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글쓰기 모임에 갑니다
2주에 한 번씩 만나는 ‘글친구들’과의 모임. 이번에는 백수린 작가의 단편소설 <시간의 궤적>을 읽고 글을 써 오기로 했다. <시간의 궤적>에는 한때 서로로 인해 충만했던 두 사람이 삶의 여정이 달라지면서 어긋나 버리는 모습이 처연하게 그려져 있다. 이국에서 만나 비슷한 취향을 확인하며 친밀해졌지만 ‘나’가 결혼과 함께 그곳에 남고 ‘언니’는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둘 사이는 묘하게 틀어져버린다.
‘언니’가 되었다 화자인 ‘나’가 되며 소설을 읽는 사이 망가지거나 잃어버린 관계를 떠올렸다. 낯선 나라에서 외로움을 삼키며 존재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나’가 ‘언니’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내뱉게 되는 상황은 충분히 공감할 만하니까. 아끼는 만큼 밀착되어 있기에, 믿고 의지하는 만큼 상처를 주고받기 쉽다. 서로를 잘 알기에 상대의 취약점을 알고, 결정적인 순간 안 좋은 말로 상처를 주는 나약함이 우리 안에는 숨어 있다.
쓸쓸한 결말이 아릿한 맛을 남기는 소설을 읽고 그와 유사한 경험을 회상하기 마련이다. 다수가 어긋난 관계에 대해 글을 써 왔다. 그래서인지 섬하님이 써온 글이 인상적이었다. 고요하지만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기운을 머금고 있는 그녀. 섬하님은 방학 때만 드물게 만났던 프랑스에 사는 사촌 언니에 대한 기억, 가깝지고 멀지도 않은 사이였던 그녀와 이번 가을에 인연의 매듭을 단단히 묶었던 일을 써 왔다. 모두가 인연의 끝과 상실을 생각할 때, 섬하님은 그 시작과 충만함을 이야기했다. 다수의 마음에 한색(寒色)이 맴돌 때, 섬하님의 마음은 변함없이 난색(暖色)으로 물들고 있었다. 마음에도 빛이라는 게 있다면, 그녀의 빛은 노랑과 주황 사이 온화한 살구빛일 것 같다.
“우리의 시간이 계속 맞닿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우리는 다시 각자의 점에서 길고 긴 궤적을 그리느라 몇 년이나 만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봤을 때, 선명하게 그려진 '서울에서 언니와 함께했던 가을'을 떠올리겠지. 우리의 점선이 만나 실선이 된 지금. 이 선의 길이가 잠깐일 수도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우린 닿았다는 것. 그 실 끝의 매듭을 양쪽에서 놓지 않고 소중히 여긴다면, 언젠간 또다시 끌어당길 수 있을 것이다.”
- 섬하
세 살이라는 나이 차, 자주 만날 수 없는 거리 때문에 성장하는 동안 이질감을 느꼈던 언니였다. 지금은 두 사람 모두 결혼을 할 만큼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다. 공교롭게도 둘 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 두 사람이 처한 상황과 고민이 비슷했고 서로를 알고자 하는 호기심만큼 여유로웠다. 한국어를 배우러 시간을 내어 한국을 찾은 언니와, 회사에서 벗어난 섬하님의 여건이 두 손바닥처럼 마주쳐 명랑한 소리를 냈다. 만남의 가능성은 있지만 점처럼 별개로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이 놀라운 힘으로 서로를 끌어당겼다. 그런 걸 인연이라 할 테지. 이해할 수 없지만, 딱 그만큼의 해연한 힘으로 서로를 밀어내는 시점도 있다.
내게도 그런 관계가 있다. 한때는 친언니보다 더 의지하며 따랐던 언니, 떠올리는 것만으로 힘이 되는 사람이. 언니와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면 강가를 뒤덮은 희부연 물안개처럼 아스라한 것이 나를 둘러싼다.
2년을 휴학하고 다시 대학교로 돌아갔을 때, 친했던 친구들은 이미 졸업하고 없었다. 친구의 룸메이트였던 선배 언니가 학교 근처에 살고 있어 친구 대신 자주 만났다. 늦은 밤 언니의 방을 찾아갈 때면 친구가 날 위해 언니를 남겨두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시절 나는 자신과의 싸움을 혹독하게 치르고 있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못나 보였고, 모두가 나를 비웃는 것 같아 햇빛 아래에 서면 몸 둘 바를 모르겠는 기분이 되었으니까. 사람이 없는 곳, 그늘이 드리워진 곳에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던 그때, 무용한 이유로 자신을 미워했다. 언니는 그런 나를 언제나 포용해주었다. 언니를 만날 때면 한없이 마음이 풀어져 편안했다.
힘들 때면 언니를 찾아가 기대면서 간신히 졸업을 하고 취직을 했다. 졸업 후 바로 직장을 얻었던 언니가 오히려 뒤늦게 다시 대학을 갔다. 그러느라 긴 시간 공부를 지속했지만 흔들리지 않고 남들과 다른 속도로 자신의 길을 찾아갔다. 그런 언니가 믿음직스러웠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병환, 가족 간의 불화 등 이후에도 삶의 거친 파도가 언니를 덮쳤다. 언니는 어두운 얼굴로 사정을 내비쳤지만 그런 후에는 꼭 가뿐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면 우리 사이로 무겁게 내려앉던 공기는 돌연 날아올랐고, 다시 힘을 내어 각자의 삶으로 걸어 나갈 수 있었다.
언니와 연락을 하지 못한 채 몇 년이 흘렀다. 먼저 결혼한 언니가 두 아이를 키우느라 허덕이고 있을 때, 나는 아이 없이 자유로운 신혼을 누렸으니 우리는 삶의 다른 여정 속에 각기 놓여 있었다. 자연스레 서로에게서 멀어졌다. 때로는 다른 여건과 상황이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상처를 만들기도 하기에 다행스러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겪어보지 못한 일의 고달픔과 압박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서투른 말로 언니를 위로하려 했을지도 모르니까. 시기에 따라 적당한 거리를 찾아내는 것도 관계를 유지하는 지혜일 수 있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우리의 인연은 때를 알아채 나름의 궤적을 그리며 흘러왔다.
남들보다 한참 늦게 아이를 낳고, 뒤늦게 인생의 어려움을 실감하면서 언니가 보고 싶었다. 언니라면 그때처럼 나를 다독여주는 말을 해 줄 테니까. 슬프고 힘들어도, 언니를 만나러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며칠을 참을 수 있었던 시절처럼.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고는 얕게 숨을 내쉰 뒤 “현진아” 하고 부르던 언니의 목소리면, 나는 울 것 같다가도 웃을 수 있었으니까.
어느 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듯 오랜만에 언니에게 카톡을 보냈다. 언제나처럼 언니는 내 말이 다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래 그래" 하고 답했다. 그러곤 작은 일에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그 뒤로 드문 드문 안부를 전하고 한 계절이나 두 계절에 한 번씩 언니와 만난다. 아이들 교육, 가족 문제, 그리고 건강, 고만고만한 고민들을 품고 엇비슷한 삶의 단계에 안착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또다시 우리를 둘러싼 상황이 극명하게 달라질 수 있겠지. 그런데도 잠시 거리를 두고 서로를 기다릴 수 있다. 먼 길로 돌아가는 궤적을 그려야 할지라도 다시 만나게 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올해엔 언니 덕분에 일을 시작했다. 내게 ‘번역’이라는 일을 해볼 수 있다고 제안해주고 용기를 건넨 사람이 언니다. 이력서를 내고, 시험을 통과해 일을 얻었지만 언니의 격려와 도움이 없었다면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맙다고 말하는 내게 언니는 이런 말을 돌려주었다. “네 몫의 일이었던 거야.” 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꽉 차올라 든든하다. 내게 그런 언니가 있어, 슬프고 힘든 날에도 툭툭 마음의 짐을 털어낼 수 있다.
그러니 나도, 누군가에겐 ‘언니’가 되어 주고 싶다. 언니에게 받은 마음으로 누군가에게는 그저 내어 줄 수 있다. 더디더라도 자기만의 속도로 삶을 일구며 단단하게 걸어가는 또 한 명의 언니가 되어야지. 벅찬 일 앞에서 그 일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가볍게 웃어넘기는 지혜와 여유도 챙기면서. 슬프고 아픈 일을 견디며 나아가는 사람을 애틋하게 응원해주는 난색(暖色)의 사람이 되고 싶다.
같은 빛을 보더라도 각자의 렌즈를 통해 흡수하는 빛의 색은 사람마다 다르다. 저마다에겐 본질적인 눈이라는 게 있는 걸까. 렌즈라는 시선을 통과하고 남겨진 빛이 마음을 채색하고 톤을 만든다. 섬하님의 따스한 시선을 느끼며 내 것은 조금 차가운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언니를 떠올리는 사이 곱고 다정한 살구빛으로 발그레 물이 들었다. 인연이라는 매듭으로 당겨주는 이들이 있어 내 마음도 차가운 계절에 꽃을 피울 수 있다.
아릿한 푸른빛에 잠겨버렸던 마음에 섬하님이 건네 준 화사한 빛이 스며들었다. 파랑은 초록을 지나 연두로, 점차 노랗게, 그리고 살구 빛으로 변해갔다. 서로의 곁에서 마음을 달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