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글쓰기 모임에 갑니다
약속 장소에 마지막으로 도착한 수현님은 블랙 의상을 입고 있었다. 오늘의 드레스 코드는 레드인데, 평소 그녀를 생각하면 코트 안에 엄청난 레드를 숨기고 있을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코트를 벗는 품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예고라도 하듯 과장된 동작으로 하나씩 단추를 푸는 사이 모두의 시선이 수현님에게 쏠렸다. 한순간 활짝 열어젖힌 코트 안에서 새빨간 스웨터가 드러났다. 복슬복슬한 털실로 짠 밝고 쨍한 레드. “와아!” 모두가 탄성을 내지르며 물개 박수를 쳤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며, 수현님은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을 성대모사했다. “연말 모임 있나 봐~” 맛깔난 표현에 “깔깔깔깔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등장으로 테이블의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식사를 하고 준비해온 선물을 나누는 사이 웃음과 감탄이 끊이지 않았다. 헤어질 즈음엔 하도 많이 웃어 입꼬리와 광대뼈 주변이 얼얼했다. 몸 안에 가득 찬 엔도르핀 때문에 발걸음은 가벼웠다.
수현님은 그런 사람이다. 상대방의 말에 찰떡 같이 반응해 말한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 준다. 작고 단순한 일도 재치 있게 말을 해 분위기를 띄운다. 누구의 말에서든 웃음의 포인트를 발견하고 그걸 되살려 내는 그녀는 같이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그게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일이라는 걸 안다. 그러니까 수현님은 다정한 사람.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아낌없이 리액션을 보여주는 그녀는 활짝 핀 해바라기처럼 따뜻하고 환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것만이 그녀 내면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천성적으로 외향인일 것 같지만 타국에서 대학생활을 하며 자신이 ‘양향인’이라는 걸 발견했다고 한다. 십 대땐 국제 학교를 다녔고 극도로 내향적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면서 외향성이 강해졌다. 이십 대가 되면서 문득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피로를 느꼈고 그런 자신을 이상하다고 생각했단다. 그러다 노르웨이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자기 안에 숨은 내향인의 기질을 발견했다고 한다. 밤과 겨울이 긴 그 고장에는 홀로 자기만의 시간을 충만하게 보내는 내향인이 많았다. 자연과 교감하고 산책을 하며, 책 읽는 시간을 누리면서 그녀 또한 혼자 있는 고요한 기쁨을 발견했다. 그녀 안에 잠자고 있던 내향형 자아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제 그녀는 자신을 ‘양향인’이라 소개한다. “'난 친화력이 좋으면서도 낯을 가려', '나가서 노는 걸 좋아하지만 집에서 쉬는 날이 꼭 필요해'”라고 말할 줄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개그 욕심은 있어 사람들 웃기길 좋아하는 그녀가 내게는 무척 건강해 보인다. 자연스럽게 솔직한 자신을 드러내면서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즐겁게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는 그녀의 마음이 사랑스럽다. 낯을 가리는 편 인데도 그녀에게만은 슬쩍 팔짱을 끼고 싶어 진다. 단 번에 사람들 사이의 거리감을 좁히는 그녀의 매력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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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친구들과의 12월 모임이었다. 글은 미리 써 온라인으로 공유하고 만나서는 연말 파티를 하기로 했다. 글쓰기 주제는 “내가 사람을 대하는 법”. 수현님의 글에서 내 마음의 지형과 비슷한 형세를 발견했다.
“전형적인 '인싸'라기보다 '양향인'이라는 것을 인정한 뒤에는 넓고 얕은 만남보다는 좁고 깊은 만남을 가지는 것을 선호하는데, 지속하고 있는 인연들의 공통점은 좀 더 적극적인 누군가에게 '간택'을 당했다는 거다.”
-수현
양향인의 면모, 좁고 깊은 만남, 인연을 이어가는 사이에서는 주로 연락을 받는 입장이라는 게 그랬다. 모임에서는 가장 적극적이고 활발해 보이는 그녀가 관계를 지속하는 방식에서는 소극적이라는 게, 대체로 먼저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에게 이끌린다는 게 반가웠다. 그녀의 적극적인 면모 뒤에 숨은 소극성을 엿본 기분이랄까. 누구에게나 그런 모순이 있다는 게 위안이 된다.
수현님이 관계를 통해 겪은 고민을 성장하는 동안 엇비슷하게 경험했다. 반장을 했던 유년기 학창 시절엔 누군가에게 주목받는 걸 은근히 즐겼고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도 있었다. 내향적인 것보다 외향적인 게,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활동적인 게 좋아 보였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혼란이 시작되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집에 돌아오면 극도로 피곤해 신경이 예민해질 지경이었다. 그런 자신이 성격 장애가 아닐까 싶었고. 외향인이 되려 노력하는 사이 억눌린 내향적 본성이 생존 신호를 보낸 거였다.
서서히 모임에 따라 내 모습이 달라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래 알아 편안한 관계에서는 외향적으로 자신을 드러냈지만, 처음 만나거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 조금 어렵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지극히 내향적이었다. 일대일 만남에서는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지만 다수가 모이는 자리에서는 대체로 조용히 머물렀다. 두 가지의 성향이 내 안에 뒤섞여 있다는 걸 발견했지만 그걸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에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사회생활 초반 내향적 성격은 극복 대상이었다. 휴게실이나 화장실에 갈 때면 걸음과 행동이 빨라졌다. 지극히 내향적인 나의 속마음은 그 짧은 시간에도 다른 팀 동료나 상사를 마주칠까 전전긍긍했고 그런 자신이 조금 한심했으니까. 교육 관련 업무를 하면서 심리와 성격에 대한 이론적 내용을 접하게 되었고, 외향성과 내향성 사이 좋고 나쁨의 구분이 없음을, 각자 고유한 성향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살아가면 된다는 걸 배웠다. 내향인과 외향인 각각에 나름의 장단점이 있음을 받아들이면서 한결 편안해졌다. 그건 뿌옇던 안경을 말끔하게 닦아 다시 세상을 바라볼 때의 기분과 유사했다.
사람의 성향에는 내향성과 외향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향이 오묘하게 뒤섞여 있다. 정해진 수치를 재어 A, B, C, D로 딱 잘라 규정할 수 없다.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듯이. 그만큼 인간은 다면적이고 복합적이며 무수한 모순을 품고 있는 존재다. 각자의 고유함을 포용하고 존중하면서 자신다운 삶을 살아가면 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사회생활과 관계에 대한 부담을 덜었다. 이런 걸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지금은 내향형의 자신을 온전히 수용하고 긍정한다. 혼자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자연과 문학, 예술과의 교감으로 에너지를 채워야 하는 성향에 맞춰 삶을 꾸려간다. 그러느라 관계의 범위는 저절로 좁아졌다. 가깝게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고, 대부분 내게 먼저 연락을 해주는 이들이다. 어떤 대상을 좋아하면 열렬히 빠져드는 성향이면서 실제 대인 관계에서는 무심한 편이다. 이 또한 나라는 사람의 모순적인 부분이다. 그런 내게도 꾸준히 연락해주는 이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
곁에 있는 이를 직접적으로 챙기는데 서툴고 게으른 것도 성향이라면 성향인 걸까. 괜한 연락으로 그이를 귀찮게 할까 봐, 바쁜 사람을 방해할까 봐 망설이다 연락하길 그만둔다. 혼자 마음으로 떠올리고 그리워하며 잘 지내길 바란다. 그럴 거라고 믿어버린다. 변명처럼 들리지만 조심성과 소극성이 관계 맺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잊을 만하면 연락을 해주는 이들에게 고맙다. 그만큼 크게 기뻐하고 마음을 다해 이야기를 나눈다. 다음에는 내가 먼저 연락해야지 다짐하지만 실천은….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삶은 극도로 고립되었다. 답답하고 힘들었지만 은근히 좋았다. 어린아이가 있어 마음대로 사람을 만날 수 없는 형편이기도 했고 지난 몇 년 가게를 차리는 바람에 밖으로 에너지를 쏟아버려 충전이 필요했으니까. 집에 머물며 안으로 에너지를 모았다. 읽고 쓰기에 침잠하면서 나를 돌보고 고갈되었던 내면을 다시 채웠다. 본래의 내향성에 듬뿍 물을 주고 빛을 챙기며 보살폈다.
그렇게 이삼 년을 보내자, 내 안의 미미한 외향적 기질이 다른 신호를 보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낯선 경험을 하고 싶다고. 자아라는 딱딱한 틀을 유연하게 해 줄 다른 생각과 풍경을 보고 싶었다. 부족한 외향적 기질을 끌어 모아 용기를 냈다. 모임을 찾아가거나 직접 모임을 꾸렸다. 먼저 연락해 만날 약속을 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자발적으로 찾아갔다.
2022년은 내 안의 작은 외향성과 적극성이 빛을 만든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우연한 만남으로 알게 된 지인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임을 만들었고, 책만 있던 모임에서는 글을 쓰자고 제안했다. 도서관에서 하는 글쓰기 모임에 용기 내어 갔고, 수업이 끝났을 때 만남을 이어가자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그랬던 덕분에 멋진 인연을 얻었고, 좋아하는 것을 나누며 다정한 기운을 채웠다. 내가 가진 외향성은 크지 않지만 적절한 시기에 큰 일을 해낸다. 내향인이면서 조금 외향인이기도 한 나, 그래서 모순적이고 뒤죽박죽인 성향이 삶에 알 수 없는 길을 낸다. 주로 내향인이 고요하고 외진 길을 잠잠히 걷지만, 때로는 외향인이 되어 넓은 길을 손잡고 달린다. 성향의 역학이 삶의 높고 낮은 지형을 만들고 있다.
“먼저 손 내밀어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인연이라는 새끼손가락의 붉은 실을 발견하고 이어 올 수 있었으니, 올 겨울에는 붉은 실로 커다란 담요를 만들어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덮어주고 싶다.”
-수현
그녀의 빨강 스웨터는 붉은 실로 엮은 커다란 담요였다. 우리가 조심스럽게 내밀었던 붉은 실이 어느새 성글게 얽히었는데, 그녀 덕분에 조금 촘촘해진 것 같다. 이 담요는 어떤 무늬를 자아내며 얼마나 자랄까. 자신의 담요를 펼쳐 나를 덮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 그들을 통해 관계 맺는 법, 마음을 나누는 법을 배운다. 혼자이고 싶지만 함께이길 갈망하는 모순적인 나조차 너그럽게 받아주는 사람들 안에서 안도한다. 나의 담요는 작고 초라하지만, 어떤 날엔 활짝 펼칠 수 있는 용기가 내 안에 있음을 기억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