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글쓰기 모임에 갑니다
한 사람으로 충분하다. 그로 인해 글에 의미가 생긴다. 한 사람이라도 좋다고 인정해 준다면 의심 없이 글을 쓸 수 있다.
십 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가게를 열었다. 디저트를 만들어 팔고 수업도 하는 작은 가게. 오래 고민하고 망설이다 저지른 인생의 대사건이었지만 내 길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계기였다. 결정적으로 문을 닫은 이유는 팬데믹이었지만 그전부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내 안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문을 닫을 때엔 후련함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도 가게를 정리하고 집에서 아이를 보는 전업맘이 되자 실패했다는 우울감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열심히 살았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허탈함이 밀려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앞이 막막해 숨이 막힐 것 같았다. 학창 시절부터 힘들 때면 일기장을 펼치곤 했으니 그때도 변함없이 일기장 앞으로 돌아갔다. 내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를 돌봐야 해서 망가지지 않으려 더 열심히 썼다. 흰 종이에 답답한 심경을 쏟아내고 나면 하루가 견딜 만했기 때문이다. 지나온 삶과 실패로 보이는 일들을 다시 적어내려 갔다. 그 이유와 의미를 곱씹으며 생각을 풀어내다 보니 내 안에서 다른 언어가 솟아났다. 실패란 삶과의 싸움에서 졌다거나,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도전했다는 흔적이라고. 실패란 끝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다시 시작하라는 신호라고. 그러자 지나온 삶도 달리 보였다. 헛되이 보낸 게 아니라 열심히 살아낸 거야, 최고가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했어, 힘든 시간을 견뎌낸 것만으로 대견해. 어느새 내 글은 나에게 꼭 필요했던 말을 토해내고 있었다. 내게 절실한 말을 스스로 들려주면서 나를 일으켜 세웠다.
쓰면 쓸수록 내 안의 언어가 미세하게 바뀌었다. 언어가 달라지자 삶을 대하는 시선과 태도가 바뀌었다. 그럴수록 글쓰기에 더 매달렸다. 글이 막막한 나를 어딘가로 이끌어줄 것 같았다. 지금이 진짜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해볼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언젠가 책을 내고 싶다는 꿈을 품고 살았지만 두려워서 시도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가 바닥이라면,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다는 의미. 실패할 만큼 해보았으니 다음의 실패가 두렵지 않았다. 그동안 두려워서 미루었던 일, 진짜 해보고 싶었던 글쓰기에 도전할 절호의 기회였다.
여러 곳에서 글쓰기 수업을 듣고 매일 글을 쓰는 온라인 모임에 참여했다. 독서 모임에서 책을 읽고 서평도 열심히 썼다. 처음엔 재미있던 글쓰기도 잘하려고 욕심을 내자 힘들었다. 잘 쓰려고 힘을 줄수록 글이 막혔다. 글은 써서 뭐 하나, 하는 회의감도 찾아왔다. 그런데도 글쓰기만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갈 수 있는 만큼 가보았다고, 더 이상 미련도 후회도 남지 않았다고 할 만큼 써 보고 싶었다. 무엇이든 시간이 쌓이면 힘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기엔 글쓰기에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못했다.
시간을 들이면 그 대상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얼마큼일까. 대개 십만 시간을 말하던데, 십만 시간이면 11년이다. 5~6 년가량 매일 글을 썼더니 노트북에 꽤 많은 글이 쌓였다. 글이 쌓일수록 든든했다. 이걸 내 삶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나만의 비빌 언덕. 그 언덕이 쉽사리 흔들리지 않도록 더 튼튼하게 다지고 싶었다. 십 년쯤 꾸준히 쓴다면 그렇게 될까. 더 써 보는 수밖에 없었다.
혼자 쓰는 일에 힘이 빠지고 써야 할 이유가 희미해졌던 삼 년 전 여름, 동네 도서관에서 글쓰기 수업 공고를 봤다. 강제로라도 계속 써야 할 이유가 필요했으니 망설임 없이 등록했다. 등록한 수업은 '치유하는 글쓰기'. 매주 한 편의 글을 써서 서로의 글을 듣고 감상을 나누었다. 숙제가 있으니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었고 내 글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힘이 났다. 이십 대에서 사십 대까지 다양한 나이의 사람들이 수업에 참여한다는 점도 좋았다. 같은 주제를 줘도 고민의 지점, 생각을 풀어내는 방식이 달랐다. 혼자 쓸 땐 내 생각 안에 갇힌 듯 답답했는데 다채롭게 뻗어나가는 타인의 글을 접하자 생각의 집에 창이 생겼다. 여러 개의 창이 생겼고 제각각의 풍경이 펼쳐졌다.
이삼십 대 친구들의 고민과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나도 그랬지 싶으면서 그때보단 가볍게 문제를 바라볼 수 있었다. 청춘의 흔들림 한복판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에 조건 없이 응원하고 싶었다. 취업과 연애, 정체성, 사랑과 연대를 고민하는 그들이나 결혼과 육아, 나이 듦과 자아 성찰 사이에서 헤매는 나나, 구하고자 하는 건 비슷했다. 질문의 외향은 달라도 방향은 같았다. 각자의 삶에서 의미를 만들고 기쁨을 발견하고 싶다는 바람. 나와 당신, 그리고 삶을 더 사랑하려는 노력. 세대는 다르지만, 함께 사는 세계에서 저마다의 길을 찾으려는 시도가 따스하게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사람들 사이에 두었던 마음의 벽이 금세 허물어졌다.
사람들이 써오는 글은 기발하면서 재치 있고 생동감이 넘쳤다. 뻔할 것 같아 피했던 소재로 신선한 글을 써냈다. 길에서 만난 노인, 오로라를 봤던 밤, 엄마와의 대화, 억지로 따라갔던 등산길. 우리 주변의 흔한 일에서 반짝이는 기쁨과 각자만의 의미를 찾아냈다. 소재가 작으면 작을수록, 사소하면 사소할수록 이야기는 더 특별했다. 그러니 무엇을 다루든 자기만의 개성으로 풀어내면 멋진 글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거창한 주제나 특별한 소재가 아니더라도 얼마나 진솔하게 자기만의 시선을 닦았느냐가 중요했다. 보잘것없는 것에서 자기만의 의미를 그려내는 친구들은 이미 작가나 다름없었다.
각자 써 온 글을 낭독하고 서로에게 피드백을 주는 수업 방식도 큰 도움을 주었다. 글을 써도 외부의 반응이 없으면 기운이 빠지기 마련이다. 혼자 쓰다 보면 지치는 이유다. 수업에서는 누군가가 내 글에 반응을 건네고 그러면 글에 존재 이유가 생겼다. 글 쓰는데 들인 시간이 헛되지 않다는 신호 같아 기운이 솟았다. 누군가 내 글의 장점을 알려주기라도 하면 모양이 예쁜 조약돌이라도 주운 듯 그 말을 꼭 쥐고 집으로 돌아왔다. 혼자가 아니라서 계속 써 보고 싶었다.
“팬이 되었어요, 계속 써 주세요.”
어느 날엔 이런 말도 들었다. 팬이라니, 내 글을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다음 시간을 기다리게 만들어 주었다. 그 한 사람을 위해 더 좋은 글을 써 가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글 쓰는 시간이 즐거워졌다.
독자가 있다는 건 이런 기분일까. 독자를 떠올리며 글을 쓰다 보니 외로움이 줄었다. 처음엔 못난 나를 꾸짖듯, 조금 뒤엔 나와 싸우듯 쓰던 글이었는데 누군가를 떠올리며 쓰자 서서히 다정이 스며들었다. 독백이라 쓸쓸했던 문장이 누군가를 향해 부드럽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나를 대하는 나의 시선도, 내게 말하는 나의 목소리에도 온기가 깃들었다. 내게 다정한 글이 누군가에게도 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함부로 말하지 않는 연습도 지속했다. 누군가 듣고 있다고 생각하면 문장을 적다가도 한 번 더 고민하고 두 번 더 다듬게 된다. 나만의 닫힌 생각에서 빠져나와 당신의 입장에 나를 놓아본다. 글을 쓰며 사람과 삶에 섬세해지려 연습한다.
다수의 마음에 닿길 바라 욕심을 내면 글쓰기가 막막해진다. 어려워 첫 문장도 쓸 수가 없다. 대신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 단 한 명의 마음에 닿고자 한다면 내 글도 괜찮지 않을까. "팬이 되었어요"라고 말해준 그 사람처럼, 또 어딘가 내 글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한 사람을 만날지 모른다. 그 한 명을 생각하면 쓸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긴다.
내 글에 시선을 연결해 줄 한 사람, 그 사람을 생각하며 소박한 마음으로 쓴다. 다수를 움직이려 힘주는 대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당신을 떠올리며 진솔한 이야기를 친절하게 전하려 집중한다. 조금 더 가볍게 대신 조금 더 명료하게 쓴다. 나를 건드리고 슬프게 하는 건 늘 사소하고 하찮은 문제들이지만 더 이상 그런 일에 연연하는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처럼 당신의 사소한 문제도 하찮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어서다.
내가 낸 용기가 당신에게로 건너가고 있을까. 백지 앞에서 머뭇거리는 당신이 그 용기를 받아 마음껏 써 보길. 그런 우리가 드문드문 떨어져 각자의 자리에서 점처럼 깜빡이다 별자리로 연결되길.
“계속 써 주세요.”
나를 이끌어준 문장을 당신에게 건넬 차례다.
*
도서관에서 들었던 '치유하는 글쓰기' 수업은 8회로 끝이 났다. 아쉬운대로 뒤풀이 자리가 마련되었고 여섯 명의 멤버가 모였다. 글쓰기 수업이 좋았던 우리는 자발적으로 모임을 이어가기로 의기투합했고 즉석에서 동아리('글친구들')를 결성했다. 마침 도서관에서 지원해주는 동아리 사업에 등록할 수 있었고 모임 장소와 강사 지원을 받게 되었다. 그날 도서관 수업에 등록하지 않았다면, 뒤풀이 자리에 가지 않았다면 경험할 수 없었을 미래를 마주한다. 나와 당신들이 낸 작은 용기가 써 내려가는 미래, 글쓰기가 만들어가는 변화. 지금도 겪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