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여행이지

어쩌다 캠핑

by 춤추는바람






“가장 좋은 건 언제나 우연히 왔다.”

<고요한 포옹> 박연준




마을 입구 모습, 하루에 두세 번씩 들렀던 슈퍼마켓



우리가 묵었던 레스토랑 겸 모텔의 전경



도로 안 쪽 마을의 모습




태즈마니아의 오즈(ouse)라는 마을에서 계획에 없던 2박을 하고 있다. 이름처럼 오지 같은 곳. 끝없이 이어지는 목초지 사이에 자리한 아주 작은 마을이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고 나면 조금 당혹스럽다. 내가 왜 여기 있지 싶은데 그러다가도 ‘큭큭’ 웃음이 터진다. 이런 게 여행이지 싶어서. 괜스레 설렌다.



이전 캠핑장을 떠나 새로운 장소에 도착했는데 인터넷이 되지 않았다. 번역 마감이 이틀 남았는데. 인터넷이 될 거라는 말만 믿고 미리 작업을 마치지 않은 내 탓이 컸다. 방법이 없나 고민하느라 속만 탔다. 멋진 숲과 근사한 호수를 눈앞에 두고도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밤이 되자 어수선한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바람에 울고 싶었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마을에서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숙소를 발견했을 때엔 하늘이 돕는구나 싶었다.



아무것도 없는 길을 한참 달려 캠핑장에 들어왔기에 선뜻 나가야 한다는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그런 나를 보다 못한 동생이 먼저 발 벗고 나서 주었고. 낯선 길로 8인용 커다란 차를 운전해 가장 가까운 숙소로 데려다주었다.



캠핑장을 벗어나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2차선 도로를 15분 남짓 달렸다. 그때 나타난 마을이 바로 오즈(ouse). 허허벌판에 차도를 따라 몇 개의 낮은 건물이 늘어서 있다. 뭐가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동네 슈퍼에 들어가 물어보니 바로 맞은편에 모텔이 하나 있다고 알려 주었다.



레스토랑인 줄 알았는데 건물 2층에 모텔이 있었다. 숙박비와 인터넷 사용 여부를 확인했다. 순식간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고 이틀 후 체크 아웃 시간에 맞춰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동생은 떠났다. 낯선 환경에 어리둥절하지만 번역을 마칠 수 있다는 생각에 한시름 덜었다. 어쨌든 일은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체크인을 하고 필요한 물건을 사러 나왔다. 숙소 맞은편엔 마켓과 우체국 겸 문구점이 있고, 모퉁이를 돌면 오래된 교회와 장미 정원이, 조금 더 걸어가면 놀이터까지 있다. 도로 안 쪽으로 정원이 딸린 집들이 늘어선 단정한 동네가 보였다.



마을을 간단히 탐색한 후 숙소 아래 레스토랑에서 식사부터 했다. 캠핑장에서 사촌들과 즐겁게 노는 아이를 이런 데로 데리고 와 미안했다. 문구점에서 색칠 공부를 사고 피자 한 조각을 주문해 주었다. 내 마음이 편안해진 게 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쳤는지, 뭔가 색다를 경험을 한다는 게 아이도 좋았는지, 아이는 금세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고마워, 꼬맹이-

네가 없었다면 이런 오지에서 일행과 동떨어져 묵는다는 건 상상도 못 했을 거야.’



아이가 없었다면 혼자 여기 묵을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내게 용기를 준 건 책임져야할 아이의 존재였다. 아이가 내게 무의식 중에 포기하는 대신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어른의 마음을 심어주었다. 서울의 호텔에서 혼자 자면서도 밤새 뒤척거리는 나는, 생각보다 겁이 많은 사람. 외국의 낯선 마을, 거주민 외에 누구도 찾지 않아 한산하다 못해 괴괴하기까지 한 마을에서 2박을 한다는 건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아이와 함께 있어서, 누군가 곁에 있어서 힘이 났다. 어떤 상황이든 같이 있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침대와 세면대, 테이블 하나, 의자 한 개, 나름대로 갖춰져 있지만 모든 게 조금 어설프고 허술하다. 창문에 달린 파란 커튼이 은은한 블루가 아니라 촌스럽게 쨍한 파랑이라면 대충 짐작할 수 있을까. 정성들여 세심히 꾸민 공간은 아니라는 걸. 작은 모텔방에 앉아, 내일이 마감인 일을 하느라 분주히 노트북을 두드린다. 분량이 많이 남은 상태는 아니다. 큰 문제가 없는 한 기한에 맞춰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걱정도 없고 딱히 할 일도 없으니 일에 집중만 하면 된다.



파란색 커튼 너머 황량한 목초지가 끝없이 펼쳐지고 요란하게 달리며 내는 자동차의 소음이 드물게 귀 속을 파고든다. 급작스레 모험을 떠나 외지고 낯선 마을에 도착한 로드 무비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달까. 이곳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일하고 있다는 게 이상하게 웃긴다. 간밤의 울고 싶은 기분을 생각하면 지금 상황이 너무 극적이라 꿈만 같고.



계획도 없고 예상조차 못했던 곳에 앉아 있다. 한편으론 어이없고 성가신 상황인데 재미있다. 언제 이런 데 묵어 보겠냐는 초긍정의 마음이 생긴다. 진짜 여행이란 바로 이런 거라는 의연함도. 갑자기 이토록 긍정적이고 담대해진 자신이 어색하면서 신기하다. 미처 몰랐던 자신의 이상하고 웃긴 모습을 발견하는 기회, 이제야 여행다운 여행을 하는 건가.



머릿속에서는 궁금증이 꿈틀꿈틀 자란다. 슈퍼 캐셔로 있는 젊은 여자는 어떻게 해서 여기서 일하게 되었을까. 그 옆의 문구점을 지키고 있는 젊은 남자도 그렇고. 아무리 봐도 두 사람의 분위기는 무척 도회적인데 말이다. 모텔에 딸린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인도 출신 젊은 커플에겐 또 어떤 사연이 있을까. 저녁 시간에 아이들을 데리고 홀로 여기로 외식을 나왔던 여자는 근처에 사는 사람일까, 이런 마을에서 아이를 키우며 사는 삶은 어떤 걸까?



호주식 발음으로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와, 깐깐해 보이는 인상으로 대하기 어렵지만 숙박객이라 더 편의를 봐주는 주인아주머니도 마음에 든다. 아주머니는 이 마을에 사실까, 레스토랑 문을 닫으면 어딘가 멀리 있는 곳으로 타를 끌고 돌아갈까. 레스토랑은 8시에 문을 닫는데 그러고 집에 도착하면 밤 시간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걸까. 문득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낯선 사람을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일이 오랜만이다. 영어에 능숙하지 않아 사람들 상대하는 일을 피했고 캠핑장 위주로 다니면서 그럴 기회조차 줄었다. 영어가 짧아 말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동생 뒤에 숨기만 했고. 자연에서 경험하는 경이로움도 좋지만 아무래도 나는, 사람들 살아가는 일이 더 알고 싶다.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장소와 일을 선택하고 살아가는지, 그런 게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 일주일 머물며 식당에 들르는 사람들을 관찰하다 글을 쓰는 상상을 한다. 해가 떨어지자 밖에 나갈 엄두도 나지 않아 아이와 둘이 침대에 느슨하게 기대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처음 도착해 ‘이런 마을’이라 부를 때 내 몸과 마음을 감싸고 말았던 경계심은 서서히 풀어졌다. 오가다 마주치면 눈인사를 보내는 숙소 주인아주머니와 인도 커플, 가장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고 안부까지 물어주는 슈퍼의 캐셔 아주머니. 황량해 보이던 동네도 그랬다. 사람은 안 보였지만 잔디밭 정원에 미끄럼틀과 장난감이 있거나 빨래가 널려 있었다. 어느 집 마당에선 토끼를 만났고, 또 어느 집 옆 빈터에서는 양 떼를 보았다(이것이 호주 스케일 ㅎㅎ). 어디선가 나타난 고양이가 조금 뒤처져서 우리를 따라왔고. 그런 것들이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호텔에서 일하는 젊은 부부는 일이 끝난 밤이면 방으로 돌아와(우리 옆방에 살고 있었다!) 고향 집으로 길고 긴 전화 통화를 한다. 끝없이 이어지며 벽을 타고 흘러드는 낯선 언어를 들으며 그리워하는 마음은 모두에게 비슷하구나 생각한다. 우리는 참 다른데 묘하게 같다고. 곁에 잠들어 있는 아이를 꼬옥 끌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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