닿는 데까지 쓸고 닦아 보면서, 마음에 필요한 위로를 스스로 보내줄 수 있게 되었다.


하루님과 단풍님의 글은 각자의 마음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지만 모두가 그걸 따라 언젠가 스쳐 지나갔던 길을 찬찬히 되짚어가는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우울하고 공허해 음악을 듣고 어떤 풍경에 마음을 기대었던 경험, 그러면서 위로를 얻었던 일은 내게도 있었으니까.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챙기고 그걸 받고 웃는 그이를 볼 때, 내 기쁨이 더 크다는 놀라움도 여러 번 겪었던 일이다. 잠잠히 들여다보지 못했던 마음을 두 사람의 글을 통해 다시 걸었다. 그러느라 그 길엔 총총총 고운 발자국이 남았다.


글을 쓰는 일은 마음의 윤곽을 천천히 따라가 보는 일이다. 흐릿하던 마음의 한 변을 또렷하게 그어 보는 일이다. 그러고 나면 문제가 해결되거나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마음이 말개져 있다. 그랬던 경험이 나를 자꾸 쓰게 한다. 감정이 복잡할 때,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 때, 그 시작 점과 끝 점을 찾기 위해 글을 쓴다. 그 길은 잘 보이지 않아 헤맬 수밖에 없지만 천천히 선을 이어 보려 집중해본다. 그러면 조금 선명해진다. 글을 쓰는 동안의 위로로 조금 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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